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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나먼 여정 Oct 13. 2023

신선식품 취급주의

꿈을 신선하게 꾸는 법

  귤 공화국이라 불리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그러다보니 귤 먹는 방법이 다른 지역의 그 것과 다르다. 밭에서 가져온 그대로, 상자가 아닌 노란 색 플라스틱 콘테나를 베란다에 두고 한 번에 몇 개씩 꺼내 먹는다. 이 때 무르거나 상처 난 귤이 있는지부터 꼭 살펴봐야 한다. 귤은 껍질이 얇은 까닭에 조금이라도 상처가 나면 진물이 나와 초록색 곰팡이로 뒤덮이게 되는데 하나가 그렇게 되면 멀쩡했던 주위 귤까지 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밑에 있는 귤까지 살피며 약간이라도 눌리거나 살짝 상처 난 것들을 찾아 그런 것부터 먼저 먹는다.


 자연스레 다른 과일들도 그렇게 먹었다. 시들거나 상처 난 것 부터 먹는 식이다. 포도는 알이 많이 떨어지는 송이부터 먹었고, 배는 까만 점이 난 것부터 먹었다. 그러다보니 결국 과일 한 상자를 먹는 내내 상처 나고 신선하지 않은 것들 위주로 먹고 었다.


 어느 날,  방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가장 탐스럽고 싱싱해 보이는 것부터 먼저 먹기로 한 것이다. 일단 상자 속 제일 잘 익은 것부터 꺼내 먹은 후 계속해서 남은 것들 중 제일 괜찮은 것으로 골라 먹었다. 그러다 보니 간혹 처음부터 시들했던 것들은 결국 못 먹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하지만 신선하고 맛있는 과일을 먹는 기쁨이 더 컸다. 마치 예전보다 내가 더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비단 과일뿐일까. 생각해 보니 살아가면서 자꾸 나중으로 미뤄둔 것은 신선한 과일만이 아니었다. 나의 꿈, 내가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일들을 나는 기약 없이 뒤로만 미루고 있었다. 직장에 다니느라, 아이를 키우느라, 아직 때가 아니라서와 같이 그럴듯한 말들로 그동안 그것들을 꾹꾹 눌러 담기 바빴던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하면 들여다보리라 하고 뚜껑을 닫아버렸다.


 톰 소여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앞으로 20년 후의 당신은 저지른 일보다 저지르지 않은 일로 인해 후회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내가 뒤로 미뤄둔 꿈을 20년 후에 꺼내본다고 상상해 본다. 곰팡이가 뒤 덮여 있을 테지. 한 줌의 재로 부식되어 있을 지도 모른다. 인간이 사용하는 말 줄에 가장 슬플 말은 “아, 그 때 해볼걸!” 이라던데 언젠가 나이든 내가 그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내가 가진 꿈이 시들해지기 전에 무언가를 시작해야 했다.


 퍼득 예전에 만든 꿈지도가 떠올랐다. 「당신의 소중한 꿈을 이루는 보물지도」라는 책을 읽고 나서 코르크판에 만들었던 차였다. 꿈 지도에는 당시의 내가 고심해서 세운 몇 가지 꿈이 적혀 있었다. ‘2028년까지 철인 3종 경기 완주하기’, ‘2043년까지 책 10권 출간하기’, ‘2048년까지 느린 학습자를 위한 학습센터 개설하기’ 라고 써져 있는 게 다라 그 사이엔 여백이 많았다. 얼른 포스트잇을 가져와 그 꿈과 관련하여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걸 적어 넣었다. ‘달리기 앱 설치해서 매일 30분 달리기’, ‘브런치 작가되기’, ‘느린 학습자 관련 도서 읽고 1주일에 1개씩 블로그에 올리기’ 그렇게 나는 ‘지금의 나’와 내 꿈 사이에 징검다리 하나를 놓아두었다.


 요즘의 나는 하루 중 틈틈이 꿈을 향해 작은 징검다리를 계속 해서 놓고 있다. 다행히 브런치 작가 되기 목표에 성공해서 다시 포스트잇에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수상하기’라고 새로 써서 붙여 놓았다. 아직도 여백이 많은 나의 꿈지도엔 앞으로도 수 많은 포스트잇이 붙였다 떼는 과정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너무 멀게만 보여 지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모든 과정이 나를 성장하게 하고 새로운 길을 마주하며 꿈이 시들지 않게 해 줄 것이다.


 사과가 철이라 얼마 전 사과 한 상자를 불렀다. 한 알 한 알 붉게 익어 윤기가 나는 사과 중 가장 싱싱한 걸 집어 들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사과 향이 오늘따라 유난히 상쾌하다.  

              

꿈을 향한 작은 단계들이 놓여지고 있는 나의 꿈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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