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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삿포로맨 Sep 18. 2024

「the Book」이 아닌「Books」의 나라, 일본

일본 사람은 왜 책을 많이 읽어야만 했나?

사이도 타카시(齋藤孝) 『読書力(2002)』

2000년 전후한 일본에서 가장 신선하게 느꼈던 것은 일본 사람이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핸드폰을 쳐다보는 것이 일상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전철을 타면 손에 작은 크기의 문고본 책을 읽는 일본인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원시절 일본인 대학원생과 토론을 하다 보면 다독으로 다져진 그들의 지식과 사고체계에 고개를 숙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듯 독서를 많이 하는 나라로 우리는 종종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를 많이 든다. 일본의 교육학자 사이토 타카시(齋藤孝)《독서력》에서 일본의 높은 독서력의 요인을 유일신을 숭배하지 않는「the Book」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는 견해가 무척이나 흥미롭다. 서양처럼 일본에도 절대적 규범 가치를 지닌「the Book」이 존재했다면 사람들은「the Book」을 통해 사회에 필요한 규범과 가치를 가지고 될 것이다. 그러나 「the Book」의 부재했으므로 다양한「Books」을 읽을 필요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여기서「the Book」란 성경이나 코란과 같은 바이블을 뜻한다. 「the Book」의 부재한 일본은 다양한 책을 통해 이러한 것을 채워왔다는 이야기이다.  


사이토의 이러한 이야기는 일본인의 종교관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일본은 유일신을 믿지 않는 다신교의 나라이다. 일본에서는 ‘태어나서는 신사에 가서 의식을 치르고, 결혼식은 교회에서, 죽어서는 절에 간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신을 믿는 나라이다. 일전에 일본인 지인에게 "일본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많은 신들을 믿나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이때 돌아온 대답이 매우 흥미롭다. "많은 신들에게 축복받으면 좋지 않겠어요”. 듣고 보니 납득이 간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현재의 일본의 70대 이상의 고령자들은 연령이 높을수록 러시아문학을 접했던 경험이 많다. 특히 러시아 문학의 거장으로 칭송되는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는 일본에서 이상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여기서 '많았다'라고 굳이 쓴 것은 과거의 일본이 그랬다는 것이지 요즘 젊은이들도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의 인기'로 이야기한 것은 러시아 문학은 세계적인 문학사에서 볼 때 주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품은 특히 미국에서는 그다지 읽히지 않았고 심지어 러시아에서조차 모두가 읽는 그런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상한 인기는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도 매우 유사하게 일어났다. 모든 대학이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90년대 초 대학생 교양도서라는 것이 있었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다량의 도서를 일괄적으로 구입해야만 했는데 여기에 빠지지 않았던 책이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문학작품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한국 학생뿐만 아니라 과거의 일본 대학생들도 경험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러한 시공간을 초월한  동일한 경험의 공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결국 이러한 러시아 문학이 한국에서 유행했던 이유를 일제 식민지 통치의 영향으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어디까지 추정에 불과하지만 일제 식민지하에 일본에서 유행했던 러시아 문학은 자연스럽게 한국에 유입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의 가능성으로 러시아 문학이 동아시아 권역에서 유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동아시아 나라에서도 러시아 문학이 유행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이렇듯 독서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자극과 계기가 된다. 일본에서 일어난 사회현상이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의 발견. 그리고 이러한 발견을 통해 "왜 그럴까?"라는 의문과 그에 대한 가정이나 추정. 이러한 일련의 사고의 흐름은 독서가 가져다는 주는 즐거움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학적 상상력은 때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의 훈련이라는 점에서 독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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