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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놀이마당

너로 인해 잠깐이나마

by 내복과 털양말

아들에게,


어린이들은 한번 크게 아프고 나면 자란다는 말이 있지. 뒤집어 이야기하면 자라려면 아파야 한다는 소리인가 봐. 너는 기관지염에 걸려서 열이 오르고 밤엔 아프다고 엉엉 울면서 잠을 설쳤어. 그래서 태권도 시범단 수업도, 네 친구 생일파티도 못 가게 되었어. 네가 아쉬워할 생각을 하니 내 마음이 쓰렸지만, 어쩌겠니, 넌 푹 쉬며 회복해야 하는 걸.


넌 아플 때면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 하루에도 몇 번씩, 거의 눈만 마주치면 사랑한다고 해.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넌 엄마의 예상을 뛰어넘었더라.

“어젯밤에 내가 아파서 엄마아빠를 걱정시켜 미안해요. 엄마아빠 사랑해요. 날 낳아줘서 고마워요. “

엄마는 아이들의 어휘에 휘둘리지 말라는 말을 떠올렸지. 내 아들은 지금 아파서 많이 감정적이 되어있고, 엄마 아빠가 걱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넘실대는구나, 하고 받아들였어. 엄마는 당연히 너는 미안할 것 없고, 내가 너를 무한히 사랑한다고 말했지. 모두가 진심이었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한 어른의 말이었어.


낳아줘서 고맙다는 말은 유치원에서 가르쳐줬겠지? 재미있는 건, 엄마는 그 말을 쓰라고 누군가가 시키지 않았을 때 자발적으로 한 적이 없어.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어. 어쩌면 떠올려본 적 자체가 없는 말이 더 가까웠어. 게다가 엄마는 마음에 없는 말을 하기 싫어하는 어린이였거든. 학교에서 시켜서 어버이날에 그런 문구를 넣고 색종이 카네이션을 붙인 카드를 보냈을 때 네 외할머니도 쓱 보고는 식탁에 탁 내려놓으셨지. 그렇게 감흥이 없어 보이기도 쉽지 않겠더라. 나도 자발적으로 한 건 아니었지만 감동하는 시늉은 보고 싶었나 봐. 그래서 엄마는 그 말이 싫었어. 선생님은 괜히 그런 걸 시켜서 말이야, 하고 생각했어.


어른이 되고 보니 더 납득이 가질 않더라. 세상이 뭐 그리 꽃놀이마당이라고, 물어보고 낳은 것도 아닌데 낳아줘서 고맙다고 말하도록 왜 가르치는 걸까? 그게 효도의 기본자세라서 그런가? 엄마는 어쩌면 마음속에 반항아가 어릴 때부터 딱 버티고 앉아있었는지도 몰라.


엄마는 그냥 너를 사랑하고, 너도 그냥 그대로의 엄마를 사랑하면 돼. 효도해야 한다는 당위보다는 정말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이라면 다 좋고 고마워. 착한 아들이 되기 위해서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할 생각은 버리고 자라났으면 해. 그런 마음은 짐이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 네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하렴.


내게 순수한 감정의 파도를 언제나 철썩철썩 보내는 네게 참 고마워. 그러니 그 말을 할 사람은 나야. 내게 태어나줘서 고마워. 네 예쁜 말을 들을 때면 너로 인해 세상이 잠깐이나마 꽃놀이마당 같아. 글자 그대로 믿고 싶게.


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야. 어쩌면 효자효녀의 도리를 다 하는 것보다 그게 더 어려워. 든든하고 너그러운 부모의 도리를 하는 것보다 그게 더 어려워. 어려운데, 고귀한 것 같아. 눈물 나게.


너의 완쾌를 바라며,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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