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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더 좀 그래

건강이란 녀석을 꼭 잡으려고

by 내복과 털양말


아들에게,


너의 성장을 체감할수록 요즘 엄마아빠는 늙어가는 걸 몸으로 느끼고 있어. 엄마는 한쪽에만 몰려 나던 흰머리가 자리를 가리지 않고 머리 전체에 흩어져서 나기 시작했어. 네게 결국 할머니 같다는 말을 듣고야 말았지. 너는 아무 생각 없이 해맑게 웃으면서 흰머리다! 엄마, 할머니가 된 것 같아요! 했지. 엄마는 머리가 축축한 채로 오래 있는 걸 싫어해서 염색을 싫어했거든. 그래서 하는 둥 마는 둥 어쩌다가 한 번씩 했는데, 이젠 그걸 참고서라도 정기적으로 염색해야 할 때가 왔네. 눈도 노안이 와서 요즘은 예전보다 희뿌연 세상을 보는 시간이 늘었어. 다행히 큰 이상은 없어. 그냥 노화야. 네 아빠도 녹내장을 대비하며 눈 건강에 신경 써야 한대. 엄마아빤 그저 운동만이 살 길이라고 이야기를 나눴지.


그래서 그런가, 요즘 들어 더 좀 그래. 네가 밥을 더 잘 먹는 모습이 보고 싶고, 한 끼만 덜 먹어도 마음이 쓰이더라. 골고루, 정해진 시간 안에 잘 먹었으면 좋겠어. 그놈의 밥. 밥이 뭔지, 엄마 아빠랑 너랑 셋이서 아주 씨름을 했지. 식사 시간이 올 때가 되면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게 되더라고. 넌 아이라서 그런지 원래 그렇게 타고난 건지, 맛에 예민하고 깐깐하지. 주는 대로 척척 잘 먹는 아이를 보면 그런 애들 부모가 부럽기도 했었어. 내 음식이 그렇게 맛이 없는지 자신도 없어졌고.

다행히 최근에 얻은 조언을 잘 받아들여서 유치함으로 너의 밥투정에 대처하는 중이야. 음식을 골고루 먹으면 몸속에서 강한 힘이 솟아오르는데, 그것을 골고루 파워라고 부르고, 골고루 파워가 농부의 정성인 밥을 만나야 진짜 힘이 솟아 아빠와 대결해도 이길 수 있다고 했지. 너는 이제 골고루 파워!!!!! 농부의 정성!!!! 하며 외치기도 해. 식사 시간이 한결 수월해졌어. 엄마 아빠가 딱 버티고 앉아서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잔소리를 아무리 해봐야 이런 효과가 나질 않았지. 이렇게 웃으며 먹을 수 있을 방법을 이제라도 찾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너는 요즘 먹는 양도 늘었어. 쑥쑥 자라는 우리 아들. 밥 다 먹고 부자가 쩌렁쩌렁 기합소리를 내고, 슬쩍 져주는 네 아빠 모습에 엄마도 절로 호탕하게 웃게 되더라. 평소에 엄마아빠는 저녁을 준비한 사람은 설거지를 안 했지만, 네가 밥을 잘 먹는다면 엄마가 저녁 준비하고 설거지도 하는 게 뭔 대수겠니. 네가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게다가 반찬이랑 골고루 먹었다는데! 우리 아들 건강하게 자라는데! 이젠 주먹도 제법 매워졌는데!


평소엔 이러지 않는데, 엄마 아빠가 늙어간다는 걸 체감하는 순간엔 어쩔 수 없이 다른 생각이 들 때도 있어. 네가 한창 동생을 외칠 때, 첫 아이를 유산하지 않았더라면 넌 둘째가 됐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가정은...... 그래. 무의미하지. 너 하나만 낳되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아니면 아예 결혼 초기에 일찍 낳았더라면 더 좋았을까, 생각해 보아도 더 일찍 나온 아이라면 네가 아니었겠지. 그런데 난 너라는 작은 사람을 참 좋아하는걸. 네가 다른 이의 아들이었어도 너라면 이뻐했을 거야.

널 외동으로 키우는 게 우리 가족으로선 최선이란 사실을 잘 알아.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 아빠의 나이와 몸 상태나, 우리 집 가정경제나, 엄마가 퍼줄 수 있는 사랑의 정도를 생각했을 때 네가 외동인 게 최상이야. 다행히 너도 요즘엔 동생 노래를 더는 부르지 않고, 외동아이가 가지는 장점을 말하기도 해. 우리의 현실보다 더 좋은 상황을 상상하면 삶이 좀 아쉬워질 수 있겠지만, 아쉬운 마음은 접어둬야지. (엄마의 마음속엔 난로가 있어서, 이런 마음은 장작이랑 같이 떼면 돼.)


엄마 아빠는 너를 튼튼히 자라게 해 주면서 건강을 지켜서 네게 짐이 되지 않는 것이 남은 인생의 중대한 목표 중 하나야. 건강이란 녀석을 꼭 잡으려고.



오늘 너는 유치원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을까?

공기도 깨끗하고, 너도 다시 건강을 찾은 좋은 날이야.



이따 만나,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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