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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수준

그 기준을 잡지 못해서 갈팡질팡

by 내복과 털양말

아들에게,


확실히 일곱 살이 되니 조금 달라진 것 같아. 작년 하고만 비교해도 거리가 느껴지는구나. 너는 여전히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하지만 작년 하고는 달라. "내가 왜 그래야 해요?"라든가, "내 마음을 엄마가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어요."라든가, "내 소원을 또 엄마가 가로막네요."라든가 하는 말들을 하지. 자연스러운 일 같기는 한데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얼마 전에 엄마가 네 친구 엄마랑 같이 이틀간 아르바이트란 것을 했거든? 거기서 일하다가 점심시간에 엄마가 너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어. 그 사람들에겐 예전에 엄마가 어릴 때 외할머니 때문에 힘들었던 점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었고 타인을 가르치려들지 않고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밝히는 사람들이라 귀담아들어보았지.


엄마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겠네. 엄마는 완벽주의자적인 경향이 있어서 무엇을 생각해도 기준을 높이 잡았어. 내가 가진 이상은 너무 높았고, 그러다 보니 현실 속의 나 자신은 형편없는 결과를 내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한 게, 글쎄, 얼마나 됐을까? 아마도 평생 그랬던 것 같아. 그래서 네게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어. 네게는 기대치를 높게 잡지 않았다고 생각했지. 너를 한 명의 작은 사람으로 인정하고 존중했어. 어리니 모른다, 어리니 이해 못 한다, 이런 태도는 갖지 않으려고 했고, 애초에 그런 태도가 있지도 않았어. 어리면 다 이해를 못 하는 건가? 어린 애도 잘 설명해 주면 다 알아듣는다고 생각했었지. 아마도 엄마가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네가 뭘 안다고?"라는 말이 싫었던 게 반대급부로 작용했겠지. 그래서 엄마는 너를 오히려 더 존중해 주고 네 생각을 물어보고 네 의견이 있다면 더 주장하라고 했었어. 그런 내 자신이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대견하게 여겼어. 그런데 그 사람들 생각으로는 그런 생각 자체가 너무 기대치가 높다는 거야. 쉽게 말하자면, 여섯 살 아이를 고등학생처럼 대하고 있다는 거지. 이성적으로 설명해서 못 알아듣는다고 답답해하는 엄마의 마음이 여섯 살, 일곱 살 아이를 대하는 엄마의 마음 하고는 달라야 한다고 말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엄마는 잘 몰랐어. 그 부분이 제일 어려웠지. 얼마나 존중해줘야 할지, 아니면 그 반대로, 얼마나 애 취급을 해야 할지 그 기준을 잡지 못해서 갈팡질팡한 거야. 어떤 상황에서 존중해 주고 어떤 상황에서 엄마가 나서서 알아서 판단해줘야 하는 걸까? 그게 그렇게 어렵더라. 그러는 사이 엄마가 이해하기 수월한 방식이나 수준으로 너를 대해왔겠지. 네가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한 말을 하는 걸 보면 다 내 탓 같았어. 두 번만 실수해도 "엄마, 난 이걸 왜 이렇게 못하는 걸까요?" 하며 잔뜩 주눅 들어 말하는 네가 꼭 내 모습 같아서 무서웠어. 가슴이 출렁 내려앉는 거야. 나는 너를 자존감 있는 사람으로 키우는 게 지상 목표였는데, 벌써부터 너무 쉽게 풀이 죽고 스스로에게 인색한 말을 하는 너를 보면 엄마는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 나의 실패가 너의 고통이 된다고 생각하니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한숨이 쏟아져내리더라. 네가 기저귀를 떼면서 배변 훈련할 때 엄마가 너무 무섭게 화를 냈나? 엄마가 그랬던 것 같아. 네가 보내는 신호를 엄마가 잘 이해하지 못했나? 엄마가 그랬던 것 같아. 생각하면 할수록 엄마도 엄마를 괴롭히고 있어서 생각을 그만뒀어. 나를 비난하기 시작하면 너에게 더 나쁜 엄마가 될 것 같더라고. 그래도 엄마가 늘 너를 응원한다고, 세상 사람 모두가 너를 욕해도 엄마아빠만은 끝까지 네 편이라고 한 말을 네가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스스로 다독거렸어. 대단히 잘은 못하고 있는 것 같지만 완전히 다 망쳐버린 것 같지는 않다고 말이지.


그러다 재미있는 조언을 들었어. 아이에게 어떻게 대하고 어떤 언어를 사용할지 잘 모르겠다면 이렇게 생각해라. 내가 생각하기에 유치하다 싶으면 그게 아이에게 더 맞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신선하다고 할까? 엄마는 그 생각을 못했는데, 듣고 보니 나름대로 엄마에게 효과를 가지는 기준점이 되는 것 같아. 그리고 또 하나, 네 말의 무게나 의미를 네가 잘 알고 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더라. 아무리 아이라도 말을 입 밖으로 내기 전에 생각이란 과정을 거치고 내놓는데, 그러면 자기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는 말이 아닐까?라고 엄마는 생각했었지. 모르면서 내뱉는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아이를 너무 얕보는 거 아니냐고 말이지. 그런데, 말에 담긴 욕망을 읽어야 하는 건가 봐. 그 말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아이의 말은 손가락이니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인가 봐. 이건 확실히 엄마가 잘 못했던 것 같아.


네게 눈높이를 맞출 줄 아는 엄마가 되고 싶어. 비난하지 않고 비웃지 않는, 포용적인 엄마가 되고 싶어. 너를 위해서만이 아니야. 엄마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해.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 따뜻하고 밝은 표정을 많이 하고, 많이 칭찬해 주는 엄마. 서투른 엄마라서 네 마음에 상처가 많았을까 봐 걱정이 되네. 하지만 어쩌겠어? 지나간 시간은 이미 지나간 것을. 앞으로, 잘해볼게.



많이 사랑해. 이것만은 꼭 알아줘.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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