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에 능숙한 멋진 여전사 아내를 둔 너
아들에게,
얼마 전에 태권도장에서 떡볶이파티가 있었지. 도장에 안 다니는 친구들도 두 명까지는 데려와도 된다고 공지가 떴어. (관장님은 참 스무스하게 영업을 잘하시는구나.) 너는 유치원에서 한 명, 어린이집에서 한 명해서 두 명을 데리고 가겠다고 했는데 사실 엄마는 별로 자신이 없더라. 처음 만나는 사이를 한 차의 뒷좌석에 조르르 붙여 앉히면 얼마나 어색할까! 하지만 생각하고 보면 처음 만나는 사이라던가, 한 차라던가, 뒷좌석에 조르르 붙여 앉는다던가 하는 게 불편한 건 낯을 가리는 엄마뿐이겠지. 어린이들은 금방금방 친해지니까 금방 시끄러워졌을 거야. 뭐, 엄마가 꾸민 게 아니라, 유치원 친구가 마침 그날 오후에 선약이 있었어. 그래서 어린이집 친구(여자)만 데리러 갔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라 반가워할 줄은 알았어.
오랜만에 어린이집 주차장에 도착하니 너도 조금 들떴는지 함께 들어갔지. 네 친구를 데리고 하원하려는데 감사하게도 다들 우리를 기억하고 계시더라. 선생님들도 다 인사해 주시고 어찌나 감사하던지. 네가 있던 반 친구들이 갑자기 네 이름 석자를 막 외치는 거야. 나 기억나? 이러면서. 함께 떡볶이파티에 갈 그 친구와 네가 주고받는 첫 대화에 엄마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눌렀어.
"너, 그사이 잘생겨졌구나?"
"너도 예뻐졌는걸."
하.. 지금 생각해도 엄마는 웃음이 나네. 순간순간 드는 생각이나 느낌을 꾸밈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어린이들은 언제 봐도 사랑스럽고 귀엽지. 너희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에 엄마가 얼마나 드라마를 보는 기분으로 집중해서 봤는지 몰라. 다른 어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네 이야기가 나오면 엄마는 분명 이 대화를 빠트리지 않고 언급할 것 같아. 떡볶이파티에서 피구도 하고 잘 놀고 와서 우린 네 친구를 데리고 집에 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또 둘이 더 놀았지. 너는 네 또래 남자애들만 있는 유치원에서 로봇 가지고 싸우는 놀이만 하느라 (물론 네가 이 놀이를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목이 말라있던 엄마아빠놀이를 했어.
"여보, 이리 와요, 아기들을 재워야죠."
"네, 여보."
"여보, 우리 애들 재워놓고 밤드라이브하고 오자요."
"좋아요, 여보."
엄마아빠들이 애들 재워놓으면 스르르 일어나서 어른들만의 시간을 즐기는 건 또 어떻게 안 건지... 엄마는 들으면서 뜨끔해서 낄낄 숨죽여 웃었지 뭐야. 너희들은 엄마의 실내자전거에 타고 검(연보라색 스티로폼 막대)을 휘두르며 뒤쫓아오는 괴물들을 숭덩숭덩 베며 다이내믹한 밤드라이브를 즐겼어. 네 아내는 운전을 매우 잘하더구나. 뒷좌석에 앉아서 괴물과 전투를 치르더니 주차할 때쯤 되니 자리를 앞으로 옮겼어.
"여보, 주차는 내가 할게요."
"그래요, 여보."
주차에 능숙한 멋진 여전사 아내를 둔 너는 그날 정말 즐거워하더라. 엄마가 얼마나 귀를 쫑긋하고 너희 엄마아빠놀이를 들었는지 몰라. 말끝마다 "여보"라고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다니.
조만간 또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자!
이따 만나,
사랑해.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