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선의가 선의 그대로 전달되는 건 아닌가 봐
아들에게,
엄마아빠는 자주 이야기를 나눠. 보통은 엄마가 이야기를 꺼내지. 아빠는 주로 이야기를 듣다가 본인은 생각을 말해. 대부분은 엄마가 하루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가 내가 어떤 마음이었다는 둥 어떤 생각이 들었다는 둥 계속 말하거든. 엄마아빠는 네가 태어난 뒤로는 주로 네 이야기를 해. 뭐, 당연한 거지. 나는 나를 던져 너를 돌보고, 네 아빠 또한 자신을 던져 일하고 돈을 벌어와. 그러니 내게는 네가 주제가 되고 생각의 원천이 되지. 다행히 아직까지 너는 유치원이나 태권도장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줘.
유치원의 한 아이는 유독 너만 놀린다지. 풀이 죽어 말하는 네 얼굴을 보니 엄마가 막 부아가 돋아서 뭐라고 하고 싶었어.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나서 맨날 남 놀리냐? 하고 받아치라니까 너는 그러기 싫다고 했지. 점잖게 타이르고 싶다고. 엄마는 네가 남들에게 뾰족한 말로 쏴줄 수 있기를 바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도 딱히 그런 아이가 아니었네. 엄마도 그냥 꾹 참았지. 네 외할머니가 이렇게 하지! 저렇게 하지! 하고 말하면 엄마는 그러지 못한 나 자신이 더 못나고 부끄러웠지. 왜 나는 저걸 못하지? 하고 말이야. 분명 네 외할머니도 엄마를 도우려고 하신 말이었겠지. 그런데 모든 선의가 선의 그대로 전달되는 건 아닌가 봐.
엄마아빠 둘 다 네게 그런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아. 이렇게 해보면 어때? 하고 자꾸 해결 방법을 내미는데 넌 싫다고 말했었어. 콩 뿌린 데 콩 나지. 어쩌겠어. 남을 먼저 배려하는 네게 사실 제일 중요한 건 너라고, 너를 가장 아끼고 다독여줘야 한다고 말해봤자 그 방법을 알기를 하겠니, 안다 해도 쉽기나 하겠니. 엄마도 아직 잘 못해. 네겐 일찍 알려주고 싶어서 계속 말했지만 나이 먹고 하나 나이 덜 먹고 하나 어려운 건 마찬가지겠지.
너는 타고난 성정이 부드럽고 따뜻하고 순해. 충분히 훌륭한 새싹이야. 그런 너 자신이 뭔가 모자라다거나,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갖지 않게 해주고 싶어. 네가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을 만들려 들지 않으려고 해. 타고난 모습 그대로 외부 충격에 대응하는 방법을 네가 알게 되길 바라야지. 그게 옆에서 지켜보기에 마음 아프고 쉽지 않더라도. 그래서 이제는 네게 하지 않을 말들이 생겼어. 구하지 않은 조언이나 무언가를 해야 옳다는 당위 같은 건 말하지 않으려고.
무심코 튀어나갈지도 모르겠어. 워낙에 엄마가 교과서 같은 인간이라. 자꾸 반사적으로 가르치려 들지도 모르겠어. 네가 나라는 쪽에서 나온 푸른빛이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말이지. 마음이 머리보다 먼저 움직여버릴지도 몰라. 입 속에 그런 말은 미리 걸러주는 망이라도 달렸으면 좋겠다. 그저 네가 힘들었다고 하면 "힘들었구나, 엄마도 그 상황에선 힘들었을 것 같아", 네가 화났다고 하면 "아유, 듣고 있자니 엄마까지 화가 막 나는데!"라고 해보려고.
네가 아직 너 자신을 응원하지 못하니 엄마 아빠가 널 응원해 줄게. 무조건. 언젠가 엄마는 죽어서도, 죽었다 깨나도 네 편이라고, 난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다고 말했을 더니 네가 울면서 안겼지. 너무 감동적이라서 눈물 나요, 하면서. 그 마음으로 꼭 안아줘야지.
시집을 주문했어. 제목은 <괜찮아, 너는 너야>와 얼마 전에 엄마가 잘 가서 보는 브런치 작가님이 언급하셨던 <바람도 키가 큰다>야. 읽으라는 말은 하지 않고 그냥 네 눈에 띄는 곳에 놔뒀어.
쌀쌀하네.
든든하게 입혀 등원시키니 엄마 마음이 편하다.
이따 만나.
사랑해.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