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가족여행
아들에게,
지난주에 우리는 드디어 여행을 다녀왔어. 네 첫 해외여행이라 너는 참 오래도 기다렸고, 네 주변의 모든 사람에게 만면에 미소를 띠고 알렸더랬지. 너의 대만여행을 모르는 사람이 없더라. 전에는 태권도 수련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도장 앞에서 기다리다가 관장님을 마주쳤었는데 “아, oo어머님, 오늘 여권 사진 찍고 오셨다면서요. 잘 다녀오세요.” 하시기도 했지.
네 아빠는 이번 여행을 우당탕탕 가족여행이라고 했어.
계획대로 흘러가질 않더라고. 엄마아빠는 원하던 걸 많이 먹지도 못하고 원하던 스타일의 여행을 하진 못했지만, 그건 상관없었어. 어차피 우리가 즐길 생각보다는 가이드가 된다는 마음으로 갔으니까. 엄마는 10년도 넘게 묵혀둔 중국어를 다시 하느라고 진땀을 좀 흘렸지만, 그래도 하려던 말은 웬만하면 했어. 얼마나 더디 입이 풀리는지는 엄마만 알았지. 엄마를 빼고는 아무도 중국어를 할 줄 몰랐으니까.
푸드 코트에서 네 삼촌이 시킨 음식에 밥이 4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아서 엄마는 살짝 화가 났어. 음식 주문하고 15분 뒤에 나온다고 기다리라더니, 15분 뒤에 가니까 아직도 밥이 안 되었다고 10분 뒤 또 오라고 했는데 또 가니 더 기다리라고 했다잖아. 그 이야기까지 들으니까 화가 나서 엄마는 주문서를 들고 그 음식점으로 갔어. 엄마가 화난 모습을 처음 본 네 고모와 사촌누나는 놀라서 엄마 뒤를 따라왔다지. (네 사촌누나 말로는 싸움을 직관하기 위해서였다고 해) 밥 없이 먹으면 얼마나 짠데, 일행은 밥도 다 먹었는데, 음식 주문하고 40분이 지나도록 밥이 안 나오는데 이런 게 대체 어디 있느냐, 환불해 달라. 흥분하니까 기억 저 밑에 숨어있던 단어들이 생각이 나데? 환불은 안된다기에 엄마는 환불해 달라는 말을 세 번이나 더 했어. 그러니 밥 말고 다른 음식은 먹었으니 반액만 환불해 준다길래 네 고모를 쓱 쳐다보면서 형님, 반액만 돌려준대요, 하고는 돈을 받아왔지. 하.. 정말 예상 못한 일이었어. 대만은 대부분 친절하고 서비스에 실수가 잘 없었거든. 엄마는 그날 저녁 많은 말이 생각나면서 악악 소리 없이 비명을 질렀어. 더 우아하게 항의할 말이 그때서야 생각나더라?
그거뿐만이니. 아시아에서 제일 큰 동물원에 간다고 출발했는데, 곤돌라 타고 올라가다가 엄마는 멀미하지, 네 아빠는 높은 곳을 무서워해서 엄마 손깍지 끼고 선글라스 쓴 채로 눈 질끈 감고 땀 흘리지, 너는 너무 더워서 축축 쳐지기 시작하지. 내리자마자 정신 차리고 아이스크림부터 먹고 길거리 음식 좀 먹으면서 우리 셋은 한마음이 되어 동물원은 패스하고 그냥 내려가기로 했지. 봄이니 마음 놓고 간 건데, 대만은 벌써 여름이더라. 이러니 우당탕탕이 맞지.
그래도, 너는 말했어.
“대만이 왜 대만인지 알겠어요.”
“왜?”
“대만족이라서!”
너와 가족들이 만족했다면 그걸로 됐어. 밤의 용산사는 근사했거든. 화타를 쉽게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지만 기어코 화타상 앞에 가서 가족의 건강을 빌기도 했어. 너는 꾸벅꾸벅 인사도 잘하더니만 어떤 대만아저씨가 하는 걸 보고 따라서 절도했지. 오리고깃집도 아주 맛이 좋았고. 밀크티와 과일주스, 망고빙수도 얼마나 맛이 좋던지.
우당탕탕인데, 우당탕거리는 사이사이에 많이 웃었어!
나중에 엄마의 대만인 친구랑 이야기하면서 네 말을 전해줬더니 그게 대만 관광청 슬로건이라더라?
신기하게 네가 대만 관광청이랑 통했네!
다음번엔 다른 나라로 가보자.
사랑해.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