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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있어

나만 생각하면 대성공인데

by 내복과 털양말

아들에게,


엄마에겐 요즘 고민이 있어. 네 유치원 친구의 엄마 때문이야.


먼저 탁 털어놔볼게. 엄마는 그 사람이 싫어. 처음 자기 집에 초대한 날에 온갖 질문을 다 하더라. 집안 배경, 경제 수준, 종교, 둘째 계획 등등 도대체 이 무식과 무례는 뭔가 싶을 정도로, 상식이란 허구인가 싶을 정도로 질문을 던져댔지. (그런 상세하고 무례한 질문은 결혼 이후 십 년을 넘기도록 네 할머니께도 들어보지 않은 거야.) 아마 네가 걸려있지 않은 관계였다면 엄마는 아마 면전에서 내가 당신에게 면접 보러 온 신입 지원자로 보이냐고 했을 것 같아.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네 유치원 생활이 험난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먼저 들어서 참고 웃는 낯으로 대했지. 집에 올 때쯤 되니 얼굴에 경련 일어나는 줄 알았지 뭐야. 엄마가 거슬리는 대답을 했는지 그 여자는 딱 그다음 날부터 엄마와 눈길도 잘 안 마주치려고 하더라. 웬만하면 인사도 안 하려고 하고, 필요한 이야기가 있다면 딱 그 말만 하고 인사해 버려. 그 여자랑 친한 다른 애 엄마도 똑같이 내게 거리를 둬버리더라고. 둘이 친하다니 당연한 수순이겠지.


그걸 성공이라고 봐야 할지 실패라고 봐야 할지. 나만 생각하면 대성공인데. 너는 자꾸 유치원 친구들을 부르고 싶어 하고, 그 적은 인원에 누구 하나만 부르기엔 미안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는 꾸역꾸역 그 엄마에게 정중하게 연락하지. 답장은 자정에 가까워서 올 때가 대부분이었네. 지쳐서 기절한 듯 자는데 그 여자의 연락이 오면 엄마는 어찌나 성질이 나던지. 내가 자기랑 연애라도 하는 거야 아니면 우리 둘이 그렇게 막역한 사이라도 되는 거야? 예의와 개념을 지켜야 할 것 아냐. 화딱지가 나서 정말.


얼마 전에 네가 하원하던 때에 그 여자가 유치원의 다른 친구를 자기 집에 데리고 가더라고. 집에 가서 놀자고. 물론 너는 태권도에 가야 했으니까 같이 가자고 해도 안 갔겠지만, 네 앞에서 대놓고 자기들만 놀러 가겠다고 말하고 네게 인사도 안 하는 모습을 보자니 엄마가 괜히 그 여자 아들에게 친절하게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새 장난감이나 즐거운 일이 있거나 할 때 자랑도 하고, 그게 아니더라도 친구들을 부르고 싶어 하는 네 어린 마음에 엄마가 걸림돌이 되기는 싫은데. 솔직히 말하면 엄마는 네가 “친구이랑 집에서 놀고 싶어요”라는 말을 할까 봐 조마조마하단다. 뭐, 어쩔 수 없지. 엄마는 네 마음과 바람을 가장 우선시할 수밖에. 일단 월요일은 잘 넘긴 것 같다.


오늘은 네 어린이집 친구 엄마에게 병문안 가기로 했어.

잘 회복되길 바라고 와야지.


우리, 다 아프지 말자.

아파도 네 어린이집 친구 엄마처럼 씩씩하게 회복하기!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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