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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또 우리의 하루를

삭신이 쑤시네

by 내복과 털양말

아들에게,


엄마는 지금 매우 피곤하구나. 외할머니댁에 가서 2박 하고 친할머니댁에 와서 1박 하는 일정 중 오늘은 마지막 날이야. 서울에 오는 길에 운전만 6시간 넘게 걸렸지. 너는 징징대지 않고 쾌활하게 이야기하다가 쉬다가 자기도 하며 잘 왔지. 기대도 안 했는데 고모랑 누나형아도 다 보고 고모집에 가서 놀다가도 왔어. 얼마나 즐거운 하루니.


늙는다는 건 서글픈 일이더라. 네 외할아버지는 이제 상태가 예전 같지 않으셔. 뇌졸중인 네 외할아버지는 반신이 마비된 후 거의 은둔에 가까운 삶을 사셨지. 사람들과 교류랄 게 없었고, 운신도 어려웠지. 그래도 재활운동은 꾸준히 하셨어. 하지만 이젠 굳은 쪽 발이 아프셔서 걷기 더 아파하시고 그러면 몸은 더 악화되겠지. 정신도 조금씩 몸을 떠나시는 것 같기도 하더라. 운동과 사람들과의 교류는 절대로 손에서 놓으면 안 되더라고. 그 두 활동이 치매와 노화를 늦춰준대. 엄마는 마음이 착잡해져서 밤중에 쉽게 잠들지 못했어. 어쩌면 제일 먼저 보내드릴 분이 네 외할아버지가 될지도 모르겠어. 예감이 좋지 않아. 그래도 힘을 내서 우리는 또 우리의 하루를 살아야 해.


가정의 달답게 두 조부모님을 다 뵙고 집에 돌아와서 마지막 하루는 집에서 푹 쉴 수 있어야 할 텐데. 집 밖에서 연휴를 모두 보내고 마지막날 오후만 쉬게 되어 피로를 풀 시간이 모자라지나 않을까 걱정이네. 대만에 연등제에 조부모님 댁 투어에… 주말마다 돌았으니 이번 주말에는 제발 집에서 쉬고 싶구나.


엄마가 키우던 벚나무를 아는 사람에게 주기로 해서 그 이모네 식구랑 삽질 좀 같이 하고 고기도 구워 먹자. 벚나무를 꼭 키우고 싶었지만 다음에 우리가 집을 샀을 때 진정한 내 마당에서 심어야지. 지금 마당은 벚나무까지 키우기엔 조금 답답하네. 너무 욕심을 냈었나 봐. 결국 비우게 된다.


후. 삭신이 쑤시네.

너도 피곤할 테지?

오늘은 일찍 자자.

사랑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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