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행 가방은 뭐에요?
눈치를 보니 찬양팀 사람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다들 질려하는 눈빛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잘생겼다!”, “성시경 닮았다!”, “부티가 흐르는 게 꼭 중국 재벌 아들 같다!”며 떠들던 율동팀 자매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15명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중국인이 한국어로 KO를 시켜버렸다.
말도 빠르고 발음도 부정확해서 알아듣기 힘든데, 정작 본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맑게 질문을 쏟아낸다.
“어느 대학 다녀?”
“어느 교회 다녀?”
한마디로, 우리 신상 털이 중.
그리고 나는 번호까지 줘버렸다. 게다가 15명이 보는 앞에서 딱 내 번호만 물어본다? 이거,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 아닌가?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남자 핸드폰에는 2,000명 이상의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고, 나는 그중 한 명일 뿐이었다.
내가 교회에서 음익 간사로 일을 하니 단순히 교회 정보가 필요해서 번호를 물어봤다고 한다.
흠…그렇다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혼자만의 상상을 하며 헛물만… 켁켁.
주말이 지나고, 여전히 헛물만 캐고 있던 나는 고민 끝에 남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강남역에서 우리는 만남을 가지기로 했다.
강남역 9번 출구 앞에서 본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여행 가방 커리어를 들고 서 있었다.
이 남자, 대체 뭐지?“
해가 어둑해지는 시간, 사람들로 북적이는 강남역 거리. 그곳에서 남자는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며 환한 미소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밖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었고, 니름 데이트라 생각하고 한껏 꾸미고 나왔는데 남자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느라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땀에 절은 그의 모습에 실망이 밀려왔지만, 이내 여행 가방 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증이 스쳤다.
“그 가방은 뭐예요?”
“어, 쓰촨성 재난지역에 도네이션으로 보내려고 교회에서 받은 옷들이야. “
“지금 받아서 오는 길이라 끌고 왔어. 내일 중국으로 보내려고 해 “
“쓰촨성이요?“
“응”
“아…..”
순간 두 달 전 꿈이 생각났다. 쓰촨성이라니…이건 또 무슨 일인가.
우선 당혹스러움을 접어두고 남자와 함께 쌀국수 집으로 향했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이상하게도,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안에서 들었던 그의 말은 빠르고 발음도 어설퍼서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이날만큼은 그의 모든 말이 또렷이 들렸다.
막힘없이 이해가 되었고, 심지어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가 하나님을 만난 과정과 한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지내온 이야기는 무척이나 놀라웠고 신비로웠다.
밖은 어둠이 내려앉았고, 카페 안은 은은한 조명 아래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계속해서 말을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세 시간이 흘렀다.
카페를 나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확신했다.
’ 꿈에서 본 키다리 아저씨가 이 남자이구나. 그런데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까? ‘꿈에서 본 남자가 당신이에요’라는 말을 그가 믿을 수 있을까? ‘
집에 돌아온 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만약에 꿈에서 보여주신 남자가, 이 사람이 맞다면 그에게도 같은 마음을 허락해 주세요. 저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
그렇게 두 달이 흘렀다. 가을이 막 시작하려는 9월 1일 늦은 저녁, 그에게 전화를 걸려왔다.
“우리 결혼하자.”
고작 그 후로 서너 번 더 만난 게 전부였다. 정식으로 사귀자는 말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는 다짜고짜 결혼을 하자고 한다.
그리고, 내 대답은 당연히 이러했다.
“응,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