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희한한 남자가 있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무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 시절 나는 교회에서 음악 간사로 일하고 있었다.
느긋했던 어느 오후, 찬양팀에서 율동을 맡고 있던 민아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대전에서 진행되는 중국 유학생들을 위한 기독교 집회에 율동팀으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대만에서 온 건반 반주자가 집안 사정으로 급히 돌아가야 했고, 마지막 저녁 찬양 집회를 반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먼저 담임 목사님의 허락을 받고, 저녁에 고속버스를 타고 대전으로 향하기로 했다.
강북 고속터미널에서 대전행 버스표를 구했지만, 늦게 구매한 탓에 버스 문 바로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눈앞에 커다란 앞 유리가 있어 불편했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피곤하거나 짜증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도가 흘러나왔고, 기쁨이 샘솟듯 넘쳤다. 나도 모르게 입술에서 감사의 기도가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찬양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낄 정도로, 특별한 감정에 압도된 채 세 시간 가까이 뜬눈으로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 터미널에 도착한 후, 택시를 타고 수련회 장소로 이동했다. 어느덧 밤 9시가 가까워졌지만, 다행히 찬양 집회는 아직 시작 전이었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이미 많은 은혜를 받은 흔적이 묻어났다.
이제 남은 것은 신나게 찬양하는 일뿐이었다. 나는 찬양팀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건반 앞에 섰다.
그때 내 눈앞에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얀,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단정한 청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환한 미소를 띠고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어설픈 동작으로 율동을 따라 하면서도,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렇게 마지막 날의 찬양 집회는 은혜롭게 마무리되었고,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가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수련회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누군가는 짐을 정리하고, 누군가는 삼삼오오 모여 작별 인사를 나누며 떠났다.
찬양팀도 악기와 마이크, 스피커 등을 정리하며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키 크고 하얀 얼굴의 남자가 자꾸 여기저기에서 나타났다. “도와줄 거 없어요? “라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손을 보탠다.
알고 보니, 수련회에 참석한 다른 중국 유학생들은 부산에서 유학 중이었지만, 이 남자는 서울에서 소문을 듣고 혼자 찾아와 ‘셀프 등록’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기수 회장으로 선출되었다고 했다.
“아니, 뭐 이런 중국인이 다 있지?”
그런데 문제는, 이 남자가 서울로 돌아갈 차편이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서울에서 내려온 찬양팀 멤버들과 함께 교회 버스를 타고 올라가게 되었다.
나는 피곤함에 버스 안쪽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뒷자리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빠른 한국어가 계속해서 잠을 방해했다. 분명 한국어인데, 발음이 어딘가 어색하고 속도도 빨랐다.
“누구랑 저렇게 계속 얘기하지?” 싶어 슬쩍 뒤를 돌아봤는데, 놀랍게도 그 남자는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무려 두 시간 넘게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가던 그는, 마침내 내가 고개를 돌리자 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는 반가운 듯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30분이 넘도록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