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품은 남자 이야기 (4)
남자는 매일 밤 울었다.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성령의 은혜에 푹 빠진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되었다.
갑자기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읽기 시작한 남자를 본 홈스테이 아줌마는 당황했다. 결국, 중국에 있는 남자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고발하듯 말했다.
“당신 아들이 이상해졌어요. 갑자기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읽어요. 큰일 났어요.”
공산당원의 아들이 예수를 믿는다니, 아버지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며 남자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 남자의 결심은 단호했다. 그는 어렵게 자신이 찾은 ‘진리’를 버리고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다.
아버지는 경제적 지원을 끊겠다고 협박했다. 홈스테이 아줌마 또한 “계속 예수를 믿을 거면 당장 집을 나가라”며 압박했다.
모두가 그가 결국 ‘인민의 아편’이라 여기는 종교를 포기할 것이라 믿었지만 남자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알겠습니다. 나가겠습니다.”
그렇게 그는 홈스테이 집을 떠났다. 그리고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도 끊겼다.
20살 중국 유학생이였던 남자는 낯선 타지인 한 국에서 갈 길을 잃었다.
따뜻하게 잘 곳도,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없는 제정적 지원도 먼지처럼 한 순간에 사라저버렸다.
남자는 깜깜한 밤에 가방을 메고 교회로 향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는 교회 강당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밤새도록 기댈 곳도 아는 곳도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형편을 도와달라며 울부짖었다.
그 당시 남자는 몰랐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하게 된 ‘십자가의 고난’ 이였다는 것을
그리고 마침내, 그의 삶 속에서 주권적인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이 펼쳐지는 순간이었음을 그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
어느덧 남자는 한국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던 어학당을 졸업하고 편입을 준비할 시기가 되었다.
중국에서 ‘무역학’을 전공했던 그는 처음 한국 유학을 결심할 때도 당연히 ‘무역학’으로 편입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믿게 된 후, 그의 생각이 바뀌었다. ‘기독교’에 대해 더 깊이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고, 결국 ‘기독교학과’로의 편입을 결심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아버지는 직접 한국으로 날아왔다. 아들과 단판을 짓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약 일주일간 끝없는 논쟁을 벌였다. 누구도 물러설 생각이 없는, 끝이 보이지 않는 대립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남자는 아버지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지도 평생을 공산당을 위해 헌신하셨잖아요.
그것이 아버지 인생의 가치이고 신념이라고 믿으시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 역시 제가 따라가야 할 신념을 찾았어요. 그러니 포기하세요. 제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앞으로 학비와 생활비 지원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단 한 마디만 남기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남자는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이미 아버지의 지원이 끊긴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보고 계심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 달에 200만 원만 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후로 단 한 번도 200만 원보다 적거나 많아진 적 없이 정확히 200만 원씩을 벌게 되었다.
어느 날, 하루 수입이 198만 원에 그치자 남자는 기도했다.
“하나님, 왜 2만 원이 부족할까요?” 그러고는 무심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그 안에 2만 원이 있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삶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했고,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지원한 기독교학과의 첫 번째 중국인 유학생으로 등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