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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쓴 내 모습

하늘을 품은 남자를 만나기 까지 (2)

by 도럽맘

22살이었던 나의 기도는 이러했다.


“하나님, 미국으로 유학 보내주세요.”


“인정받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주세요.”


“안정된 직업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게 해주세요.”


하지만 우리 집에는 나를 미국으로 유학 보낼 경제적 여유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빚에 허덕이며 곰팡이가 피어나는 반지하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미국 유학은 말 그대로 꿈같은 꿈이었다. 그러나 현실이 팍팍할수록 내 안의 욕심은 더 커졌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으시잖아.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니까, 내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실 거야.”


그런 확신으로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두 손을 불끈 쥐고 소리쳐 보기도 하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묻고 흐느끼며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며 내 기도가 상달되길 원했다.


그러나 기도가 깊어질수록 내 마음은 점점 어두워졌다. 현실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무능력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커져만 갔다. 엄마도, 나도 모두 이 가난의 피해자이고, 우리의 삶은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잘 믿고 은혜롭게 반주하는 모습이었지만, 내면은 무너지고 망가지고 있었다. 자존감은 바닥났고, 그 빈자리를 채운 건 헛된 자존심뿐이었다. 나는 그저 모양새만 번지르르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토록 바라던 ‘이상형’을 만났다. 마치 신데렐라처럼, 나는 백마 탄 왕자를 기다렸던 것 같다. 그를 본 순간, “바로 저 사람이야.” 라는 확신이 들었고, 순식간에 깊이 빠져들었다.


처음엔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도 나를 좋아했고, 금세 우리는 커플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더욱 사로잡고 싶은 마음에 애가 탔다. 아는 척, 있는 척, 똑똑한 척, 예쁜 척, 그에게 완벽한 여자로 보이기 위해 온갖 ‘척’을 했다.


부자 집 딸은 아니더리라도 중산층 가정의 딸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데이트가 끝난 후, 반지하방이 있는 우리 집 앞이 아닌, 옆 블록의 큰 주택있는 골목 앞에서 그와 헤어졌다. 아버지는 택시 기사가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으로 둔갑했다. 나는 사이 좋은 부모님 밑에서 사랑받으며 부족함 없이 자란 딸처럼 보이고 싶었다.


데이트를 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 완벽해 보였지만, 내가 쓴 가면은 점점 나를 잠식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잠시 시간을 갖자.”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나는 이유를 물을 수가 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가 내 가면을 이미 알아차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 같았다. 그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이별이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내 자신이 미워졌고, 한심해 보였고,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내가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모든 것이 끝났다는 걸 알면서도,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새어 나오는 물처럼 사랑의 감정은 멈추지 않았다. 수도꼭지를 잠가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손이 그곳을 향하지 못했다.


그래서 미련을 가지고 기도했다. 매일같이,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손을 수도꼭지로 향했다.


“하나님, 미련하게 고집을 부리며 제 뜻대로 기도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이제는 알아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이었다는 것을요. 더 이상 이 일로 울지 않을게요. 하나님께서 저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2년 만에 나는 수도꼭지를 잠갔다.


그리고 그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다.


“딸아, 너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할 사람을 만나게 해줄 것이다. 원석인 너를 다이아몬드로 다듬어줄 배우자를 예비해 두었단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이제 나와 함께 동행하자구나,”


그로부터 3개월 후, 나는 꿈에서 ‘하늘을 품은’ 남자를 보았고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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