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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 여기서 프로포즈를?

무덤사이에서 받는프러포즈

by 도럽맘 Mar 1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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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부모님은 키가 큰 나에 대한 ‘꽃뱀’ 오해를 풀었고, 흔쾌히 결혼을 허락하셨다.


결혼 허락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온 우리는 빠르게 결혼 준비를 진행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었다. 바로 ‘프로포즈’ 였다.


하지만 사귀는 과정도 건너뛰고 결혼을 하게 됐는데 프로포즈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모든 순서가 뒤죽박죽이었기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중, 결혼식을 불과 2주 앞둔 어느 날, 남자가 나를 데리고 합정역으로 갔다.


추운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걸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건가 싶었는데, 도착한 곳은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이었다.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나?’


공연이나 레슨을 받으러 수없이 합정역과 홍대를 오갔지만, 이곳에 외국인 선교사 묘원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남자는 내 손을 이끌고, 빠르고 힘찬 걸음으로 묘원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수많은 묘지가 펼쳐져 있었고, 그곳에는 19세기 말 한국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서구 선교사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선교사들의 어린 자녀들의 묘지가 유독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남자의 의도를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묘지를 둘러보는 동안 나도 자연스레 마음이 숙연해졌다. 한참을 그렇게 둘러보던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나는 이런 고민을 십 대 때부터 해왔어.”


“인생의 가치에 대해서 말이야.”


나는 조용히 남자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선교사님들의 삶을 보면서, 이들만큼 ‘가치 있는 삶’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었어.”


“우리도 이분들처럼 정말 가치 있는 삶을 함께 살아가자.”


말은 멋있었고,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도 이분들의 길을 따라야 하는 걸까?’


‘내가 하고 싶은 것, 내 꿈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걸까?’


갑자기 부담스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삶의 참된 가치’ 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날, 남자는 양화진 선교사 묘원에서 프로포즈 말을 건넸지만, 나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과연 앞으로 우리의 결혼 생활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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