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생활의 마무리, 리사이틀
남자가 중국 교회의 현실을 깊이 이해하며 새로운 비전을 고민하던 시기, 나는 미국에서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졸업 연주 리사이틀을 준비해야 했고, 어떤 곡을 선택할지 교수님과의 면담과 연습으로 정신없이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나 역시 남자 못지않게 미국에서의 유학생활 마지막을 불태우고 있었고, 매일매일 나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된 중국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나마 그리운 얼굴을 핸드폰 너머로 볼 수 있는 그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었다. 처음 미국 유학을 왔을 땐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불과 5년 만에, 서로의 얼굴을 앱으로 마주할 수 있는 기술이 생겼다는 건, 장거리 부부인 우리에겐 참 고마운 발전이었다.
나는 중국인 룸메이트 샌샌, 그리고 맞은편 방에 살던 한국 유학생 조이와 하늘이와 함께 아파트를 쉐어하며 지냈다. 조이와 하늘이는 나보다 어린 동생들이라 그런지 참 귀엽고 발랄했다. 가끔 연애 고민이 생기면 우리 방으로 건너와 상담을 받기도 했고, 시간이 맞으면 함께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며 서로에게 든든한 동지의 역할을 해주곤 했다.
리사이틀이 다가올 즈음, 남자도 1년 반 만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리사이틀과 귀국 준비를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그를 다시 만나 반가운 마음도 컸지만, 중국에서 홀로 시련을 견뎌낸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 한 켠이 무겁고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사히 다시 만나 함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했다.
남자의 소식을 들은 교회 식구들도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건넸고, 그는 오랜만에 건강한 교회 공동체 안에서 평안한 쉼을 누릴 수 있었다.
리사이틀을 앞둔 나는 말 그대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시절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다시 들춰보니, 그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2015년 1월 31일]
이제 한 달이 막 지났는데 벌써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어제는 귀까지 너무 아파서 눈물이 펑펑… 연습할 게 너무 많은데, 들어야 할 음악도 너무 많은데, 제대로 연습도 못 하고 하루가 이렇게 또 지나간다.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그분의 은혜를 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2015년 2월 4일]
오늘도 아침부터 손가락이 시려서 피아노를 칠 수 없을 정도로 연습실 에어컨이 빵빵하다. 연습도 다 끝내지 못하고, 겸사겸사 숙제하러 스타벅스에 왔는데 여기도 에어컨이 빵빵하다. 하루 종일 손가락이 시리다. 아오… 이제 2월인데 에어컨 빵빵은 너무해요 ㅜ.ㅜ”
포스터 디자인, 홍보, 함께 연주할 연주자 섭외, 음향 설치 등 준비할 것이 정말 산더미였다. 이 모든 것이 학업의 연장선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하나하나 준비를 마쳤고, 드디어 리사이틀 날이 다가왔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 2015년 4월 17일이었다.
혹시 실수를 할까 봐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나에게 남자는 말했다.
“이미 너를 사랑하고 응원할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오는 거야. 떨릴 필요 없어.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걸, 편안한 마음으로 보여주면 돼.”
정말 그랬다. 지난 5년간 우리 부부를 아끼고 응원해 준 사람들로 가득 찬 리사이틀 홀은 조용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괜찮아. 넌 잘하고 있어.” 한 곡, 한 곡을 연주할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다.
리사이틀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온 나는 다음날 페이스북에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2015년 4월 18일]
교회 가족분들! 부족한 저를 응원하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이렇게까지 사랑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여러분이 계시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저녁이었어요.
사랑해요~”
그리고 남편을 향한 감사 인사도..
[2015년 4월 18일]
꿈은 많았지만 항상 제 자신을 믿지 못했던 저에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준 남편.
1년 반 동안 미국과 중국에서 각자의 길을 걸으며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다시금 서로가 더 단단해져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해요.
이제는 둘이 아닌 하나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함께 힘차게 달려봅시다. 화이팅!”
그렇게 찬란했던 5년간의 미국 유학생활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우리는 중국으로 돌아갈 준비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중국에서는 우리 부부에게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설렘과 기대가 교차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새로운 여정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