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이 외국인을 바라보는 모습
다섯 살인 첫째 아이가 요즘 인종, 언어 등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자신의 외모와 다르게 생기면 영어사람 이라고 표현을 하고,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면 자기는 한국 사람이니 한국말로 읽어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주말에 공원을 갔는데 데이트 중인 국제커플이 있었다. 남자분은 한국인이었고 여자분이 금발머리에 파란 눈의 예쁜 외국 아가씨였다. 그 커플을 본 우리 아이가 다급하게 나와 남편에게 뛰어오더니 말했다.
"엄마 아빠 나 지금 영어사람 만났어요. 영어 사람!!".
자기가 아는 온갖 엉터리 영어 표현으로 외국인 아가씨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남편과 나는 아이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웃었다.
"헬로, 왓츠유얼 네임? 마이네임 이즈, 나이스투밋츄" 하며 외국인 아가씨가 대답 하기도 전에 자기가 아는 말을 죄다 쏟아내니 그 아가씨도 아이 모습이 너무 재밌는지 남자친구와 함께 웃으며 아이에게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오늘 아침에는 유치원 가기 전에 책 한권을 읽었는데 미국 구급차대원들의 이야기가 담겨있고 구급차 내부 모습이 어떻고 구비된 물건들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보여주는 동화책이었다.
주인공이 니나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흑인 구급대원이었는데 니나의 얼굴 그림을 보더니 아이가 방긋 웃으며 나에게 물었다.
"엄마 니나 구급대원 얼굴에 흙이 묻어 있네요".
어찌나 그 표현이 순수하고 기발한지 머릿 속에 계속 잔상이 남는다.
인종차별 하면 안되고 뭐 그런 이야기들을 아이에게 들려주며 설명하고 싶었지만 다 접어두고 그 순수함에 웃음이 났다.
어떻게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아이에게 말했다.
"아, 니나 구급대원 얼굴에 흙이 묻었나? 인종 이라는 말이 있어. 우리처럼 얼굴이 노란 빛을 띠면 황인종이라고 하고 우리보다 얼굴이 더 하얀 색을 띄면 백인종이라고 하고 니나 대원처럼 갈색이나 검은색처럼 어두운 색을 띤 얼굴이면 흑인종이라고 해. 니나는 미국에 살고 있는 흑인이네. 얼굴 색깔이 우리와 다르다고 왜 다른지 그 사람 앞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실례야. 알겠지?"
요 정도 대답으로 둘러댔다. 내 대답 한마디 한마디에 아이의 상식과 고정관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만 같아서 요즘은 대답하기가 참 조심스럽다.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나는 인종 문제에 더 민감한 것 같기도 하다. 인종 문제로 인해 각종 범죄,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곳이라는 걸 피부로 체감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주말에 공원에 갔을 때도 지나가는 휠체어를 탄 어르신을 보며 우리 아이가 큰 소리로 "저 사람은 왜 휠체어를 탔어요. 다리가 아픈가요?" 하고 나와 남편에게 물었을 때도 괜히 죄송해서 내 얼굴이 빨개지며 아이를 나무랐다.
"큰 실례야. 다리가 불편한 분에게 왜 다리가 아프냐고 큰 소리로 말하는 걸 들으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
아이에게 뭐든 지혜롭게 대답해주고 싶지만 엄마인 내 지혜도 여전히 부족하기에 뭐가 정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서로 의사소통이 더 원활해지고 말의 느낌인 어감이나 말이 주는 힘 등을 아이 자신도 점점 터득해갈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