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안받으면 생기는 일
첫째 아이가 5세, 둘째 아이가 3세인데 그 동안은 두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서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오다 5살 첫째 아이가 만3세반으로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낯 가리고 아직 어린 둘째 아이에 비해 활달하고 새로운 환경을 좋아하는 성격인 다섯 살 첫째 아이는 예상대로 유치원에 잘 적응하여 즐겁게 생활하였다.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시켜서 첫째 아이 유치원으로 가서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다 보니 하원하고 나오면 바로 초등학교 운동장이다. 입학한 이후로 30일이 넘었는데 그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이는 운동장에서 두시간 넘게 뛰어놀다가 집에 간다.
둘째 아이도 오빠가 다니는 유치원 운동장에서 함께 열심히 뛰어다니며 논다. 집에 돌아오면 신발과 양말에서 모래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진다. 처음에는 내가 요령이 없어서 집에 와서 아이들 발에 묻은 모래를 터는 바람에 우리집 현관문 바닥이 모래가 많이 날렸지만 지금은 다 놀고 운동장 벤치에 앉아서 털어주고 오는 요령도 생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큰 초등학교 운동장 놀이터에서 노는 건 거의 매일 우리 아이와 동생, 나 이렇게 우리 뿐인거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이 모두 함께 사용하는 운동장이고 유치원생들도 만3세반, 4세반 5세반 세 반 아이들이 있을텐데 왜 늘 이 학교에 다니는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에 우리 아이만 남아서 뛰어노는걸까?
알고보니 초등학생들은 오후12시 30분이면 점심식사 후 이른 귀가를 한 뒤 학원에 가고, 유치원생들은 마치고 미술, 태권도, 영어 등을 배우러 학원에 가거나 엄마가 워킹맘인 경우 저녁 6시나 7시가 되어야 하원을 하기 때문이었다.
북적북적 신나는 초등학교 유치원 운동장 놀이터일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매일 텅 빈 운동장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껏 아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의 주인인 아이들은 어디로 간 걸까? 우리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형아 누나들이랑 친구들은 다 어디 있어요? 왜 나랑 동생만 운동장에서 놀아요?". "응 형아 누나들은 학교 수업을 일찍 마치고 공부하러 학원에 갔고 친구들도 재밌는 거 배우고 싶어서 학원에 갔대. 뭐 배우러 가고 싶어?".
어설픈 나의 대답과 질문에 아이가 말했다. "아니요 엄마 나는 실컷 놀다 갈래요.".
아이 말을 들으니 내 머릿 속 생각이 정리가 되었다.
'그래, 대부분 아이들이 뭔가를 배우러 간다고 해서 꼭 우리 아이도 휩쓸리듯이 보낼 필요는 없지. 내 교육관에도 부합하지 않는 거고'.
나는 교육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아이를 잘 기를 때 필요한 소양도 완벽히 갖춘 엄마라 볼 수 없지만 아이를 기를 때 내 교육 소신 정도는 가지고 있다.
7살이 되기 전에 한글이나 영어 알파벳 떼기나 구구단 외우기 같은 학습을 시키는 것 대신에 인사 잘하기, 수면시간 지키기, 식사예절 기르기, 옷과 양말 스스로 입기 등의 생활습관 잘 형성하는 것을 내 양육의 목표로 삼고 있다.
내 양육관이 흔들린 적이 없는데 텅 빈 유치원 운동장을 보고 잠시 마음이 흔들린 나 자신을 보고 놀랐다. 뭐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아이가 스스로 지적 호기심이나 뭔가를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배우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이 다 하니까 부모 마음이 불안해서 배우게 하려고 부모 욕심에 학원으로 어린 아이를 내모는 것은 건강한 양육태도가 아닌 것 같다. 육아에 정답은 없지만 부모가 자신만의 육아관을 정립해서 목표를 건강하게 잘 세워서 꾸준히 중장기적으로 실천해나간다면 아이도 엄마아빠도 행복한 육아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