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한 우리 남편은 결혼 초기에 내가 말을 걸기만 하면 웃으면서 대화를 끊으려고 해서 내가 정말 결혼을 잘 못했구나 아차 싶었다. 그래도 말 보단 행동으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라 내가 같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다섯 살이 된 우리 첫째 아이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어휘력을 늘려준다는 의미도 있고 가정주부인 내가 긴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대상이 다섯 살 내 아들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아빠가 없거나 엄마가 없는 친구들도 많이 있고, 아빠 엄마 두분 다 없는 친구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편견없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인종, 왕따, 장애인, 어르신,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등의 여러 주제로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어휘를 사용해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아빠 엄마가 없는 친구들을 만나면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 엄마 질문에 다섯살 배기의 대답이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엄마 아빠가 없는 친구는 너무 무서울 테니까 내가 어른 크기만한 크고 긴 인형을 선물할 거예요".
세 살짜리 동생을 늘 쥐어박고 괴롭혀서 평소에 첫째 아이에 대해 걱정이 많았는데 내 걱정은 기우였다.
이론상으론 이 시기의 아이들은 이성적이지 못하고 공감능력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마음이 넓고 생각이 깊다.
놀이터에서 우연히 본 한 여자아이는 자신과 나이 차이가 불과 한 살 정도 더 어린 아이에게 다가가 흙이 묻은 무릎을 손으로 털어주기도 했고, 또 다른 아이는 울고 있는 친구에게 자신이 코 푼 손수건을 내밀기도 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은 배려심과 생각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