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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권태주 Dec 09. 2022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본연지성本然之性”

  팔월의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날 오후 괴시槐市 전통마을을 둘러봤다. 전통 한옥이 상당히 많아 보이고 마을 전체 면적의 규모도 작지 않아 보인다. 입지도 좋고 시야도 탁 트이는 곳이다. 남동쪽의 망일봉望日峰에서 뻗어 내려오는 산세가 이 마을을 입入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동해안의 3대 평야 중의 하나인 영해 평야가 더 넓게 펼쳐져 있다.

  조선 중기 이후부터 영양남씨가 집성촌을 이뤘다는 이 괴시마을도 목은 선생과 관련이 있다. 목은의 외가(외조모는 영양남씨)인 함창 김씨가 고려 말에 처음으로 입주했기 때문에 목은은 이 마을의 최초 거주인의 외손이다.

  그 뒤 괴시마을은 조선 명종(1545~1567) 때에 수안 김씨 등이 거주하다가 인조 8년 1630년부터는 영양남씨가 처음 정착하였다. 그 후 타성은 점차 다른 곳으로 이주해가고 조선 중기 이후부터는 영양남씨들이 주가 된 집성촌으로서 문벌을 형성하였다 한다.     

  고려말 성리학의 대가로서 사상뿐만 아니라 문학과 역사편찬에도 큰 업적을 남긴 익제益齋 이제현李齊賢(1287~1367)에게 부친 가정 선생과 함께 부자가 사사한 목은 선생은 우왕의 사부로서 여말선초 과거제도와 교육제도를 정비하면서 성리학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한 학자이자 문인이다.

  목은 선생의 교육이념은 성리학이다. 성리학 이념적 배경에서 출발한 교육사상은 우주의 본체를 태극으로 보고 있다. 우주가 천지로 나누어져 있고 인간과 만물은 주변에서 뿜어내는 기를 받아 갖가지로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얼핏 보면 그 만들어짐은 어지러워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질서정연하게 되어있다. 목은 선생은 그것이 곧 선善이라고 하고 있고 그것을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고 표현하시고 있다.


  목은의 사상적 핵심은 천인무간天人無間, 즉 하늘과 인간이 다른 게 아니라 본래 사이가 없이 연결된 하나라고 본 점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 나아가서 만물의 질서가 모두 같다는 주장을 폈다. 여기에다 목은은 세상이 다스려지는 것과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성인의 출현 여부로 판단한 인간중심, 즉 성인이나 호걸 중심의 존왕주의적尊王主義的 유교 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목은은 서양 근대의 평등사상, 즉 사농공상이 모두 인간으로서 동일한 존엄을 가진 존재라는 인식이나 사상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역사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어쩌면 14세기 말에 인간의 귀천을 초월한 근대 민주적 평등사상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조급한 희망이다.

  무엇보다 후대인들에게 형성된 목은의 주된 이미지는 충절과 지조다. 고려가 명이 다하고 조선에 가 있음을 알아도 이성계가 내린 벼슬(한산백에 책봉)도 사절하고 몇 번이나 유배를 당했다가 최후를 맞은 점은 선비의 불사이군不事二君이 생명처럼 받들어지던 유교문화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스승과 달리 자신의 문하에서 배출된 제자들이 크게 두 부류로 갈렸던 점은 아이러니하다. 즉 고려 왕조에 충절을 지킨 명사名士와 조선왕조 창업에 공헌한 신진사대부들로 나뉘었다. 전자에 속한 인물로는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 이숭인李崇仁 등의 제자들이었고, 후자에 속한 인물은 정도전鄭道傳, 하륜河崙, 윤소종尹紹宗, 권근權近 등의 제자들이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스승과 달리 절개를 버리고 새 왕조에 참여한 제자들은 제각기 이유와 명분이 없지 않아도 대부분은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한 것이었다. 조선왕조의 창업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권으로 왕권을 견제해야 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조선왕조의 국가 기틀을 닦은 정도전 정도는 예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도전이 목은의 제자였다는 사실은 특기할만하다. 게다가 이색, 정몽주, 길재의 학문을 계승한 유창劉敞, 김종직金宗直, 변계량卞季良은 조선왕조 초기 성리학의 주류를 이룬 인물이었다. 권근이 조선 성리학의 토대를 다졌으며, 수년 뒤 역성혁명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이유로 타살한 정몽주를 다시 복권시키자고 주장해서 그렇게 한 것도 재능과 도덕은 별개라는 점을 또 한 번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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