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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권태주 May 17. 2024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허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어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손과 손을 붙들고 마주 대하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어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흐르는 물결같이 사랑은 지나간다

사랑은 지나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어 오라 종은 울려라


-아폴리네르(G. Apollinaire·1880~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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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권태주


          

호주머니에 단 한 장의 지폐도 없이

무작정 거리를 걷다가

어깨 부딪치고 스쳐간 사내 얼굴에서

형을 보았다.

숱 많은 머리털, 넉넉한 웃음 하나로

서른하고 일곱의 세상을 살다 간

농사꾼.

철부지 아들들은

논두렁 풋냄새 맡으며 커 가고

살구꽃 피어 그리움 날린다.

낯익은 그 얼굴 다시 볼 수 없는

주인 잃은 들판에서

수런거리며 익어 가는 풋보리

땀 흘렸던 대지에 영그는 봄마늘

애비 없는 자식에게 서럽게 파고드는

궁핍한 사랑 또는 정.

기억보다는 문득 생각나는 사람으로

거리에서나 꿈속에서나 어디든지

그리운 그 모습 있다.

평생을 넉넉한 웃음 하나로 살다 간

순박했던 사내 얼굴이 있다.


-권태주 첫시집 <시인과 어머니>에서


*에필로그- 나의 대학 생활 2


  공주에는 갑오년 동학군들이 관군에게 패한 우금치 고개에서부터 공주 시내를 가로질러 금강으로 이어지는 제민천이 있다. 공주교육대학 앞에도 제민천이 흐르고 있지만 평소에는 수량이 많지 않아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흐른다. 하지만 여름 장마철이 되면 우금치 고개 뒷산에서부터 내려오는 빗물이 증가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소리를 내며 흐르기도 한다. 나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교대 앞 제민천 가에 있는 2층에서 자취생활을 했다. 자취생들이 많아서 돼지아파트로 불리고 있었다. 자취집 뒤에는 큰 뽕나무 밭이 있었는데 뽕나무밭 사이로 길이 있어 공주여고생들의 통학로이기도 했다. 여고생들의 하교 시간이 되면 수많은 참새가 재잘거리는 것처럼 그 소리가 뽕나무 밭을 지나 들려오곤 했다. 

    

제민천

  교육대학 담장 가에는 플라타너스 길이 있었는데 여름에는 제법 우거져서 시원하고 낭만적이기도 했는데 벌레들이 잎을 갉아먹기 시작하면 바닥에 털이 보송보송한 송충이들이 기어 다녀 여학생들이 싫어했다. 제민천 가에는 음식점들이 여럿 있었는데 젊은 청춘들이 찾아가서 값싸게 막걸리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칼국수집과 중국집들이 있어 학생들로 늘 부산했다. 우리는 막걸리를 마시고 흥이 오르면 제민천 길을 걸으며 제민천을 세느강으로 생각하며 시를 읊기도 했다. 그 세느강을 몇 년 전에 프랑스에 가서 유람선을 타고 여행할 수 있었다.

세느강

  대학시절 아픈 추억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농사를 지으며 고등학교 때부터 나의 학비를 보내주시던 큰 형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대학 2학년 때 어머니와 함께 큰 형님이 나의 자취방에 오신 적이 있었다. 저녁때 소주 한 병에 돼지고기를 구워서 맛있게 드시고 가셨다. 여름철에는 방포해수욕장에서 여름파출소 방범대원으로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하고 용돈을 드렸는데 기뻐하시며 곧 선생이 되면 고생도 끝이라며 기뻐하셨다. 하지만 그해 가을밤에 뇌출혈로 큰 형수와 생때같은 아들 셋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큰 형님 막내 아들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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