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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권태주 May 23. 2024

저녁 바다

-나의 대학 생활

저녁 바다


               

마음에 빈자리 너무 많아

찾아온 저녁 바다 어느덧

낙조落照의 꽃이 피고 있다

노을에서는 오렌지 향내가 난다

지금쯤 남녘바닷가 어느 조그만 농장의

오렌지 향기는 바다를 물들이고

향기에 취한 여행자는 명상에 잠겨

해변을 거니리

갯모롱이 돌아 어부의 집 한 채

바구니 인 어미는 밀물을 등지고 오고

아이는 모랫벌을 달려간다

잔잔한 웃음 위로 마주 서는 모녀母女

어깨 위로 출렁이는 금빛 물결

별이 바다 위로 떨어지는 밤

어둠 헤치고 불타는 수평선 고깃배 무리

팽팽하게 당겨오는 그물의 중량감에

함박 웃는 어부

탄성하는 바다

빈 가슴 채우고 돌아오는 귀로에

이슬이 내리고 아득한 기억을 넘어

동쪽 하늘로 보름달이 뜨고 있다

(1986. 터 시동인지)    


*에필로그-    

    나의 대학생활 3

        -국민 여러분! 공습 경보입니다


               

  198387일 정오가 지난 시간 전국에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긴급한 아나운서의 멘트가 방송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RNTC 하사관 훈련을 받으러 동기들과 조치원 32사단에 3주간 입소한 상태였다. 군대란 곳에 처음 들어온 우리 대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곱지 않았다.두 번의 훈련소 입소로 군복무를 마친다는 것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버스에서내려 연병장에 집합한 우리들에게 소령 계급을 단 지휘관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동작 봐라. 군기가 빠졌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하며 기합을 주는 것이었다.

  아직 장마가 끝나지 않아서 연병장은 질퍽대고 물기가 흥건했다. 훈련소에 들어온다고 빳빳하게 다려 입은 군복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 그리고 훈련복으로 갈아입은 후 시작된 일주일 간고된 훈련의 연속이었다. 총검술, 독도법, 야간행군, 고지점령, 총기분해조립, 화생방 훈련까지 꽉 짜인 교본대로 우리를 훈련시켰다.

  87일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간 동안 더위를 피해 연병장에 설치된 막사 안에서 오수에 빠져있는 사간이었다. 갑작스러운 공습경보에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두 완전군장으로 집합한다. 시간은 5분이닷!"

  조교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허둥대며 군복을 입고 군장 싸기에 바빴다. 군장을 처음 싸 본 학군단 1년 차인 우리는 허둥대고 있는데 2년 차인 선배들은 벌써 연병장에 집합하고 있었다. 늦으면 또 선착순 기합을 받아야 해서 간신히 연병장에 모였다.

  첫날 우리에게 기합을 줬던 소령이 또다시 나타났다. 그는 긴장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다. 북한군이 남침하기 직전이다. 지금 실탄을 지급하니 탄창과 총알을 수령하고 부대원들은 경계태세에 임한다. 알겠나! 목소리가 작다. 알겠나?"

  ". 알겠습니다!!"

  우리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바로 옆에 집합한 ROTC 장교 학군단 후보생들도 우리처럼 실탄을 지급받고 있었다. 우리는 분대별로 소총을 들고 각자 경계 위치로 흩어졌다.

  그때서야 여기저기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뭔 일이다냐? 미그기가 또 내려온 겨?"

  "그러게. 중공군 미그 21기가 귀순했다고 소령이 말하던데."

  누구보다 동작이 빨라 분대장을 하던 청주교대 출신 김상0가 말했다. 다행히 공습경보는 다시 경계경보로 낮추어 발령되어서 실탄과 총기를 반납하고 막사로 귀대할 수 있었다.

저녁때 들은 소식은 중국시험비행단 소속 손천근조종사가 다렌에서 훈련 중 이탈해 미그 21기를 몰고 귀순해서 우리 공군이 중부비행장에 안착시켰다는 것이다. 지난 223일 북한군 이웅평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대한민국에 귀순했는데 중공군까지 내려왔다니'우리 민주주의가 좋긴 한가보다'라고 생각했다.   


   나의 대학생활 4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대학 3학년 가을부터 총학생회에서는 가을 축제 준비가 시작되었다. 나는 국어과 학회장으로서 시화전과 연극 공연을 준비하게 되었다. 명랑0 친구가 연출자가 되어 작품을 선정하고 배우들까지 선정하는 일정을 잡았다. 결국 김소월의 일대기를 쓴 극본을 선정하여 '못잊어'를 무대에 올리기로 했다. 배우들을 선정해 역할을 맡기고 대본 연습에 들어갔다. 매일 저녁 7시부터 모여서 밤 10시까지 빈 강의실에서 연극연습을 하였다. 주인공인 김소월은 내가 많이 닮았다고? 해서 억지 춘향으로 배역을 맡게 되었다.

  김소월의 일대기를 도서관에 가서 찾아 읽고 시집을 구해 한 편 한 편 머릿속에 외웠다. 한 달 정도가 지나니 내 삶이 김소월의 불우한 삶과 오버랩되어 심취해 있었다. 사제상 뒤의 은행나무 잎도 노랗게 물들었다가 지기 시작하는 11, 늦게까지 연습하다 대전 막차로 집에 가야 하는 4학년 여학생 부대표를 자전거 뒤에 태워 터미널로 가기 위해 제민천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터미널 근처 약국 부근까지 왔는데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코너를 돌아 내 자전거와 추돌하고 말았다. 여선배는 자전거에서 떨어져 뒹굴었고 내 자전거는 충돌로 찌그러지면서 오토바이 바퀴가 내 허벅지를 부딪치고 말았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오토바이 운전자는 예비군 복을 입고 있던 아저씨였다. 나에게 와서 보상을 하겠다고 하는데 얼굴이 붉고 술냄새가 났다. 내가 잠깐 약국에 들르는 사이에 그 예비군은 갑자기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아마 그 예비군은 지금까지 미안한 마음으로 살고 있겠지?

  부서진 자전거를 끌고 자취방에 왔더니 친구들이 놀라 아픈 허벅지를 온찜질해 주었다. 나중에 냉찜질이 맞는 데 그걸 몰랐던 것이다. 다음 날부터 대학축제가 시작되었고 아픈 다리였지만 과대표로 5km 마라톤까지 달렸다. 그리고 연극 공연 날 우리의 연습한 결과를 보여주려고 무대에 올렸는데 아뿔싸! 체육관에 DJ 이종환이 와서 '밤의 디스크쇼'를 하는 것이 아닌가!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곳으로 몰려갔고 우리는 국어과 일부 학생들 앞에서만 김소월의 연극을 멋지게 마칠 수 있었다.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 세상 가라시구려. 사노라면 잊을 날 있으리라. 못잋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우리의 축제는 그렇게 쓸쓸하게 지나갔다. 연극 뒤풀이로 나그네 식당에서 젓가락 장단을 치며 밤새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청춘의 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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