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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권태주 Dec 05. 2024

세월호

장편 연재 소설-<세월호, 그날 이후>


3편-[세월호]



2014년 4월 15일 저녁 인천 연안여객터미널 부두에는 자욱이 안개가 끼어 있었다. 비릿한 바다냄새와 어둑어둑한 저녁 어스름이 봄밤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조금은 두려움까지 느끼게 하는 분위기였다. 연안여객터미널 앞에 웅장하게 접안해 있는 세월호는 보는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제주도로 가는 세월호 화물칸으로 많은 수하물을 실어 나르는 트럭들이 꾸준히 드나들고 있었다. 항구 주변에는 단체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사와 학생 339명과 일반 승객, 선원, 화물기사 137명 포함 총 476명이 승선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원고 2학년 희정은 커다란 여행가방에 등에는 기타까지 메고 승선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꿈이 가수였다. 학급 장기자랑이나 안산시에서 개최하는 청소년 뮤직콘서트에 참여해서 노래와 기타 연주 솜씨를 뽐내곤 하였다. 이번 제주도 수학여행에서도 친구 몇 명과 밴드를 구성하여 공연할 계획을 세우고 방과 후에 음악실에서 연습까지 마쳤다. 함께 수학여행을 가는 김초록 음악선생님도 틈틈이 오셔서 조언도 해 주시고 간식까지 사 주시며 응원을 했다. 초, 중학교 때부터 친구인 동철이도 할머니께서 사 주셨다는 새운동화를 신고 신이 난 표정이었다.

벚꽃이 활짝 핀 단원고 언덕길에서 수학여행 기념으로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이 엊그제였다. 모두들 설레는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준비했고 반 친구들도 활기가 넘쳤다. 동철의 꿈은 화가였다. 일찍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타고난 그림 실력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대표로 나가서 상을 많이 타왔다. 그의 방에는 상장과 상패가 가득했다. 단원고등학교를 선택한 것도 조선시대 대표 화가였던 단원 김홍도를 이어받는 화가가 되고 싶어서였다.

수학여행단을 이끄는 이동석교감선생님의 마음은 불안했다. 2학년 학년부장이 여객터미널에 문의한 결과 해무가 너무 많이 끼어서 기상청에서 출항의 위험을 알려 세월호도 비상 대기 상황이었다. 어렵게 수학여행 일정을 잡고 안산에서 버스로 인천항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가야 한다면 난감한 상황이었다.

세월호는 청해진해운이 2012년 일본에서 페리 나미노우에호를 수입하여 선박의 증개축을 통해 최대 승선인원을 956명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선박에 적재한 화물중량을 추가하면 선체의 복원력에 위험이 있었다. 세월호라고 이름을 지은 것은 '흘러가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세월호-출처 위키백과

인천여객선터미널에 해무가 조금씩 걷혔다. 안개로 인해 출발이 지연된 세월호는 사고 전날인 4월 15일 오후 9시에 인천항을 출항했다. 세월호에는 일반 탑승객 70명, 화물기사 33명,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 인솔자 1명, 그리고 선원을 포함한 승무원 33명 등 모두 476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화물은 철근 약 410톤, 차량 185대 등 총 2,213톤 정도가 실려 있었다.

세월호는 인천여객터미널을 출발해 유유히 서해 위로 항해를 시작했다. 인천항이 시야에서 멀어지고 밤바다의 불빛들이 희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단원고 학생들도 반별로 배정된 선내 숙소에 짐을 풀었다. 희정도 같은 반 친구들과 짐을 풀고 식당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가벼운 복장으로 갈아입고 둥글게 모여 앉았다. 반장인 세희가 미리 준비한 생일케이크를 꺼냈다. 오늘 생일을 맞이한 희정을 위한 것이었다. 아침에 희정의 엄마는 출근하기 전 미역국을 끓여 수학여행 가는 희정을 깨웠다. 암으로 돌아가신 아빠 없이 잘 자라준 딸이 참으로 대견했다. 가끔 남편을 대신해 이모와 이모부가 생일을 잊지 않고 선물과 저녁식사를 같이했다. 늘 밝은 미소를 잃지 않고 가수를 꿈꾸는 희정을 위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밤 11시가 지나자 희정은 친구들과 기타를 들고 선상으로 올라갔다. 많은 학생들이 선상에서 삼삼오오 모여 재잘대며 수학여행의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희정은 기타를 치며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다른 학생들이 몰려와 박수를 치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동철도 다른 친구들과 선상에 올라왔다가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희정을 보았다. 긴 생머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 부르는 희정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친구지만 가슴은 어느새 희정에게 남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남몰래 준비해 온 선물도 트레이닝 주머니에 넣어두고 있었다. '선물은 언제 줄까? 분위기가 조용해지면 희정에게 주어야겠다.' 생각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덧 하늘은 맑게 개었고 푸른 봄밤의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은 은하수가 길게 서쪽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안면도 은하수.출처 윤권식 사진작가

세월호가 태안을 지나 안면도 앞바다를 지날 때 드디어 12시 자정이 되었다. 밤하늘로 폭죽이 올라가서 동글게 빛을 내며 반짝였다. 세월호에서 자정마다 하는 공식적인 불꽃놀이였다. 모두들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멋진 수학여행 이벤트라 생각하여 서로 사진을 찍으며 불꽃놀이를 즐겼다. 동철은 눈치를 보며 활짝 웃고 있는 희정에게 다가가 선물을 내밀었다.

"희정아. 생일 축하해. 내 마음이야. 여기 선물."

"어, 동철이구나. 선물 고마워. 하하."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세월호는 군산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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