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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권태주 Dec 09. 2022

내 생애 가장 소중한 사람들 2

-인연 因緣

  가을바람이 살갗에 서늘하게 다가오는 9월 하순, 태풍도 지나가고 들판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으니 저절로 풍성함이 느껴진다. 지금은 농촌 곳곳에도 아파트와 빌라들이 성채처럼 산등성이나 들판에 우뚝 서서 위압감을 주고, 나의 유년 시절에는 서울 같은 대도시에 나가야 볼 수 있었던 건물들이었다. 고추를 팔러 아버지를 따라갔던 읍내 시장의 복잡스러움과 장사치들의 외침 소리를 들으며 혼란스러운 기억도 생생하다.

  아버지는 말수는 적으셨지만 육 남매의 맏이로서 책임감이 투철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평생 한학만 하시던 할아버님의 유지를 받들어 농사꾼으로 평생을 살다 가셨다. 성인이 돼서야 안 사실이지만 조부님은 막내 숙부의 서울 유학비용을 대시느라 대농이었던 간척지의 농토를 파시면서까지 가족들의 피땀 어린 희생이 있었다. 할머니는 시집오셔서 고생하신 것이‘소설책 세 권은 쓰고도 남는 이야기’라며 어린 손주에게 말씀하시곤 하셨다.


안면도의 밤


     

이 섬은 언제나 편안하게 보인다.

늘 푸르른 해송과

둥글둥글한 산등성이

변함없이 출렁이는 감빛 바다     

그러나 이 섬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웅크리고 있는

아픔의 덩어리들

나의 가족사들 뇌리에 박혀

녹슬고 있다.     

한 줌의 모를 논에 꽂는 봄날부터

한겨울에 이르기까지

쉽게만 찾아오는 제삿날들.

처마 밑 서까래 썩어 넘어지듯이

병마로 사고로 불귀의 객이 된 분들을 위해

죽음 냄새 배어 있는 향을 피울 적마다

나는 안면도의 밤을 생각한다.     

별들이 지붕 위로 내려앉기 시작하는 새벽녘까지

불 꺼지지 않고 정담 나누시던 할아버지의 사랑방

그 곰방대 연기 속의 이야기들을

내 유년의 창고에서 꺼내어 제사상에 펼쳐놓으면

불귀의 객들 토방 위에

발자국 서성이는 소리 내다가

떠나간다. 노를 저으며

무욕無慾의 세계로.

     

-첫 시집 『시인과 어머니』(북토피아)

     

  이러한 유년의 인연들을 뒤로하고 안면도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주로 유학을 떠났다. 아버지는 중학교 2학년 때 위암으로 돌아가신 터라 오 형제의 막내였던 나와는 짧은 인연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에게 늘 인정받으시고 성실하셨던 아버지는 가정환경이 그분의 꿈을 펼치기 어려운 상황에 내적 방황을 많이 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늘타리


     

가을

빈손으로 하늘을 탄다.

거친 벼랑도 심연도 아닌

무공無空으로 무심히 떨어졌던

하지만 필연이었던 한 톨 씨알     

날마다 야위어만 가던 병든 아버지

햇빛보다 더 고운 삶의 물을 주던

양지쪽 하늘타리

하늘 타고 먼 시공時空으로 가려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소망     

오늘은 석류 붉게 타는 저녁

아버지의 하늘이 주렁주렁 달렸다.

오르지 못하는 나무는 멀리서 푸르더니

노을 지는 산자락

저 홀로 피어난 그리움

하늘을 타고 있다.

    

-첫 시집 『시인과 어머니』(북토피아)에서   

  

  공주에서 고등학교 3년을 공부하면서 또 다른 인연을 맺게 된다. 상고머리에 검은 교복과 가방을 들고 하숙집에서 학교로 또 공주사범대생들에게 영어와 수학 과외를 받으며 실력을 쌓아갔다. 그래서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고 선배들이 주는 봉황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향에서는 아버지를 대신해 큰형과 어머니께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또 고생하셨다. 나는 그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쉼 없이 공부에 열중했다. 안타깝게도 체력이 고갈된 나는 축농증으로 인한 편두통에 시달리며 고등학교 3학년을 보내게 되었다. 결국 서울의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고향에 돌아와 재수의 길을 택하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아들을 꾸짖기보다는 건강을 회복하고 새로운 도전을 해 보라고 격려해 주셨다. 고향 집에서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밥을 먹으며 보낸 일 년의 세월을 마치고 교육대학에 진학하게 되어 교사의 꿈을 갖게 된다.  

   

시인과 어머니  


   

문밖에선 긴 겨울의 기다림이

흰 눈 되어 내리는 저녁

쇠죽을 끓이는 아궁이 앞에서

후끈한 시래깃국 냄새나는 시를 쓰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 얘야! 시인이 되면 가난하다더라.

시는 뭐 하려고 쓰느냐.

근심 어린 눈빛으로 말했었다.     

아궁이 속 타오르던 장작불도 꺼지고

이젠 어머니도 이 세상에 없다.

흰 눈 내려 가득 세상을 덮어도

어머니와 함께 보던 그 저녁

토방 위에 내리던 싸락눈만 못하다.

꺼져 가는 불씨 불어 가며 매운 연기 눈물 나던

그런 저녁이 아니다.

안방에선 동치미에 뜨끈한 숭늉

문밖에 소리 없이 싸락눈이 내리는

그런 시절은 다시없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이제는 혼자서 가야 할 길

내가 할 수 있는 건

끝날까지 시를 쓰는 일과

바람 한 줌씩 움켜잡는 일

그 저녁 가슴에 고이 묻어 두는 일

먼 훗날 내 아이에게 지울 수 없는

추억 만들어 주는 일

     

-첫 시집 『시인과 어머니』(북토피아)에서

    

  공주에서 교육대학을 다니며 문학청년으로 새로운 꿈을 꾸고 있을 때 만난 시인 나태주, 나태주 시인(전 한국시인협회장)은 그 당시 공주교육대학교 부속초등학교의 선생님으로 근무하고 계셨다. 약간 웅얼거리는 듯한 말투였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정확함, 시인으로서의 감성, 문학에 대한 탐구와 독서량은 학생인 내가 본받을 분이었다. 문학 동아리인 ‘석초石草’ 모임에도 오셔서 함께 문학 토론과 시 낭송, 시화전 참여도 해 주셨다. 문학청년인 나의 롤모델이기도 했다. 나태주 시인이 맺어준 동문 선배들과 결성한 시동인 《터》시문학동인회는 1986년부터 1995년까지 10집을 발행할 수 있었다.  

   

가야 할 나라   


       

아무것도 없어라

구월九月의 바다에는

고깃배도

배 따라 날던 갈매기 은빛 순수도

다만 쪽빛 바다와 맨살로 부서지는

파도의 함성뿐.     

경고

태풍 베라 서해 통과 중

16시 30분 이후 해안접근 금지

하나둘씩 모래 위에 쌓이는

해초의 찢기어진 시신과

꺾어진 푯말만 비에 젖고 있다.     

정말 못 가는 곳인가.

눈앞에서 흔들리는 섬

날개 잘린 새처럼 불안한 발걸음

다리에선 쥐가 나고 가슴마저 떨려와

꼭 가야 할 나라에 못 가는 아니,

더욱 못 가게 하는 것은

소돔성의 유혹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자위하지만

그러다가 영영 제자리에서만 맴돌다

주저앉고 말면 어쩔 것인가.

    

-《터》동인지 『가야 할 나라』에서

    

  나태주 시인과의 소중한 인연을 뒤로하고 나는 1988년 경기도 시흥의 장곡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게 된다. 주소지가 과천이었는데 황당하게 소래포구가 있는 농촌의 6학급 학교로 배치를 받은 것이다. 발령 전 충남의 충무수련원에서 발령 대기자들의 시위를 주동한 주동자로 낙인이 찍혀서 그리된 것이라는 짐작밖에 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아내와 결혼하여 신천리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첫아들 영재를 얻게 되었다. 또한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 계절제로 진학하여 대학원에서 현대시를 전공하면서 성기조교수님(전 한국 펜 이사장)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강의실에서 성기조교수님의 해박한 문단사와 문학이론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고,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한 《청하문학회》동인으로도 활동하게 된다. 청하 성기조 교수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호‘일초逸草’는 숨은 풀이지만 빼어난 풀로 명성을 떨치라는 의미로 받아 들고 감동했다.  

   

들꽃 


         

이름 없이 산하에 피어나는 꽃

무더기로 피어서 외롭지 않게

감싸주는 사랑

누구 하나 툭 불거져 피지 않고

같은 꽃이라는 이름으로

흔들리는 아름다움

숨어서 피기에 더욱 고귀한

이름 없는 들꽃.  

   

-첫 시집 『시인과 어머니』(북토피아)에서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1993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박화목 시인의 추천으로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게 되었다.     


누군가 그리우면  


        

나날의 삶이 메말라져서

외로움 가득한 날

기차를 타고 낯선 마을을 지날 때

새벽안개를 만난다.

안개는 호수의 수면 위를 가볍게 떠올라

들을 채우고 산을 막아서고

짧은 인사 속에 작별을 한다.     

비켜 갈 줄 모르는 채

외길을 질주하는 쇠바퀴

끝없는 윤회의 마찰음 소리여.

외로운 자는 저 홀로 달려가는 기차의

고독한 질주를 보면

외로움의 깊은 뿌리를 안다.     

누군가 그리울 때는

진홍빛 꽃잎 툭툭 떨어져 버리는

섬을 찾는다.

달려와 얼싸안고 반겨줄 사람 하나 없어도

말 없음으로 빈 가슴 채워주는

물결 혼자 밀려왔다 거꾸러지는 반복의 일상

계속되는 그 모습 좋아

작은 사랑 그곳에 있어

외로움도 삭막함도 모두 덮어주기에.

    

-1993 충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이후에 왕성한 문학활동을 전개하였고, 1995년 첫 시집 『시인과 어머니』(북토피아)를 발간하고 이 시집으로 《열린문학사》에서 주관하는 <허균문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열린문학의 주관이던 김선 평론가는

 “권태주 시인의 첫 시집 ‘시인과 어머니’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성향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서 필자는 서두에서 밝혔듯이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간략히 논급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투명한 눈물, 따스한 피가 흐르고 잃어버린 생의 아련한 메아리가 있고 상처 입은 꿈의 몸부림이 있다.

  「금강」,「길」,「집배원 오기수 씨」,「해변 묘지」,「시인의 무덤」,「어린 영혼에게」,「別離」등의 작품에는 죽음의 문제, 「고향」,「남도기행」,「황포 어부」,「별」,「누군가 그리우면」,「자유, 그리고 개구리」,「낙지」,「귀향 일기」등에는 생명의 본질에 대한 삶의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라고 평하였다.

  1995년 첫 시집 이후 큰아들 영재의 뇌수막염으로 인한 패혈증, 고관절 후유증으로 시인으로서의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2016년까지 교직자로서의 삶에 충실하게 된다.

  마침내 긴 휴면기를 끝내고 2016년 안산의 본오초등학교 교장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다시 문학의 길을 걷게 된다. 이때의 인연은 《천년의 시작》출판사를 운영하는 이재무 시인을 만나고 나서 첫 시집 이후 틈틈이 써 두었던 시들을 정리해 22년 만에 제 2시집을 출간하게 된다. 이때 나태주 시인은 추천사에서


  권태주를 학생으로 본 것은 꽤나 오래 전의 일이다. 그가 공주교육대학교에 다닐 때 나는 그가 다니는 학교의 부속초등학교 교사였던 시절이다. 학생 시절 그는 문학도였고, 시를 쓰는 사람이었고,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나태주가 시인이니 권태주도 시인이어서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또 그런 생각 자체가 신비하다는 생각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의 세월이 흘렀던가. 그는 어느새 초등학교 교장이 되어 있었고 시인이 되어 있었다.

  공주의 중심을 흐르는 제민천 가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나눈 약속을 이루어준 그의 삶이 대견하다. 칭찬해 줄 만하다. 더불어 시를 읽었다. 사람을 닮아 시가 옹골차다. 허풍이 없다. 그런 점에서 그와 나는 다 같은 촌놈이다.

  촌놈은 근본을 버리지 않고 사는 사람, 서두르지 않는 사람, 가야 할 곳이 어딘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사람, 목표지향인 사람, 그가 꿈꾸는 인간의 나라, 시의 나라에 언젠가는 그가 도달할 것을 믿는다. 부탁하고 축원하고 싶다. 부디 오래 참고 기다려 한국시의 큰 바위 얼굴이 되시라. 나태주 (시인)

    

  2017년 제 2시집 『그리운 것들은 모두 한 방향만 바라보고 있다』(천년의 시작)를 출간하여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된다. 바로 용인대학교 국문과 명예교수인 신상성소설가를 만난 것이다. 신상성교수님은 안산에도 사시면서 사이버대 설립 경력과 출판사도 운영하고 계시면서《통일문학》을 발간하고 계셨다. 신상성소설가님과 교류를 하면서 《통일문학》을 재외 동포문학까지 아우르는 《한반도 문학》으로 발전시키고자 의기투합하게 된다. 또한 실학의 중조中祖인 성호 이익선생을 함께 연구하면서 성호 이익 선생의 일대기를 소설 10권으로 출간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만남을 이어갔다. 하지만 경기도문화재단이나 안산시 등에서의 미온적인 지원 태도로 인해 우리의 노력은 다음을 기약하고 끝내게 된다. 대신 제 3시집 『사라진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좋은 땅)를 출간하였고, 2019년 전국 성호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게 된다.

    

굴뚝에서 나온 탈무드 소년

                     신상성(서울문예디지털대학 설립자)   


  

  시인 권태주는 알프스 언덕의 양치기 소년같이 순박한 눈매를 가졌다. 아니, 영국 수상 W. 처칠의 눈도끼같이 매섭다. 때로 곁눈질로 뒤따라 보면 수암봉 매의 눈, 메두사 같은 양면의 얼굴을 가졌다. 거기에 고구려 쌍영총 벽화에 나오는 삼족오(三足烏)같이 발이 세 개나 달린 괴물 같다. 즉 평범 속에 비범이라고 할까, 그는 지금도 새벽 4시면 일과를 시작한다. <중략>

  안면도 섬마을 산골 소년인 그는 스스로 세상을 헤쳐나가지 않으면 주변에 아무도 없다. 망망한 바다와 거친 파도뿐이다. 어부인 부모님, 그리고 가난한 형제들과 이웃뿐이다. 섬마을 소년이 교장이 되기까지, 신춘문예에 당선되기까지 오늘의 ‘권태주 시인’으로서 하나의 자수성가 롤모델이다. <중략>     

 ‘성호 소설 콘텐츠사업단’ 기획 문제였다. 마침,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약 10년에 걸쳐서 ‘성호전집’을 한글판으로 번역해 내었다. 조선조 중기 한국 대철학가의 사상에 대한 소중한 역사적 조명작업이었다. 따라서 안산의 뜻있는 문인과 교수들이 모였다. 우리도 남양주와 같은 ‘성호사상 테마 작업’을 한번 해 보자고 모였다. 즉, 성호 일생을 10권의 대하소설로 제작하는 대기획이다.

  성호의 수제자 가운데 하나인 다산 정약용은 남양주에서 본격적인 ‘다산 테마 관광사업’으로 확대하여 시 재정 확보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지 않은가. 안산의 시장, 국회의원, 문화원장 등을 찾아다녔지만 코웃음 소리만 귓등으로 들었을 뿐이다. 이곳 시장도 남양주 시장같이 인문학적 소양과 역사의식이 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절망뿐이다.

  그러나 그때 큰 걸 잃었지만 더 큰 걸 얻은 게 ‘인간 권태주’였다. 내가 『조선문학』에 수필로 발표한 그에 대한 러브레터도 있다. 어쩌면 이 시인론도 그와 함께 깊은숨을 쉬면서 좀 더 가까이에서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게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한다. (신상성)

    

-제 3시집 『사라진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좋은 땅) 평론 중에서

     

  이 땅에 태어나서 살다 보면 수많은 인연과 만나게 된다. 문학인으로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성현들의 글과 접하고 문학 선배들과의 인연을 맺으며 많은 경험 속에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인생길에 또 다른 인연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의 길을 당당히 가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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