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겐프레싱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전방 압박을 통해 플레이를 전개하는, 음악에 비유하면 잔잔한 클래식보다는 시끄러운 헤비메탈에 가까운 축구를 선보였던 감독. 마인츠를 거쳐 도르트문트에서도 개성 있는 지도력을 인정받은 그가 잉글랜드의 리버풀로 오게 되었다. 당시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리그 우승이 단 한 차례도 없었고 스타 선수들의 연이은 이적으로 암흑기에 빠져있던 시기였다. 그는 부임 후 기자회견에서 이야기했다.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시간을 달라. 20년을 기다려 달라는 것이 아니다. 딱 4년, 반드시 4년 안에 이곳으로 트로피를 가져오겠다"
"The Normal One"
'위르겐 클롭'은 다른 감독들 중에서도 유독 재치 있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빅클럽의 감독이라는 권위 있는 자리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를 할 때면 장난치며 호탕한 웃음을 보여주곤 했다. 어떨 때에는 팀이 골을 넣었을 때 너무 기쁜 나머지 세리머니를 하러 달려가던 와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감독이??????') 이처럼 클롭은 그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숱한 재미를 선사했다. 클롭이 리버풀에서 과정은 물론 결과까지 챙겼던 대단한 감독이지만 오늘만큼은 마무리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그가 리버풀을 떠날 때 보여주었던 마지막 모습에 대한 회고록을 적어 보도록 하겠다.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있던 날, 팬들은 9년간 팀을 이끈 위대한 감독을 위해 마중을 나왔다. 그의 마지막 경기를 함께 보고 앞으로의 길을 함께 응원하기 위함이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클롭은 팀의 선수들을 모아놓고 라커룸에서의 마지막 연설을 했다. "너희들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너희들은 정말 훌륭했다.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맙고, 내가 이 팀의 일부여서 자랑스럽다. 고맙다. 또 보자" 선수들은 시골 인심이 푹푹 묻어나는 온정 가득한 말을 듣고 경기에 나섰고 결과는 리버풀의 승리였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리버풀을 상징하는 빨간색 후드티를 입고 팬들 앞에 섰다.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이어가던 클롭은 그동안의 감정으로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순간 리버풀의 팬들은 그를 향해 응원가를 불러주었다. "클롭이 리버풀에 있어서 너무 기뻐. 그가 트로피를 우리에게 가져다줬지. 클롭이 내게 말했어. 우리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할 거라고. 그는 그렇게 말했어. 나는 그를 사랑해. 너무 좋아" 자신의 응원가를 듣자, 더욱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던 클롭은 팬들에게 이제 그만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팬들은 제법 오랜 시간 동안 노래를 불렀다.
마침내 노래가 끝나자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제가 처음 리버풀에 왔을 때 여러분에게 의심하지 말고 믿어달라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믿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해냈습니다. 이제 리버풀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이어서 "리버풀이 가장 자부심을 느껴야 할 것은 훌륭한 경기장이나 훈련 시설이 아니라 바로 당신들입니다. 나는 결코 혼자 걷지 않을 겁니다. 당신들은 세계 최고의 팬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팬들을 치켜세웠다.
팬들을 위한 이야기를 마친 그는 갑자기 웃으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본인도 썩 잘 부르는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지 그에 입가엔 머쓱한 미소가 담겨있었다. 노래의 주인공은 '아르네 슬롯'이었다. 클롭은 본인의 후임이자 리버풀의 새로운 사령탑의 공식 발표를 본인답게 노래로 한 것이다. 그리고 슬롯을 위해 당부의 말도 전했다. "리버풀을 위해 계속 응원해 주세요. 그리고 새로운 감독을 환영하는 것도 부탁합니다. 마치 내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그렇게 그는 마지막 연설을 끝냈고 그간 함께 고생했던 선수들, 구단의 코칭스태프들과 뜨거운 포옹을 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인사를 마친 그는 팬들에게 달려가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인 어퍼컷을 날리기 시작했다. 안 필드의 관중들은 그의 주먹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큰 소리로 화답했고, 마지막 어퍼컷을 날린 후에는 본인의 심장을 주먹으로 마구 치며 본인의 심장이 리버풀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그가 팬들과 소통하는 모습과 리버풀을 떠날 때 보여주었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잊었던 그의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클롭은 지금껏 감독으로 있었던 모든 클럽에서 저마다의 역사를 썼고, 늘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었으며, 항상 떠날 때 박수를 받았다. 이는 마인츠에서도 도르트문트에서도 그리고 리버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한 사람이 특정 집단이나 단체에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판단하는 가장 확실한 기준은 그 사람이 머물고 간 자리를 보면 된다는 말이 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향기로운 사람은 떠난 후에도 그 향기가 지속된다는 말도 있는데 클롭은 이 격언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케이스였다.
세계적인 감독 '스페셜 원' 무리뉴와는 다르게 본인은 '노멀 원'이라고 했던 클롭은 암흑기에 빠져있던 리버풀을 잉글랜드를 넘어 유럽의 정상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4년 안에 트로피를 가져오겠다던 자신감 넘치는 그의 인터뷰는 현실이 되었다. 그가 리버풀을 떠날 때에는 '프리미어리그', '챔피언스리그', 'FA컵', '리그컵'에서 모두 우승컵을 가져온 최초의 리버풀 감독이 되었다.
"저는 선수들에게 최고가 되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최고를 꺾을 수 있는 팀이 되라고 말합니다" - 위르겐 클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