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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엔 없는 목적지, 발걸음이 인도하는 곳으로

동유럽 포토로그. 세번째 이야기

by Beige 베이지
KakaoTalk_20250412_214921289_01.jpg 드레스덴의 꽃나무
구글맵은 잠시 끄고,
그냥 눈길이 닿는 곳,
이끌리는 대로 발걸음을 옮겨보기





부다페스트의 관람차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행은 ‘패키지’가 대세였다.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 버스를 타고,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사고 돌아오는 식이었다. 하지만 내 기억 속 전환점은 2008년 무렵이었다. 연예인들이 자유여행을 떠나는 방송이 인기를 끌면서, 나를 포함한 많은 대학생들이 ‘스스로 여행을 설계하는’ 자유의 맛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비행기 티켓을 직접 예매하고, 루트를 정하고, 현지에서의 감동을 싸이월드에 올리던 그 시절의 설렘은 아직도 또렷하다.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준비하는 과정부터 시작되는 하나의 여정이었다.


KakaoTalk_20250412_213406385_03.jpg 고개만 돌려도 이렇게 우아한 풍경



그 후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빠르게 발전했다. 이제는 도착해서 구글맵만 열면 된다. 숙소 근처 맛집, 명소, 대중교통 정보까지 손 안에서 모든 것이 해결된다. 편리하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여행이란 원래 발품을 팔며 길을 헤매고, 우연히 마주친 풍경에 감탄하는 그 모든 ‘예측 불가함’이 주는 묘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눈보다 손이 더 바쁜 시대가 되어버렸다. 멋진 건물 앞에서도, 탁 트인 광장에서도, 사람들은 하늘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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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의 맑은 하늘과 목련


이번 여행에서 나는 다시, ‘눈으로’ 여행하는 법을 배웠다. 화면이 아닌 풍경을 중심에 둔 진짜 여행.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시선으로 기억에 담아두는 그 소중한 여정을.



프라하, 드레스덴, 비엔나, 부다페스트—네 도시 모두, 비슷한 듯 다른 감성을 담고 있었다. 주요 관광지는 대부분 도보로 1.5~2.0km 내에 위치해 있었고, 언덕길이나 거리가 헷갈리는 곳에서는 트램을 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걸었다. 골목 하나하나에 숨겨진 시간의 결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같은 벽돌도 나라에 따라 분위기가 달랐고, 비슷한 광장도 음악 소리나 사람들의 표정에 따라 전혀 다른 장면처럼 다가왔다.




네 도시 모두 성당과 성, 궁전 등에서 느껴지는 웅장함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광을 공유하듯 닮아 있었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돌려 골목으로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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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골목은 낮은 층수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고즈넉한 정취를 자아냈고, 비엔나의 골목은 은은하게 우아했다. 드레스덴에서는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건물들이, 부다페스트에서는 다뉴브 강의 리듬을 닮은 듯한 건축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체코에서는 운 좋게도 오래된 고풍스러운 건물을 개조한 숙소에 머물렀다.


KakaoTalk_20250412_213225530_06.jpg 체코 숙소, 우리집 대문 앞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내부, 삐걱이는 나무 바닥과 두꺼운 벽, 창밖으로 보이던 붉은 지붕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살아 있는 역사책 같았다. 도시의 중심에서는 화려함이, 골목에서는 개성이, 숙소에서는 시간이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나는 그 도시들을 ‘관광’한 것이 아니라, 조용히 ‘살며’ 스쳐 지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KakaoTalk_20250412_214921289.jpg 드레스덴의 길거리







결국 진짜 여행이란, 유명한 장소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의 숨결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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