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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앤 Mar 31. 2024

첫인사

'시작'이 가지는 무게

2차 면접을 마친 그날 밤 (밤 9시 50분~10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교지부'였고-후에 듣기론 번호를 저장하지 않아 광고 전화라고 오해한 친구들도 있었다.-가족들과 함께 있던 나는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쉿-' 행동을 한 후 전화를 받았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함께 면접을 봤던 친구들이 말하길 공지가 오기 그 직전까지 면접을 본 듯했다. (나는 9번째 순서였고 내 뒤로도 15명 정도가 남아있었다.) 합격 공지는 전화로 공지되었는데, '아쉽게도 불합격입니다.'라는 말이 나올까 봐 지레 겁을 먹었었다. 다행히! '축하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교지부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에는 곧 단톡방이 개설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과 함께 며칠 후 잠깐 교지부원 모임을 가질 것이라 말했다.


♪ 첫 만남은 너무 어려워 ♫


교지부의 첫 만남은 학교에서 정해준 공식 동아리 시간이 아니었다. 부장 선배는 1년 동안 주어진 동아리 시간으로는 교지를 완성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에 미리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해서 일찍 만남을 가졌다고 말하셨다. 사실 나는 기대감보다는 '굳이'라는 생각이 더 컸었다.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그 어색함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때 모르고 있었다. 굳이 이렇게 일찍 만나서 서로 안면을 터야 하는 이유를.



다음날이 되자, 함께 집을 가던 친구에게 "먼저 가!"라고 말을 하고 후들거리는 발거음을 옮겨 3층으로 올라갔다. 머리가 잡생각으로 가득 차서 친구에게 제대로 된 배웅도 하지 못하고 보내야 했다. 우리 반은 종례가 늦게 끝나는 편도 아니고 청소당번도 아니었다 보니 내 입장에서는 내가 너무 일찍 움직이게 되는 처지에 놓였다. 내 친구들 중에서는 아무도 면접에 합격한 친구가 없었기에 혼자서 터덜터덜 두려움을 안고 가야만 했다. 나는 계속 부디 내가 첫 번째가 아니길 기도했다.


다행히 나는 첫 번째가 아니었다. 면접 때 뵈었었던 선배 2분(부장, 차장 선배)과 잘 모르는 학생 2명이 앉아있었다. 가운데에 부장, 그 오른쪽에 차장 선배와 학생 1명, 왼쪽에 학생 1명이 앉아 있었기에 미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홀로 앉아 있는 학생 옆을 선택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하고 다른 교지부원들과 마찬가지로 눈만 이리저리 움직이며 앉아있었다. 학생 몇 명은 청소를 해야 했기에 조금 늦어졌고 안면이 있는 것 같은 몇몇 사람들은 소곤소근 대화를 했다. 나는 같은 1학년 중 한 명을 알아봤는데,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였다. 분위기 때문에 서로 아는 체는 못했고 (중학교 2학년 이후로 한 번도 인사를 한 적이 없기도 하다.) 눈만 마주치고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모든 학생들이 모인 후에는 통성명을 했다. 우리는 이름과 학년 그리고 진로에 대해 말해야 했는데, 내가 1학년이라고 생각하고 앉았던 학생이 2학년이었어서 살짝 놀랐다. 한 명이 소개를 마칠 때마다 박수를 쳐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엄청 고민되었지만 차장 선배의 주도하에 '와~'라는 짧은소리와 함께 박수를 쳤다. 머릿속으로는 1학년들 얼굴과 이름을 매치시키고 열심히 박수를 치면서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이렇게 모임을 가진 건 올해 <교지>의 방향성을 얘기해보고 싶어서야."

"나랑 K가 각각 부장, 차장을 하듯이 총무랑 SNS 담당을 정해야 하는데 혹시 하고 싶은 친구 있을까?"

"1학년 같은 경우에는 OT글과 입학식 글을 써줘야 하는데ㆍㆍㆍ , "


총무와 SNS 담당을 정하는 것은 그리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모두가 '귀찮은 건 사절'이라는 표정이었기에, 가위바위보로 총무를 정했다. SNS(-우리 동아리는 인스타를 운영한다.-)의 경우에는 SNS를 한다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가위바위보를 해 결정했다. (4명을 뽑아야 했는데, 2명이 지원했고 가위바위보에서 진 2명이 선출됐다.) 총무의 경우에는 교지부에게 지급되는 동아리 활동비 사용을 (설문/투표/상품) 기록하는 일, SNS 팀은 교지부 홍보와 학생 소통/설문의 역을 맡았다. (홍보물 제작도 SNS 팀의 몫이다.)


다음으로는 우리 교지부의 전통 'OT'와 '입학식' 기사 대전을 치러야 했다. 교지부에 입부한 1학년들은 OT(신입생 설명회)와 입학식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첫 기사를 작성하게 된다. 이는 같은 학년 친구들에게는 회상의 용도, 한 학년 아래 친구들(새로 입부할 1학년)에게는 기대감을 심어주는 용도의 기사다. 인터뷰/자료 조사를 베이스로 작성하는 다른 기사들과 다르게 이 기사만큼은 오로지 자신의 경험을 담아내는 기사다. (실제로, 기사라고 부르기보다는 '수필'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하다.)


1학년이 6명이다 보니 3명씩 나뉘어 각각 선택했는데, 나는 '입학식'을 골랐다. 개인적으로 나는 우리가 만남을 가졌던 때가 신입생 입학 설명회와 입학식 모두 시간이 좀 지낸 탓에 둘 다 기억이 애매했었다. 그래서 그나마 최근이었던! 그리고 좀 더 특이했던 기억이 있는 입학식을 선택했다. 1학년들의 선택 후에는 기획안을 미리 작성해서 일전에 보내준 카페로 파일을 올려달라는 부탁과 함께 첫 만남은 마무리되었다.


2023 교지부의 공식적인 첫 활동은, 4일 후 금요일 5교시와 6교시였다.

그리고 이 날은 아주 특별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고등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도전한 것이
교지부라는 게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교지부 활동을 위해 회의만 했던 6교시와 다르게 5교시는 짧은 아이스 브레이킹을 거쳐 선배들과의 만남을 갖었다. 교지부의 또 다른 전통, '선배와의 만남'은 이제는 3학년이 된 (1학년들에게) 2 기수 위인 선배님들과 짧게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을 말한다. 선배의 선배라는 것이 어찌나 떨리던지 면접 때만큼 떨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선배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내게는 선배가 없었다. 코로나는 같은 학년 친구들과의 인연도 끊기게 만들었고 선배들과의 만남은 일절 찾아오지 않았으니까.


어느덧, 3학년이 된 선배님들은 하나 같이 교지부에서 겪은 즐거운 추억을 말씀하셨다. 우리 세대부터 사라진 선배 후배 멘토-멘티제, 사진 기자-홍보 팀장과 비슷한 직책으로, 교지에 들어가는 사진을 찍는 담당을 말한다-얘기도 들려주셨다. 전통과 역사라는 것은 참 무거운 것이구나-라는 조금 허무 맹랑한 생각 또한 들었다. 50년이라는 그 까마득한 시간이 신기하게도 나를 짓누르기보다는 다독이는 느낌이었다. 교지부원이 되면서 자랑보다는 부담과 욕심이 더 먼저 느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창한 말이지만, 우리는 기대를 품으며 들어옴과 동시에 기대를 받으며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학교의 살아있는 역사. 학교의 과거와 미래를 이어, 어떤 시간대이건 그 '존재'를 뿜어내는 곳. 그곳이 바로 교지부였다.


나는 아직도 작년(2022년) 교지부의 부장이었던 선배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여러분들이, 고등학교에 와서 아마 처음으로 도전한 것이 교지부라고 생각을 해요. 교지부에 도전했다는 그 자체로 너무 의미 있다고 생각을 하고, 이 시간이 여러분의 고등학교 생활의 장밋빛 시작과 동시에 자신감이 되었으며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이 기쁨이 전달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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