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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수현 Sep 17. 2024

북방 이야기 : 암살 1

[소설]북방 이야기

나는 암살자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철이 들 무렵 이미 나는 나와 같은 아이들과 함께 사람을 은밀히 죽이는 법을 어느 동굴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 배우고 있었으니깐.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에 두려워 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나는… 의외로 그런 사실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무감각한 마음이 다른 친구들을 제치고 가장 우수한 암살자로서 동굴에서 나오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흐음… 이 아이인가? 과연…”


내가 동굴에 교관들의 손에 끌려나와 데려가진 곳에서는 천을 한장 사이에 둔 곳에 우리들의 수장이 있었다. 그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그는 뭔가 허락한다는 것을 내 교관들에게 지시했다. 아마도... 그건 내가 어린 시절부터 듣던 실제 임무의 시간일 것이다. 무감각한 마음에 조금은 긴장감이 들었다. 짧은 면담을 마치고 나는 다시 다른 교육장으로 보내였다. 의외로 곧바로 임무에 투입되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이전에 배운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을 배워야 했다.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 아닌 기척을 죽이고 사람들의 틈에 파고들어 의심받지 않고 존재하는 기술… 나는 그런 종류의 기술에 대해서 몸에 익숙해질 때까지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도 완전히 수료하자, 나는 임무에 투입되었다. 다시 만난 우리 조직의 수장은 나를 보면서 흡족한 웃음소리를 내며 명령을 내렸다.


“너는, 이제부터 어느 명가에 하녀로 잠입하게 된다. 네가 제거해야 할 존재는 바로 그 명가의 주인이다. 그는, 아직 젊은데도 명문가의 당주로서 현 정권의 강력한 실세인 자이다. 그리고 교활하고 재능이 뛰어나며 정치적 감각이 좋아 항상… 정국을 자신의 뜻대로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왔지. 그의 그런 행보에 대해… 다소 불편한 사람들이 많다. 너는 그를 제거해야한다.”


부연 설명에 대해서 큰 관심이 들지는 않았다. 어차피, 죽일 상대이다. 제거를 위한 신상 정보 외에는 깊게 알지 않는 것이 좋다. 나는 수장에게 물었다.


“그를… 언제까지 제거하면 되겠습니까?”


나의 질문에, 수장은 조금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정해지지 않았다.”


“네?”


“의외로 암살이란 말이지… 정치적 역학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법이지. 가장 적정한 제거해야 할 시기가 있는 법이다. 그 시기가 정해지지 않고 아무때나 죽여서는 의미가 없다. 그러니… 너는 그곳에 잠입하여 명령을 기다려라. 손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오면, 그때 손을 쓰면 된다. 그때까지는, 절대 네 정체를 들키지 말고 그의 집에 기거하며 대기하라. 그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명령이다. 하지만… 조직에서 항명은 없다. 나는 그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길을 떠났다.


“주인 어른… 여기 새로운 하녀 아이가 들어왔습니다. 인사드려라. 당주님이시다.”


“아, 네… 주인님 인사올립니다.”


하인들의 마름이 나를 그들 주인에게 소개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제거해야 할 목표를 보았다.


“호오… 고운 아이로구나. 그래, 내 집에서 편히 가족으로 지냈으면 좋겠구나.”


그는, 확실히 젊었다. 나라의 권신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나보다 겨우 대여섯살 정도 위의 나이로 보였다. 그리고, 생각보다는 온화한 인상이었다. 정계의 실력자라는 말처럼 교활하고 예리한 인상이라 여겼는데. 나는 그와 나의 거리를 보았다. 열걸음… 두번만 발을 딛으면 내 머리에 날카롭게 갈린 비녀가 그의 목에 박히는 걸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조직에서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나는 마음을 진정하며 그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왠지 모르게 뒷통수가 따가운 기분이 들었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이런 무거운 걸 너에게 들게 했느냐?”


나의 나무짐을 진 지게를 당주님은 빼앗으며 말했다. 차림을 보니 막 조정에서 어전 회의를 마치고 퇴청하는 모습이었다. 요즘 들어 왠지 모르게 조정 대신들과 회합을 가지는 대신 빠른 퇴청을 하는 당주님이셨다. 그리고, 이상하게 나에 대해 과한 관심을 보이는 분이셨다. 나는 나무를 해오는 길에 만난 그가 말에서 내려 내 지게 까지 빼앗으려 드는 것을 보고 조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주십시오. 당주님이 하실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닙니다. 산지기 영감님이 오늘 다리가 안좋아 제가 쉬시라고 하고 따로 해온 것입니다. 제가 대신 해드리는 것도 많이 미안해하시는 산지기 영감님이신데 당주님이 나무를 지셨다는 말을 들으시면 놀라 혼절하실지도 모릅니다.”


“뭘 혼절할 것 까지야. 너는 마음이 곱구나. 듣자하니 다들 마다하는 일을 가장 성실히 해서 하인들 사이에서 칭송이 자자한 모양이던데… 이렇게 자기 일이 아닌 것까지 맡아서 하다니 말이야.”


이런… 튀지 않고 은신하고 명령을 기다려야 했는데 너무 시선을 끌어버린 건가? 나는 당주에게 말했다.


“다들 좋으신 분이시고 저를 챙겨주십니다. 응당 집안에 일원으로 해야 할 일을 도왔을 뿐입니다. 전에 제게 가족처럼 지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하하… 그건 그렇지. 못당하겠구나. 보아하니… 그 나무는 오늘 내 욕탕에 불을 지필 것들을 채워넣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관둬라. 지금은 네게 따로 시킬 것이 있다.”


“따로 시킬 것이 있다고요? 그게 무엇이십니까?”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나는 물었고, 그는 조금 음흉하게 대답했다.


“그야 물론… 명가의 망나니 귀족들이 순진한 하녀를 데리고 으슥한 곳에서 하는 그것이지.”


아… 조금 각오는 했다. 암살에 대상에게 여체로 접근하는 것도 교육 과정 중에 하나였으니깐.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벌어질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그리고 내가 그렇게 고관들의 환심을 살 정도의 얼굴이라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방심했다. 하지만… 거부할 수는 없겠지? 조직이 조금 야속했다. 즉결 제거를 명했다면 지금이 최고의 기회인데… 그리고 결심을 굳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웃으며 내 손을 잡아 당겼다.


“좋다~~~”


그는 냇가에 발을 담그고 희희낙낙하고 있었고, 나는 뭔가 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불을 지폈다. 그가 말하는 그것은 바로… 군것질이었다. 나름 집안에서는 격식 있게 식사해야 하는 압박감에 많이 시달린 모양이었다. 그는 내게 해온 나무로 불을 지피게 하고, 거기에 그가 가져온 알수 없는 음식을 넣고 굽게 했다. 망할… 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한거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왠지 그는 유쾌해 보였고, 그 모습이 조금 얄미웠다.


“자, 잘 구워졌구나. 음… 맛이 최고다. 너도 한번 먹어보거라.”


여느 때라면 주인이 주시는 음식은 거절해야 마땅하지만, 몰래 하는 군것질이어서 그랬을까? 그리고 왠지 대단해 보이지 않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을 그가 내밀자 나는 한입 먹었다. 그리고, 달착지근한 맛이 입안에 퍼져나갔다.


“맛있습니다. 처음 보는 음식인데, 이게 뭔가요?”


“아, 그거 고구마라는 것이다. 동여의 동쪽에 바다 너머에서 온 물건이지. 그래, 맛이 나느냐?”


“네, 마치 천상의 감미같습니다.”


“잘 먹는 걸 보니 보기 좋구나. 많이 있으니 더 먹거라. 내 황제 폐하의 진상품에서 잔뜩 훔쳐왔느니라.”


“쿨럭쿨럭! 퇘!”


“아니, 그걸 왜 뱉느냐? 잘먹다 말고…”


“주인님, 지금 황제 폐하의 진상품을 무단으로 가져오셔서 하녀에게 주신 겁니까? 지금 누굴 죽이시려고…”


나는 당황하여 소리쳤다. 그런데 그때… 그의 얼굴이 변했다. 파락호 같은 귀족 청년이 아닌, 조정을 뒤흔드는 권신의 얼굴로…


“어허… 신경쓰지 말래도. 설령 안다고 해도… 황제는 나를 어쩌지 못해. 감히 우리 집안을 그리 대할 수는 없지.”


갑자기… 그의 실체에 대해 긴장감이 들었다. 아, 그래… 그는 내가 제거해야 할 목표인, 이 나라의 권신이다. 잠시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반성했다. 그리고 그는 조금 긴장한 나를 보며 달래주듯이 다시 실실거리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아. 어차피 조만간 세상에 풀려 흔해질 물건이다. 듣자하니, 구황기에 좋은 작물이라더군. 조정에서는 그 점을 이용해서 국가의 전매 대상으로 관리할 생각이야.”


“그런가요? 그런데 좀 아쉽네요. 흉년에 잘 크는 작물이라면 전매를 하는 대신에 그냥 백성들에게 나눠줘서 자유롭게 키우게 하면 좋으련만…”


“응? 너는 그런 것이 좋다고 생각하느냐?”


“아… 아닙니다. 제가 감히 외람된 말을…”


나는 서둘러 사과했고, 그는 왠지 조금 담담히 미소지으며 말했다.


“너는… 마음이 곱구나. 그래, 백성을 위하는 관료라면 그것이 맞겠지. 새겨들으마. 이만 돌아가자꾸나.”


그렇게 주인님과 나의 짧은 외유는 끝났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나의 입장은 조금 변화했다.


“잘하고 있군. 그가 직접 부리는 몸종이 되다니”


내 뒤에 그림자에 나타난 인기척은 그렇게 나에게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제거는 언제입니까? 이제 준비는 다 갖추었습니다.


“기다려라.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 최근에 구황 작물에 민간 이양에 대한 건의로 백성들 사이에서 그의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좀더… 무르익을 때까지 조직의 명을 기다리며 대기하라.”


나는 어느새 사라진 조직의 밀정을 뒤로하고 주인님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탁상에 내가 한아름 들고 있는 수많은 물건들을 쏟아내렸다. 주인님은 그걸 보며 나에게 물었다.


“이게 뭐냐?”


“뇌물입니다. 전부 다 저에게 보낸… 이제 좀 적당히 해주시죠.”


몸종답지 않은 고압적인 태도로 항의하는 나에게 그는 떨어진 사탕을 하나 까먹으며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애쓰는구만. 축하한다. 일일히 나에게 보고할 것 없이 적당히 챙겨가거라.”


“주인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뇌물이란 말입니다. 뇌물이요!!! 다들 제게 주인님을 혼사와 관련해서 만나고 싶다고 자리를 만들어 달라며 보내는 뇌물이라고요. 이걸 받는 건 주인님을 팔아먹는 것이란 말입니다.”


“응? 그걸 또 그렇게 해석할 수가 있나? 신선한데? 나를 팔아먹는 일이라… 하긴, 요새 관행화된 뇌물이 당연해서 잊고 있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뇌물은 나라를 팔아먹는 일이지. 음… 이번 어전회의에서 그걸 인용해서 늙은이들을 논박해야겠다. 표절이라고 시비걸지 말아다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로…”


“농담이 나오십니까? 더는 그만하십시오. 대체 몇 명이십니까? 주인님과 혼례를 원하는 수많은 처녀들을 그렇게나 많이 간만 보다 외면하시는 일이 셀수 조차 없습니다.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이제 슬슬 혼처를 정하셔도 되지 않으십니까?”


하도 여러 집안에 압박에 시달린 내 말이 격해졌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렇게 말해도…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알다시피 우리 집안은 이 나라 최고의 명가다. 황실이 부럽지 않은 집안이지. 그런 내가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는 것은, 단순한 남녀의 애정이 아닌 집안간의 정치적 고려가 우선시 된다. 그런 와중에서… 정치적 선택을 한번 잘못하게 되면 나라에 큰 영향을 주게 되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그리 간단한 선택을 할 수 있겠느냐? 자칫, 잘못하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집안에서 암살자를 보내 집안의 모욕을 갚으려 들지도 모른단다.”


암살이라는 말에 조금 뜨끔했다. 그러면서… 그의 입장에 대해 조금 차가운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그의 곁에 부인이 있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를 제거할 시기에 방해 요소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걸… 내가 굳이 열을 올려가며 부추길 이유가 있을까? 차라리… 혼자 있는 편이 나에게는 불리할 것이 없다. 그렇다면, 그에게 가장 근거리에 있는 몸종인 내게 기회가 넘쳐난다. 그를 언제든지 죽일 기회를 일부러 포기할 이유가 없지. 근데… 그때… 왠지 모르게 마음이 조금 찡한 것을 느꼈다. 뭐지? 이건? 나는 왠지 모르게 묘한 마음을 억누르며 그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공식적으로 혼인의 의사가 당분간은 없음을 표명하십시오. 희망 고문만이라도 그만두시길 바랍니다. 직접 말씀하시기 뭐하시면 입장만 정해주시면 제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리 고하겠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것이 좋겠군. 하지만 말이야… 생각해보니 다른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게 뭡니까?”


“그냥… 정치적 영향력이 아예 없는… 그래서 아무 집안도 내가 가진 것을 나눠가질 수 없는 사람을 아내로 들인다면 그런 소란은 무의미해지겠지. 마침, 내 앞에 딱 맞는 사람이 있군. 나와 결혼해주겠느냐? 참고로 나는 첫아이는 딸이 좋다. 으힉!!!”


나는 주인님의 앞에 커다란 수박을 한손으로 들어 내려쳐서 으깨놓구선 말했다.


“이거나 드시고 속차리시지요. 사람들에게 꼭 덧붙여 드리겠습니다. 몸종 희롱이나 하고 재밌어 죽겠다는 한심한 남자에게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진정해… 진정하라고… 그는 내 제거해야 할 목표야. 조직에서 명령이 내려오면 바로 목을 따야 할 존재라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사람들에게 그가 혼사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것을 고하였다. 반응은 상당히 격했다. 몇몇 가문은 뭔가 나라의 정치 경쟁에서 탈락한 것처럼 초조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심상치 않은 기류를 형성했다.


“습격이다!!!”


“어서 녀석들을 막아! 하인들을 도련님을 피신시켜. 서둘러!!!”


결국 그가 우려하던 암살이 발생했다. 상당히 수많은 자객들이 저택을 포위하고 기습을 가해왔다. 나는 그런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바를 몰랐다. 그런데 그때… 조직에서 나에게 말했다.


“그를 지켜라.”


“네?”


“그를 지켜라. 여기서 그가 죽어서는 곤란하다. 그의 암살은 어디까지나, 조직이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때까지는 절대 그가 죽어서는 안된다. 그를 지켜라.”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박차고 달려나갔다. 손에 닿는 날붙이를 들고 막아서는 자객들을 베며 달려나갔다.


“비켜비켜!!!”


그에게 가야 한다. 그를 지켜야 한다. 명령과 무관하게 그것은 나의 의지였다. 나는 막아서는 자객들을 잇달아 쓰러뜨리고 결국 주인님을 발견했다.


“주인님, 무사하셨군요.”


“네… 네가 왜 여기에!!! 어서 피하거라. 지금 여기는 너 같은 아이에게 너무 위험하다.”


“같이 피하세요. 안전한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어서… 응?”


그때였다. 암살 훈련 중에 귀에 새긴 익숙한 소리… 활 시위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을 듣자 마자 나는 몸을 던졌다.


“크흑!!!”


격한 고통이 등에 밀려왔다. 세방… 맞은건가? 그는? 그는? 아아… 무사하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며 의식이 사라져갔고, 나는 마지막 기력을 짜내 그에게 말했다.


“어서… 피하세요…”


“정신 차리거라. 다들 누가 없느냐? 지붕 위에 사수를 죽여라. 그리고 와서 도와다오. 정신 차리거라. 죽으면 안된다. 네가 죽으면 나는… 나는…”


그것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사라졌다. 깨어났을 때는 붕대를 두르고 침상에 눕혀져 있었다. 주인님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사한 것을 보고 발걸음을 돌려 자신을 습격한 배후를 밝혀내고 무자비한 보복을 하러 갔다고 들었다. 나는 그가 살아 있다는 말에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가 돌아온 것은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일어나지 말거라. 의식을 찾았다는 말을 듣고 왔다. 대체 어쩌자고… 그런 무모한 짓을 한 것이더냐.”


“주인님을 구해야 하는 것이 제 의무입니다.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그 피는…”


“아, 이건 내 피가 아니다. 내게 혼담을 거절당했다고 자객을 보낸 놈들의 주리를 틀며 튄 것이다.”


나는 그걸 보며 문득 생각했다. 더는… 이런 소요가 생겨서는 안되겠지? 나는 그래서 주인님에게 말했다.


“주인님,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뭐든 말해보거라. 내 나의 목숨을 구해준 너에게 못들어 줄 것이 무엇이더냐?”


“자객을 보낸 집안… 벌을 내리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멸족을 하진 말아주십시오.”


“뭐라? 지금 그게 무슨 소리더냐? 내 너를 이리 만든 놈들을 결단코 용서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러셔서는, 복수가 이어집니다. 그들을 용서하고 수용하십시오. 그러면… 주인님의 아량에 감동하여 더는 이런 자객을 보내지 않을 겁니다. 결국 다들 혼담이 거절당했기에 느낀 수치와 분노… 여자의 마음을 조금 헤아리십시오. 그것만으로도 주인님의 안전이 보전됩니다. 저는 그저 그것을 바랍니다.”


그래야… 내 목표를 빼앗기지 않으니깐. 그런 나의 말에 그가 조금 당황하여 말했다.


“너… 너는 어찌 이리 착한 것이더냐. 다들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들고 작은 원한을 크게 복수하는 것이 사람들인데… 역시, 너는 그분과는 많이 다르구나.”


“그 분과는 다르다고요? 누구를 말씀하시는지요?”


“어렸을 때 돌아가신 나의 모친… 지금에 와서 하는 말이지만, 너는 내 모친과 쏙 빼닮은 얼굴이란다. 그래서, 처음에 네게 관심이 갔다. 그런데 너를 보면서 알게 되더구나. 너는 용모는 어머니를 빼닮았지만, 성격은 전혀 다르다. 내 어머니는, 그야말로 나를 낳았다는 이유로 사치와 허영을 누리며 세상에 패악을 심히 부리시던 분이셨지. 그런데 너는… 마음이 곱고 사려깊으며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지. 그리고, 현명하며 용감함을 가졌지. 처음에는 그저 닮은 것에 애증을 가지고 관심을 두었는데… 점점 그게 호기심으로 끝나지가 않는구나. 내게 청을 한 것… 들어주마. 대신에 너도 내 부탁을 하나 들어다오.”


“네? 저는 도무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무슨 부탁을 하시려고 하시나요?”


그리고 그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꺼냈다.


“나와 결혼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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