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캐나다, 한 번의 사계절이 허락된다면
8월에 신청한 실업급여는 아직 리뷰 중이다. 같은 상황이었던 다른 친구들 경험에 의하면 1년간 실업급여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는 경제상황이나 뭐 각종 이벤트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인생은 예상을 늘 빗나갈 수 있지만, 일단 일 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월세와 식비가 실업급여로 충당 가능하다. 그럼 1년간 나는 같은 직종의 다른 회사에 취직을 하든, 다른 직업에 도전해서 자리를 잡든 캐나다에 머무르는 게 이득이다. 하지만 아무 진전도 없는 채 실업급여 기간이 끝나게 되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백만 원이 넘는 월세와 높은 물가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상황이 된다면, 나의 캐나다 삶은 한 번의 사계절이 남은 셈이다.
문득 지금 이 계절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캐나다의 여름이라면, 나는 무엇을 후회할까 생각했다.
한 번의 가을, 한 번의 겨울 그리고 한 번의 봄이 지나면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지.
물론, 반드시 한 해가 지나면 돌아가겠다는 건 아니다.
단지 일 년 후 돌아가게 되는 상황이 온다 했을 때, 뒤늦게 "아 이걸 못했네"라고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
문득 뭘 해봐야 후회하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일단, 클라우드 사진첩을 뒤져가며 내가 그동안 캐나다에서 했던 것들을 돌아보았다.
아래는 내가 해본 것들이다.
경험 (계절 안타는 것)
- ESL에서 영어 배우기: 철없던 학생시절로 돌아간 재밌던 시간,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남
- 홈스테이: 처음 캐나다 와서 한 달 반정도 흑인 여자 집에서 삶, 자취 결심
- 학교 가기: 취업비자를 위해 컬리지에서 2년 공부함, 여러모로 고생함
- 취업: 4개의 회사를 다녀 봄
- 완벽하게 혼자 살아보기: 엄마가 준 이불, 엄마가 준 가구 말고 내가 스스로 다 결정한 곳에서의 삶
- 응급실 가 봄, 병원에 입원해 봄(https://brunch.co.kr/@hiraeth/5)
- 경찰서 가 봄, 방송국 인터뷰 해서 티비 나와 봄: 가방을 도둑맞았음
- 뮤지컬 관람: 우연히 친구 일행이 아파서 공짜로 라이온킹 봄. 무대장치가 압도적이었음.
- 캠핑
- 친구네 커티지 가 봄 (여름, 겨울)
이민 초기에는 낯선 해외인 캐나다에서 홀로 정착하기 위한 경험들이 많았다. 비자와 영주권 과정이 중심이었고, 병원이나 경찰서를 찾게 된 일들은 예기치 못한 덤처럼 따라왔다.
경험 (계절이나 시즌 타는 것)
봄
- 토론토 마라톤
- 하이파크 벚꽃: 사람 많아서 새벽에 룸메 언니랑 감
여름
- 프라이드 토론토 퍼레이드: 정말 색다른 경험
- 메이저리그 야구보기: 오타니 왔을 때 경기 관람, 첫 타에 홈런
- 캘거리 스탬피드: 부모님이랑 밴프 갔을 때 감
- 토론토 CNE: 영화 속 축제에 들어온 기분
- 체리피킹: 친구 따라 가 봄
가을
- 토론토 국제 영화제(TIFF)
- 연어 점프하는 거 구경: 거꾸로 강을 거슬러 점프하는 연어들
겨울
- 시청에서 새해 불꽃놀이 보기
- 핼러윈 퍼레이드
- 겨울 스포츠: 블루마운틴에서 스키 탐
- 크리스마스마켓 및 퍼레이드 구경
- 얼음낚시: 고기는 못 잡았지만 계속 먹음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는 그 계절이 허락하는 이벤트에 끌린다. 계절은 어쩌면 단순한 날씨의 변화가 아니라, 내가 이곳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무대였다.
여행
- 토버모리: 맑은 물이 너무 예쁨
- 나이아가라: 여러 친구들과 5번 정도 감
- 던다스피크: 토론토에서 가장 가까운 단풍 명소
- 알곤퀸 파크: 검은 아기 곰 봄, 캠핑하러 감
- 오타와: 캐나다의 수도
- 킹스턴
- 몬트리올
- 퀘벡: 겨울에 얼음축제 때 감
- 몬트랑블랑: 단풍이 진짜 너무 멋있던 곳.
- 밴프: 부모님 오셨을 때 한번, 캘거리 친구들과 두 번
- 캘거리 공룡 박물관, 워터톤: 곰도 보고 사슴이랑 하이킹도 함
- 미국여행 (시카고, 팜스프링스, 조슈아트리)
- 유럽여행 (암스테르담, 벨기에)
캐나다에 살았기에 캐나다 도시들을 여행했고, 가까운 나라들로도 종종 발길을 옮겼다. 그 모든 여정이 결국 ‘이곳에 살았다’는 증거가 되었다.
이렇게 놓고 보니 매일 집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다양하게 경험해 보고 가본 것을 새삼 깨닫는다. 캐나다에 온 첫해와 그다음 해에 해본 것들이 많다. 그때는 당장 언제 돌아갈지 몰랐으니까.
이렇게 리스트를 적고 나니, 다시 해보고 싶은 것 또는 가기 전에 이건 해보고 가야지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생겼다.
첫 번째는 토론토에서 매년 여름에 하는 야외 셰익스피어 연극 관람이다. 보통 여름 시작부터 8월 마지막날까지 한다. 토론토에서 가장 큰 공원인 하이파크에서 하는데 마침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이다. 연극은 매년 바뀌는데 올해는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 내년엔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 올해 마지막날 표를 구입했다. 물론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대충 다 아는 내용이라 나름 재미있게 봤다. 해가 지기 전에 시작해서 서서히 어두워져 가는 무대도 인상적이었다. 한 여름밤의 꿈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는 토론토 아일랜드이다. 너무 더워서, 너무 추워서 토론토 아일랜드에 가지 않았다. 경치도 좋고 여유로워서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곳인데, 10년을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페리를 타고 몇 분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도 왠지 조금 귀찮게 느껴지고 꺼려졌다. 얼마 전 수동 필름 카메라에 찍지 않은 필름이 여러 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직 프레임들이 남아서 인화를 할 수가 없다. 조만간 필름 카메라를 들고 어떤 낭만들이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세 번째는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첫 해에 한번 일본인 친구와 간 적이 있다. 그때 너무 춥기도 했고, 그 친구와 아직 어색한 사이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토론토에 온 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라서 약간 정신도 없었다. 이번에 가서 좀 여유롭게 돌아볼 생각이다.
네 번째는 나이아가라 폭포이다. 나이아가라지역에서 자란 캐네디언 친구가 고맙게도 와인투어를 해주었다. 와인투어는 누구보다 샅샅이 재미있게 제대로 즐겼다. 반면에 여러 번 다양한 친구들과 나이아가라폭포를 갔지만, 뭔가 음미하는 것보다 사진 찍고 관광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9월 말에 친구들과 1박 2일로 가서 시간이 되면 조깅도 하고 여유롭게 보고 올 생각이다. 여행을 할 때마다 기념품을 사는데, 왜인지 나이아가라 기념품은 사지 않았다. 이번에 가면 기념품도 사 올 생각이다.
다섯 번째는 토론토가 아닌 퀘벡이다. 드라마 도깨비가 방영된 후 가을 퀘벡의 인기는 치솟았다. 물론 얼음 축제가 있던 겨울에 가서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도깨비에 나왔던 그 가을의 경치를 보고 가지 못한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단풍시즌을 맞추기가 너무 어려웠다. 기왕 갔는데 단풍을 못 보고 오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았다. 그래서 9월 30일부터 10월 14일까지 2주간 머물기로 결정하고 예약을 마쳤다. 몇 달 전에 예약한 것도 아니라 가성비 좋은 숙소는 이미 다 나갔고, 성수기 시즌이라 전체적으로 비쌌다. 퀘벡 관광지는 사실 하루 이틀이면 다 돌 수 있는 수준이라 2주 동안 머무는 건 오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시간과 돈을 내 마음대로 쓴다는 데 뭐!
"토론토에서만 살아봤으니 그럼 퀘벡에서 살아본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즐기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그냥 추진했다.
혹시나 하고 퀘벡 마라톤을 검색해 보니 내가 머무는 기간에 열리지만 표는 이미 매진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페이스북 퀘벡 마라톤 그룹에 글을 올렸고, 다행히 10K 표를 양도받을 수 있었다. 긴가민가하던 퀘벡 여행의 설렘이 확신으로 바뀐 순간이었다. 이번 여행으로 다른 지역 마라톤에 참가해보고 싶던 꿈도 함께 이뤄질 것이다. 부디 머무는 공간도 편안하기를 바란다. 여하튼 나는 그곳에서 먹고, 걷고, 뛰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가을을 흠뻑 느낄 생각이다.
현재는 이렇게 다섯 개의 버킷리스트가 있고, 그중 하나는 이미 했다. 앞으로 몇 개가 더 추가될지 어떤 일들이 더 추가될지는 모른다.
체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나하나 캐나다의 사계절을 담아갈 예정이다.
그렇게 담은 나의 장면들을 브런치에도 하나하나 사진과 함께 공유해야겠다.
해당 글을 팟케스트에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https://open.spotify.com/episode/5s3sM8W4OOoiSJC57srEGh?si=6h-laXi1Q3mX7DWhthlUkQ
https://podcasts.apple.com/us/podcast/go-back-하고-싶은-고백/id1835345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