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일은 모르는데 왜 평균으로 기를 죽이고 그래요
“40대 평균 연봉 X천”, “40대 평균 자산 X억”, “노후에 최소 XX 만큼 있어야…” 등의 기사나 뉴스,
“40대에 이 정도면 자산이면 정상인가요?”, “40대면 세후 얼마나 벌어야 하나요?” 등등의 질문들과 검증되지 않은 답변, 조언들.
정신없이 살다 어느새 마흔이 코 앞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이런 말과 글들에 잠겨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다.
내가 노후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건 2021년이었다.
좋은 회사를 만나 안정감을 느끼던 찰나, 7월에 침을 맞으러 갔다가 바늘이 신장을 찔려 응급실에 갔다 병원에 입원을 했다. (다른 글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적었다) 그리고 나선 그 해 9월, 12월에 허리디스크 때문에 일주일 내지 2주는 꼼짝도 못 하고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다. 옆으로 누우면 또 허리가 휘어져서 늦게 나을까 봐 천장을 바라보고 자다 깨다.. 생각만 많아지는 날들이었다.
체력은 정신력이라고 생각하며 건강을 등한시한 것도 있었겠지만, 30대 중반을 넘기니 확실히 아픈 곳도 많았고 회복이 더뎌짐을 느꼈다.
20대 30대 초반엔 미처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경우의 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파트너도 없고, 혼자인데 내가 아파서 일을 못하면 어떡하지? 지금부터 건강을 챙긴다고 해도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는데 내가 스스로 일을 할 수 없으면 어떻게 먹고살지? 대체 얼마가 있어야 늙어서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살 수 있지?
2022년, 침상에서 일어나자마자 노후대비를 시작했다.
첫 번째는 건강에 투자하는 것이었다.
오랜 재택근무와 반복된 허리디스크는 내 몸의 근육을 다 앗아갔다. 30분 정도 걸으면 허리가 아프기 시작해서 한 시간은 누워있어야 했다. 믿을 거라곤 나 하나뿐인데, 아파서 누워있으면 너무 손해가 컸다. 일주일에 두 번 PT를 받기 시작했다. 등, 엉덩이, 허벅지등 허리와 연관된 근육들을 먼저 키워나갔다. 세금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800불씩, 절대로 적지 않은 돈이 PT로 나갔다. (더 자세한 허리디스크 극복기와 운동관련한 내용은 다른 글에 풀어보겠다)
두 번째는 경제적인 노후대비, 투자와 소비습관이었다.
돈을 더 모을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덜 쓰고, 더 버는 것.
지금 몸 상태론 투잡 쓰리잡을 뛰는 건 무리였다. 결국, 지금의 내가 노동하지 않고 더 벌 수 있는 방법은 투자뿐이었다. 그제야 캐나다의 TFSA(비과세 계좌)를 알게 됐다. 5년을 살며 몰랐다니.. 무지해서 날린 기회비용이다. 겁이 많아서 한 번에 큰돈은 넣지 못하고, 몇 개의 회사에 500불 정도씩 넣기 시작했다. 회사 주식뿐 아니라 ETF, 머츄얼펀드, 고금리 통장 같은 것도 시도해 봤다. 이렇게 직접 해보며 나한테 맞는 방식을 조금씩 찾아갔다.
투자하면서 자연스레 쓸데없는 소비도 줄었다. 아마존에서 쇼핑 대신 주식 쇼핑을 했다. 그렇게 200-300불씩 투자를 하면, 통장에 돈이 없는 것 같아서 예쁜 쓰레기들을 안 사게 되었다.
그렇다면 2025년의 나는 어디쯤 있는 걸까?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정상”적인 “평균”에 도달했을까?
2022년, 나는 빚은 없지만, 집, 차도 없었다.
유동자산은 없고 현금만 40,000불(대충 4천만 원이라고 치자) 정도.
그리고 30분 정도 걸으면 지치는 체력이 있었다.
2025년, 지금 현재도 빚, 집, 차 없다.
연봉이 조금 올랐지만 실수령액은 거의 차이가 없다. PT를 일주일 2번에서 3번으로 바꿨으니 그냥 퉁치자.
현재는 조깅 가능한 몸뚱이를 가지고 있고, 일주일에 두세 번 5K 정도 6분 후반에서 7분 초반 페이스로 조깅을 할 수 있다.
7월 현재, 총 자산 비율은 현금 34.32%, 유동 65.68%이다.
유동 자산은 90프로가 주식 나머지는 ETF 및 코인이다.
총자산은 2023년에 약 CAD 37,000, 2024년에 CAD 38,000씩 증가했고, 올해는 CAD 18,000 증가한 상태다.
해외여행은 한국에 23년 24년 간 걸 제외하면, 1년에 한 번 정도 가까운 곳(주로 미국)으로 3박 4일 정도 간다.
작년부터 일 년에 한 번 캘거리 친구네 집에 열흘 정도 머무른다. 평일엔 재택으로 일하고, 주말에 같이 밴프나 근교에 간다. 하지만, 비행기 값(40-50만 원 남짓)을 제외하면 크게 따로 돈이 들진 않는다. 20대에는 해외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귀찮아서 별로 안 당긴다.
나름 열심히 모은다고 모았지만, 아직 1억 남짓이다.
인터넷에서 보는 “40대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미치는 건 그저 나? 아재개그다.)
그렇지만 그런 말들에 흔들릴 필요가 없다.
사람 일은 진짜 모르는 거고, 주변을 보면 자의든 타의든 있다가도 없는 게 돈이다.
경제적으로만 본다면, 한참 벌어야 할 시기에 모은 돈 다 써서 (언제 떠날지 모르는) 낯선 나라에 정착한 건 손해는 아니었다. 한국에서 계속 회사생활을 지속했다고 해도, 현재의 이 나이에 지금 보다 더 나은 돈을 모았을 것 같지 않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말이다.
나이가 먹으며 생각이 달라진 것도 물론 있겠지만, 이곳의 경험으로 인해 가치관이나 우선순위도 많이 바뀌었다.
그럼, 위에 했던 질문을 다시 해보자.
2025년의 나는 어디쯤 있는 걸까?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정상”적인 “평균”에 도달했을까?
이게 아니다. 적어도 내가 나에게만큼은 이렇게 질문하고 싶다.
2025년의 나는 내 인생 여정의 어디쯤 있는 걸까?
“평균”, “정상”이란 말에 흔들리지 말고,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기죽지 말고,
모자란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낸 것들에 감사하며,
뛰면 빨리 지치니까 차근차근 한 발씩 하던 대로 방향도 고쳐가며
현재를 충분히 살면서 미래의 나를 덜 고생하게 도와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