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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평화 Oct 25. 2023

11. 절망 대면하기 (2)

         절망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이다

 

절망은 없다. 자신이 만들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내가 그럴듯하게 만들어 놓고 고민하는 것이다.

이제는 네가 상상으로 소망을 만들어 보아라.

웃음꽃이 절로 피고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한 발자국씩 발을 앞으로 디딜 것이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신이 없다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있었는데 지금은 죽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가 추구하던 가치와 의미가 사라지고 부조리와 허세와 악한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을 보고 본인이 알았던 신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악도 인간이 만들었고 가치도 세상도 권세도 인간이 만들어갔고, 그리고 인간은 신을 버렸다. 면죄부도 인간이 만들었다. 숱한 악한 것들을 인간이 만들어 놓고 신은 세상에 침묵하고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니체도 죽을 때 “신이여, 제발 저에게 관심을 갖지 말아 주소서.”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결국은 신을 인정한 셈이다. 


예를 들면, 나의 할머니는 세상에 없는 것이 아니라 있다가 죽은 것이다.

할머니는 “항상 선하게 살고 어려운 이웃을 보살펴라”라고 하였다.

선하게 산다는 것은 창조주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사는 것이다. 

과거에 나는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내 가치관이 변하자 내 마음속에 있는 할머니의 말씀은 필요도 효과도 권위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죽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나마 니체가 이해가 되는 것은 나의 청춘이 물불을 가리지 못할 때, 그렇게 신은 죽었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절망이라는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한줄기 빛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진리임을 알았고 그 길로 가고 싶었다. 

그리하여 어렸을 적부터 애독했던 톨스토이를 꺼내 죄와 벌을 다시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큰아들 드미트리(미챠)를 소환했다. 

“나는 결단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자체가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죽인 죄인이다. 그러니 나를 벌하시오.”

누구를 미워하거나 세상에 없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죄인이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이가 우리를 절망에서 구하지 못하겠느냐?


이제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을 들으면서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더 사랑해야겠다. 초연 때,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아서 청중들의 박수 소리도 듣지 못했으나 누군가 그를 돌려놓아 청중을 본 것이었다.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시대를 살고 있지만, 할머니가 말씀하신 “선하게 살며 이웃을 돕고 사는 것이 최고이지!”라는 말을 마음 깊게 새기고 험한 세상에 발을 힘차게 다시 내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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