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부부
시골에서 명절을 지내고 분당 집으로 오는 차 안이다. 찌뿌둥한 엄마와 아빠를 보고 아들과 딸이 말을 하였다.
“엄마 아빠는 서로 사랑은 하고 결혼을 한 거야? 말 안 하는 것 보니, 사랑 안 하고 결혼했네, 그러니까 이렇게 싸우지요.”
“맞아, 지긋지긋하게 싸우네, 왜 같이 사는지 통 모르겠네요.”
운전하던 아빠가 분위기를 바꾸려 말했다.
“너희들도 결혼하면 그렇게 된단다. 결혼은 사랑의 종말이라는 말도 있잖아.”
나는 다 큰 자식에게 너무 부정적인 말 같아서 한 마디를 더했다.
“아냐, 우리만 이렇게 싸우지, 더 많은 가정들은 화목하고 잘 살고 있어.”
“왜 우리는 싸워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거야?
“엄마 아빠는 여러 가지 이유를 알고 있겠지.”
“어제저녁 누나는 왜 화를 내고 부엌에서 나간 거야?”
“할머니가 엄마한테 욕을 하고 함부로 대하잖아.”
“맞아, 작은 어머니들은 안 왔어. 엄마 혼자 일을 다 했고.”
“이것저것 열심히 일하는 엄마한테 왜 욕을 하냐고. 나도 엄마 혼자 부엌에서 일하는 것을 보면 속상하단 말이야. 엄마는 암 환자여서 면역력도 없는데.”
“맞아, 아빠가 엄마를 챙겨줘야지. 아빠는 할머니한테 바른말하기가 어려워?”
“아빠, 아빠는 마마 보이지? 그러니까 할머니한테 꼼짝 못 하지.”
“아냐, 잘해주다 보니까 마마보이가 된 거야.”
“맞네, 마마보이라고 실토를 하셨네요.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균형을 이루야지.”
“엄마한테는 와이프보이가 되어야겠네요. 한쪽의 보이만 되면 섭섭하니까.”
“다른 할머니들은 인자하고 잘 웃으시던데 우리 할머니는 욕하고 남 흉만 보잖아.”
“유독 엄마한테만 사납게 대하고. 엄마가 착하니까 업신여기는 거 같아.”
“음식을 너무 많이 장만하고, 빨리빨리 못한다고 혼내고.”
“아빠가 왕자였다면, 엄마도 공주처럼 자라고 시집왔어. 모르는 것은 당연해.”
“아빠, 나는 엄마를 혼내고 욕하는 할머니가 싫어. 이제 시골에 안 내려올 거야.”
“아빠가 엄마를 조금 더 배려했어도, 할머니가 엄마한테 함부로 대하지는 안 했어.” “맞아, 엄마도 너무 참고만 살지 마.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며 살아.”
“할머니는 시골에서 일만 하셔서 말을 곱게 하는 것을 잘 몰라. 좀 봐주면 안 되겠니?”
“아니, 못 봐줘. 작은어머니들하고 차별하잖아.”
“나도 차별이 제일 싫어. 다시는 할머니 얼굴도 안 볼 거야.”
“아빠가 할머니 앞에서 엄마한테 함부로 하는 거, 더 이상은 못 참아.”
나는 아이들이 이렇게 내 편이 되어 말하는 것이 속으로는 좋았다. 그러나 이쯤 해서 끝내고도 싶었다.
“나는 괜찮아, 참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겠지.”
“엄마는 바보야. 너무 참으니까 암에 걸린다고.”
“엄마는 힘센 남자와 입센 여자, 2대 1로 싸워야 하니까 먼저 저주는 거라고.”
“엄마도 엄마 주장을 해요.”
“엄마는 주장하는 법을 안 배웠어. 순종하는 법만 배우고.”
“엄마, 자신 내면을 보라고.”
그 말이 내 가슴을 울렸다.
딸의 폰에서 BTS 페르소나 노래가 흘렀다
-(여보세요. 지혜야, 날짜 가능하면 우리 집에 와서 일주일 동안 있어줄 수 있어?)
“싱글이와 놀아주라고? 나는 산책까지는 어려워. 내 동생이면 모를까.”
-(현명이가 있으면 너무 좋지, 싱글이 산책도 시켜주고.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그래. 지혜야, 제발 꼭 부탁하자. 열쇠는 그 자리에, 대문 번호는 모두 그대로야.)
“현명이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네. 알바도 하는 중이라.”
-(동생에게 잘 말해줘. 이모가 여행 중이라 부탁할만한 사람이 없어. 현명에게 한 턱, 아니 많이 잘 쏠게. 너만 믿고 시골 다녀올 게. 지금 떠나야 해, 전화 끊는다.)
“엄마, 괴로운 과거는 잊고 제로에서 시작해! 과거는 없어. 새로 시작하는 거야.”
“에덴동산이라 하고 시작해. 엄마만의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잘 만들어 봐.”
“아빠, 대화라는 것은 서로 주고받고 해야지. 아빠 혼자만 말하지 말고, N분의 1로 말해, 그러니까 50%만 말하고 50%는 엄마 말을 잘 들어봐. 거기에 핵심이 있어.”
“엄마 아빠, 더 이상 싸우면 그때는 우리 진짜 나갈 거야!”
남편도 일주일간 친구와 바다낚시를 떠났다. 일주일은 나만의 시간이다. 곰곰이 자신을 생각해 보았다. 사랑은 변한다. 서로 사랑을 하고 미워도 한다. 이제 사랑의 맛은 사라졌고 상대의 단점만이 보이는 미움이 넘칠 때이다.
나는 왜 남편을 미워했나? 첫째는 그는 가정에 경제적 책임을 지질 않았다. 사업에 부도를 맞고 그냥 도망가 버렸다. 자연히 나는 이런저런 일을 하였고 덕분에 인생경험은 풍부해졌다. 지금은 초등학생에게 독서지도와 논술을 가르치고 있다.
딸은 다 잊으라고 하였다. 잊어야겠다. 지금 남편은 담배도 끊고 좋아지고 있는데 나만 과거의 일에서 불행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좋아지고 있는데 미워할 필요도 없다. 남편을 미워하면 그게 다 나와 가정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새 에덴동산을 만들어야겠다. 다른 방법은 없었다. 힘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