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 속에서 찾은 나

by Forestus

나는 왜 공간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그 시작점은 번아웃과 우울증, 공황장애를 처음 겪었던 시기였다.


한때 누구보다 자유롭게 세상을 돌아다녔던 내가,

어느새 한 평 남짓한 방 안에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갇혀 지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바깥세상 구석구석을 누비며 살아왔지만 그 무렵의 나는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날은 방문 손잡이를 쥐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발작이 찾아왔고,

처방받았던 약의 영향이었는지 기면증에 시달려 24시간 중 23시간을 거의 잠으로 보낸 날도 있었다.

잠에서 깨어 화장실을 가다 복도에 주저앉아 그대로 잠들어버리기도 했다.

그때의 내 몸과 마음은 지쳐 만신창이가 된 상태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연락이 두절된 채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던 나를 걱정한 친구들이 하나둘 연락을 시도했다.

깊은 동굴 속에 숨은 사람처럼, 겨우 숨만 붙어 지낸 나날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에는 ‘이대로 완전히 사라질 순 없다’는 희미한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그렇게 어느 순간, 다시 세상 밖으로 한 번쯤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


그 무렵 나는 매주 한 번씩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처음에는 상담실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긴장이 몰려와, 손이 떨리고 심장이 요동쳤다.

상담 선생님 앞에서 나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조차 버거웠지만, 그 시간이 일주일 중 유일하게 집 밖으로 나서는 시간이었기에, 어떻게든 견디며 포기하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지금은 몸이 예민한 상태니까, 몸이 허락해 주는 만큼만 아주 천천히 해보세요”

세상에 나가려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며 좌절하며 지쳐하던 나에게 상담 선생님이 던진 그 한마디의 울림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았다.


사실 그 당시 내가 바랐던 것은 대단한 변화가 아니었다.

그냥 동네카페에 들러 멍하니 앉아 있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였다.


하지만 현실은, 방문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렵게 현관문을 열고, 또 용기를 내어 엘리베이터를 탔다.

렇게 힘들게 카페 앞까지 갔지만, 카페의 출입문 손잡이를 쥐는 순간 또다시 두려움에 휩싸여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카페 문 손잡이만 잡았다가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나가는 것부터 카페 문 손잡이를 잡는 것까지 익숙해진 어느 날,

더는 물러설 수 없다는 마음이 들었고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카페에 들어가는 지극히 평범한 그 순간이

수천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혼자의 힘으로 한 발을 내딛는 갓난아이의 걸음마 같았다.

그렇게 혼자의 힘으로 내디딘 첫 발을 희열과 함께

오랜만에 가족들에게 줄 커피를 사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짧고 소소한 외출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도 작은 도움을 받았지만, 서서히 일상을 회복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언제 아팠냐는 듯이 완벽하게 이전으로 돌아갈 순 없었지만,

불안과 두려움을 조금씩 잠재우며 하루하루를 나아갔다.


...


당시 유일하게 나에게 허락된 작은 안전지대는 ‘자동차’였다.
사람들이 많은 곳이나 대중교통은 두려워서 갈 수 없었지만, 내 차 안에서만큼은 마음이 편했다.


그 덕분에 일은 하지 못했더라도 석사 과정은 이어갈 수 있었고,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북한산 기슭에 위치한 학교에서 요양 아닌 요양을 하고 있었다.

내가 요양이라고 한 이유는,

많은 인파 속에서는 1분도 버티기 힘들어했지만

신기하게도 캠퍼스에서는 주변의 어느 공간에 가도 발작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벤치에 앉아 조용히 북한산을 바라보면, 복잡하고 불안한 마음이 잠잠해졌다.
오전에 교학팀에서 행정일을 보고, 저녁엔 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하루하루를 또 살아갔다.


....


그 무렵부터 나는 한껏 예민해져 있는 몸을 통해

신체와 뇌, 그리고 마음과 공간이 얼마나 깊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몸소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며 공간환경-신체-감정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매 순간 했었다.



다른 것 보다도 공간에 대한 나의 시선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예전에는 멋지고 화려한 공간, 기능이 뛰어난 공간에 더 마음이 갔다면,
이제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품어주는 작은 공간,
그냥 거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쉼을 줄 수 있는 공간이 진정한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집, 상담실, 자동차, 그리고 캠퍼스처럼,
소박하고 평범한 공간들이 힘든 시기의 나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이런 것들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공간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와 영향을 주는가’라는 질문에 깊은 관심이 생겼다.


몸과 뇌, 심리와 공간의 관계.

나의 상처와 회복의 여정이 자연스럽게 연구의 시작이 되었고, 오늘의 나를 이루는 밑거름이 되었다.


공황 속에서 나는 나를 완전히 잃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그 경험 덕분에 더 단단해졌고 더 섬세하게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작은 공간이 내게 주었던 평온, 그리고 그 평온 속에서 비로소 다시 나를 만날 수 있었던 시간.


이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선물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나와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꼭 거창한 치유를 꿈꾸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가까운 곳, 일상의 작은 공간에서 조용히 쉬어가도 좋다.

그곳이 바로 당신만의 ‘회복의 시작점’이 되어줄 것이다.




Forestus 한 문장
"삶이 무너졌던 순간, 나를 다시 일으킨 것은 대단한 변화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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