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찾은 삶의 리듬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by Forestus

2011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던 날

나는 훌쩍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렇게 무작정 산티아고 순례길에 발을 디뎠다.



그 당시 나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야작에 혼이 나가 있는 상태였다.

밤을 새우는 동안엔 어스름한 새벽의 적막함을 이겨내기 위해 언제나 영상을 틀어놓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접한 EBS 다큐의 한 장면이 마음에 들어왔고,

끊임없는 밤샘으로 인해 판단력 저하된 상태였던 것인지, 무언가에 홀린 탓인지..

덜컥 보름 후 떠나는 파리행 티켓을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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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no de santiago ;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많은 이들이 신앙과 자기 발견을 위해 찾는 길이라고 했지만,

건축학도였던 나에게는 답사를 핑계로 떠날 수 있는 지옥 같은 현실의 도피처였다.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압박들과 과도한 감정들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 길 위에서 무언가를 얻고자 했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가 간절했다.


그렇게 나는 무작정 그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



그렇게 떠났던 순례길은 내 상상과는 너무나 달랐었다.

첫날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생장피드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는 27km의 여정을 통해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안하게 살아왔는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한국에 있었으면, 엄마가 해주는 따듯한 밥을 먹으면서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서 드라마나 보고 행복한 방학기간을 누렸으면 될걸.. 왜 여기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800km가 넘는 길을 걸어야만 마지막에 다다를 수 있는 여정은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왔던 나에게 놀랍도록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상이었다.



해도 뜨기 전엔 새벽 6시에 눈을 떠, 간단히 준비를 하고 길 위에 나섰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간간이 나타나는 작은 마을의 Bar(바르, 한국의 카페와 같은 역할)에서 간단하게 허기를 채우고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6~7시간을 걷고 또 걷다 점심시간에 다다르면 그날의 목적지의 알베르게(Albergue, 여행자 숙소)에 짐을 풀고 점심식사를 한다.

그리고는 여유롭게 한여름의 피에스타(Fiesta, 스페인의 2시~5시 낮잠타임; 이 시간엔 주변 상점 및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를 즐긴다.


해가 저무는 저녁 시간이 되면 잠에서 일어나 마을을 구경하기도 하고,

함께 숙소에 머무는 다른 순례자들과의 여담을 나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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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 짊어진 짐의 무게가 내 인생의 무게다."


카미노에서 모두가 이야기하는 속설이 온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컨디션이 나쁜 날은 10kg이 넘는 배낭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도 했으며, 온종일 짐의 무게를 감당하는 어깨와 허리는 통증으로 끊어질 듯 아프기도 했다.


발은 물집으로 가득하고, 무릎과 어깨, 허리까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어지는 통에 꼭 필요한 물품이 아니면 알베르게의 물품함에 하나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듯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인생의 길 위에서 내려놓아야 함을 직시하며

그 반복적이고 지루한 단조로움 속에서 나는 뜻밖의 자유를 만났다.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일분일초 단위로 짜인 계획이 없이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만 가지고 걷고 또 걷는 일상은 매우 낯설었지만,

그만큼 큰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도시에서의 삶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갔다면,

이 길 위에서는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처음 시작은 '산티아고'에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무작정 앞만 보고 걷는 거에만 몰두하였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목표보다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걷다가 힘들면 내가 언제 또 스페인 택시를 타보냐며 너스레를 떨며 점프를 하기도 했고,

더 나아가 버스를 타고 도시를 이동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점차 주변의 환경을 느끼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땀이 가득한 신발을 벗어던지고 발끝에 닿는 흙의 감촉을 느끼기도 했고,

온갖 음표와 리듬이 가득한 이어폰을 빼고,

숲 사이를 지나며 듣게 되는 바람, 물, 새의 지저귐을 넘어 귓가를 스치는 바람의 감촉까지

도시에서는 무심코 지나쳤던 자연의 섬세한 자극들을 온전히 느끼며 걷게 되었다.



그러한 자극들은 점차 나의 내면의 소리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외면하기만 했던 내 안의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표면으로 떠올랐다.



특히, 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은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걷는 동안 계혹해서 변화하는 빛과 그림자는 마치 나의 내면을 비추는 듯했다.

아림의 부드러운 햇살은 나에게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고,

한낮의 강렬한 태양은 내 안의 뜨거운 열정을 상기시켰으며,

저녁 무렵 붉게 물든 하늘 아래에서는 하루를 잘 마무리한 나 자신을 위로하는 듯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 스스로에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어떤가?

- 내 마음이 속도는 어떤가?

- 이 길에서의 나의 삶은 어떤가?

- 내가 가는 길이 진정 내가 원하는 나의 길인가?



이런 질문들은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남들이 가는 길을 걸어가면서 정작 내 인생에 '나'는 없던 것 같다.

내가 판단한 인생이 아니고, 남이 판단했던 옳다고 하는 길을 걸어가는 인생이었다.



매 순간 나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여정은

나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과정과 같았다.




..





순례길은 800km에 달했고, 매일같이 20km가 넘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매일 반복되는 '걷기'라는 행위 속에서 나는 삶의 새로운 리듬을 발견했다.

이 리듬은 내가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순례길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자연스럽게 내게 가져다준 것이었다.


이 순례길의 여정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분명 이전과는 달랐다.

여전히 도시의 압박과 스트레스는 존재했지만, 그것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삶의 리듬이 생겨났다.

그 리듬은 나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지탱해 주었다.



...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는 가장 큰 깨달음은 "공간이 삶의 리듬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시의 공간이 나를 피로하게 만들었다면, 순례길의 공간은 나를 회복시켰다.


순례길에서의 깨달음 이후 나는 공간을 디자인할 때마다 단순한 기능적 접근에서 벗어나

'리듬'이라는 요소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

이 리듬이 깨지면 삶의 질이 떨어지고, 조율되면 삶이 다시 회복된다.

순례길은 내게 그것을 아주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공간 디자이너로서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그 여름 이후,

나는 도시 안에서도 리듬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내고,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국 공간은 우리가 머무르는 방식과 삶의 흐름을 결정한다.


더 다은 삶을 위해서는 더 나은 리듬이 필요하고, 더 나은 리듬은 더 좋은 공간에서 시작된다.



내가 만드는 모든 공간에는 산티아고 길에서 배운 교훈이 담겨 있다.

걷기, 쉬기, 느끼기, 생각하기의 리듬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공간에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다시 찾게 될 것이다.


그 리듬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회복이 시작된다.




Forestus 한 문장:


"회복은 공간의 리듬을 따라 천천히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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