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주는 심리적 위로와 본능적인 치유
어떤 공간에 들어섰을 때, 별다른 이유 없이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있다.
혹은 반대로, 딱히 불편할 이유가 없어도 괜히 조급해지거나 불안해지는 곳도 있다.
이 미묘한 차이는 설명하기 어려울지 몰라도,
사실 우리 몸과 뇌는 이미 정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 무의식 적인 반응, 즉 '공간의 본능적 치유력'은 최근 환경심리학·신경건축·공간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에서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1) 2).
내가 '치유회복공간'을 연구하게 된 시작점 역시, 인생의 위기 속에서 '공간이 내게 준 위로'를 경험한 것이었다.
번아웃과 공황장애로 갇혀 지내던 시간 동안,
내가 가장 먼저 다가온 힘은 거창한 것이 아닌 아주 작은 공간의 변화였다.
아침마다 침대 곁으로 스며드는 햇살, 바람이 맴도는 창, 손끝에 닿는 나뭇결의 감촉,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과 은은한 식물의 향.
이 사소하고, 평범해 보이는 감각들이 모여, 내 안의 불안함을 진정시켜 주었다.
우리는 보통 예쁜 인테리어나 트렌디한 소품, 고급 자재를 공간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진짜 위로를 주는 공간은 '스타일'이 아니라 햇살, 바람, 소리, 향기, 개방감 같은 '감각의 언어'로 작동한다.
실제로 이런 감각 자극들이 우리의 몸과 뇌, 호르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신경과학 연구에서도 꾸준히 밝혀지고 있다 2) 3).
예를 들어 자연광이 풍부한 한 공간은 뇌의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고, 햇살이 부족한 실내에서는 우울증이나 수면장애가 늘어난다는 보고도 있다 4).
나뭇잎이 겹친 숲의 프랙털 패턴, 곡선적이고 유기적인 형태의 공간, 나무와 식물의 향, 자연의 소리(바람, 물, 새소리 등)는 교감신경을 진정시키고 부교감신경의 회복을 촉진해 '안전하다', '편안하다'는 신호를 우리 무의식에 남긴다 3) 5).
공간의 치유력에 대한 학술적 대표 이론이 Keplan의 주의회복이론(ART)과 Ulrich의 스트레스감소이론(SRT)이다.
Keplan의 주의회복이론(ART, Attention Restoration Theory)은 "자연환경은 과도한 주의력을 온화하게 이끌어 회복시킨다"라고 본다. 실제로 흐르는 물이나 숲, 하늘처럼 '부드러운 매혹(Soft fascination)'을 주는 자연의 의자극은 집중된 뇌의 피로를 풀고, 창의성과 사고력을 되살린다 6).
Ulrich의 스트레스감소이론(SRT, Stress Reduction Theory)은 "자연환경이 이빠르게 정서적 안정과 생리적 이완을 유도한다"는 이론이다. 병실에서 나무가 보이는 창과 별만 보이는 창의 환자들을 비교한 유명한 연구에 따르면, 나무와 풀을 본 환자들이 더 빨리 회복하고 통증도 덜 느꼈다고 한다 7).
이처럼 자연은 우리의 진화적 본능과 연결되어 무의식적, 즉각적인 치유효과를 준다는 점이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다.
인간이 자연환경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 것은, 진화적으로 자연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바이오필리아(Biophilia) 개념으로 설명된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도록 진화했다"라고 했다 8).
이 철학은 최근 건축, 도시, 실내 공간 디자인에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이라는 흐름으로 이어진다.
단순히 실내에 식물을 두거나 햇살을 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자연의 빛·형태·질감·소리 등 감각적 요소를 공간 전반에 통합하는 설계이다.
실제로 자연광이 풍부하고 식물이 있는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스트레스와 피로가 덜하고, 집중력과 창의성도 높다는 실험 결과가 많다 9) 10).
최근 신경건축학 연구에서는 '좋은 공간'의 조건을 뇌파(EEG), fMRI, 호르몬 반응 등으로 분석한다.
프랙털 패턴이나 곡선적 형태를 보는 것만으로도 뇌의 쾌락 중추가 활성화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이 감소한다 11).
숲이나 물이 보이는 풍경을 잠깐 보는 것만으로도 혈압과 맥박, 근육의 긴장도가 내려가고, 새소리·물소리 같은 자연음은 심장박동과 뇌파를 안정시킨다 12).
일상에서 이렇게 감각의 언어를 의식적으로 활용하면, 우리 몸은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고 회복의 리듬을 찾아간다.
공간의 치유력을 일시적인 기분전환을 넘어서, 스트레스를 견디고 다시 일어서는 힘(회복탄력성)과도 연결된다.
실제로 숲을 자주 찾고나, 집 안에서라도 자연 요소가 풍부한 공간에서 머무는 사람일수록 삶의 스트레스에 더 잘 대처한다는 연구가 있다 13).
병원이나 학교, 직장 등에서도 자유적 공간을 적극적으로 설계할수록 회복기간 단축, 학습효율 상승, 직무만족 등 장기적 효과가 나타난대 14).
우리가 대단한 명소나 리조트에 가지 않아도, 일상 속에서 '나만의 치유 공간'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햇살이 잘 드는 곳에 의자를 놓고, 창을 열어 바람을 들이고, 작은 식물이나 자연의 재질을 곁에 두어보자.
잔잔한 음악이나 자연의 소리를 틀어두고,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동네 공원에서 천천히 걷는 습관을 들여도 좋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 그 공간은 어느새 '내 안의 회복력'을 조용히 꺠워주는 위로의 장소가 된다.
하여 최근엔 공간을 디자인하거나 연구할 때, '어떻게 보일까'보다 '어떻게 느껴질까'를 먼저 생각한다.
공간은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삶 전체를 조율하는 가장 조용한 치유자이다.
바쁜 하루,
오늘도 당신이 머무는 공간이 말없는 위로가 되어주길 바란다.
Forestus 한 문장:
"공간은 말보다 먼저 반응하여, 감각으로 우리를 치유한다."
용어 해설
- 신경건축학 : 공간이 뇌, 감정,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신경과학+건축의 융합학문
- 주의회복이론(ART) : 자연환경이 뇌의 피로를 회복시킨다는 환경 심리학 이론
- 스트레스감소이론(SRT) : 자연환경이 빠르게 정서적 안정과 생리적 이완을 유도한다는 이론
- 바이오필리아 :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연을 사랑하도록 진화했다는 개념
- 바이오필릭 디자인 : 건축, 실내환경에 자연의 감각 요소를 통합하는 설계 철학
- 프랙털 패턴 : 나뭇잎, 구름 등 자연에서 반복되는 자기 유사적 패턴. 뇌를 안정시킴
참고 및 인용자료
1) Kaplan, R. & Kaplan, S. (1989). The Experience of Nature: A Psychological Perspective. Cambridge Univ. Press. (주의회복이론)
2) Ulrich, R.S. (1984). View Through a Window May Influence Recovery from Surgery. Science, 224(4647), 420-421. (스트레스감소이론)
3) Kellert, S. R., Heerwagen, J., & Mador, M. (2008). Biophilic Design. Wiley.Li, Q. (2010). Effect of forest bathing trips on human immune function. Environmental Health and Preventive Medicine, 15(1), 9-17.
4) Vartanian, O. et al. (2013). Impact of contour on aesthetic judgments and approach-avoidance decisions in architecture. PNAS, 110(Supplement_2), 10446-10453.
5) Lee, D. et al. (2021). Influence of Forest Visitors’ Perceived Restorativeness on Stress and Resilience. IJERPH, 18(12), 6328.
6) Gould van Praag, C. et al. (2017). Restoration and stress reduction through auditory nature experiences. Scientific Reports, 7, 40397.
7) Wilson, E.O. (1984). Biophilia. Harvard Univ. Press.
8) Van den Berg, A. et al. (2007). Healing nature: Effects of physical outdoor environments on stress. Advances in Psychology Research, 2, 1-33.
9) Joye, Y. & Van den Berg, A. (2011). Is love for green in our genes? Urban Forestry & Urban Greening, 10(4), 261-268.
10) Li, Q. (2010). Effect of forest bathing trips on human immune function. Environmental Health and Preventive Medicine, 15(1), 9-17.
11) Kellert, S. R., Heerwagen, J., & Mador, M. (2008). Biophilic Design. Wiley.
12) Lee, D. et al. (2021). Influence of Forest Visitors’ Perceived Restorativeness on Stress and Resilience. IJERPH, 18(12), 6328.
13) Ulrich, R.S. (1984). View Through a Window May Influence Recovery from Surgery. Science, 224(4647), 42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