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아산의 형사 강민성, 그 일상과 어둠
충청남도 아산시 외곽, 한적한 야산 자락에 자리 잡은 단독 주택. 잔디가 적당히 자란 마당 한편에는 작게 가꾼 텃밭이 고추와 상추 몇 포기로 조용했다. 미나와 호연이 무학산으로 떠난 지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집안에는 늘 조용하고 허전한 공기가 감돌았지만, 민성은 그 침묵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의 삶은 오직 두 가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나는 아산 경찰서 강력팀 형사로서의 주어진 임무. 다른 하나는 멀리 떨어진 무학산에서 자신들의 운명과 마주하고 있을 아이들의 안녕이었다.
민성은 매일 아침 동이 트기 전, 무학산 쪽 하늘을 향해 잠시 묵념하듯 서 있곤 했다. 딸의 기이한 병과 아들의 알 수 없는 힘을 눈앞에서 마주한 이후, 그의 세계관은 송두리째 뒤바뀌었다. 미나와 호연의 눈에서 이따금 섬광처럼 스치던 이질적인 기운, 할머니의 알 수 없는 이야기,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힘을 아이들이 습득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이제는 맹목적인 믿음과 함께 묵직한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본능적인 다짐이었다. 민성의 유일한 위안은 가끔 걸려오는 친할머니의 덤덤한 목소리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쨍한 목소리였다. "아빠, 우리 미나는 오늘 산 정상을 세 번이나 왕복했어요!", "아빠, 저 염동력으로 물방울도 띄울 수 있어요!" 그럴 때마다 민성은 아산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잠시나마 미소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1. 아산의 야산을 맴도는 기이한 속삭임
몇 주 전부터 아산 외곽의 야산과 주변 둘레길에서 등산객 실종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단순한 조난이나 실족으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강력팀 형사로서 민성에게 사건이 배당되었다. 민성은 현장을 답사할수록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실종자들의 마지막 흔적은 깊은 산속에서 마치 흔적도 없이 사라진 듯했다. 그들이 남긴 것은 가족들의 비통한 울부짖음과 함께, 사건을 담당한 민성의 심장을 옥죄어오는 기묘하고 일관된 단서들이었다.
사건의 단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실종자들의 핸드폰 위치 추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지점에서 경찰은 간혹 스마트폰을 찾아냈다. 문제는 그 스마트폰들이었다. 마지막 통화 기록이나 녹음 기능이 활성화된 채 발견된 폰에서 기묘한 음성 파일이 복구되곤 했다. 녹음된 음성은 주로 실종자들이 "아! 자기야, 거기서 뭐 해?"라거나, "엄마, 먼저 가 있어! 곧 따라갈게!"처럼 누군가와 대화하는 듯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녹음 파일 속 상대방의 목소리는, 이상하게도 통화자 자신의 목소리를 기묘하게 변조하여 되돌려주는 형태였다. 마치 메아리 같으면서도, 듣는 이의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드는 듯한 섬뜩한 변조음. 심지어 몇몇 파일에서는 실종자가 "어! 뭐야, 저 흰 거… 빛이… 너무 밝아…"라며 발광체를 목격한 듯한 마지막 대화가 남아 있었다. 동료 형사들은 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환각이나 최면으로 치부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민성의 뇌리에는 무학산에서의 기묘한 경험과 함께 할머니의 알 수 없는 경고가 떠올랐다.
그는 은밀히 지역 주민들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불길한 이야기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산에서 **'하얀 털을 가진 짐승'**이 출몰한다는 소문은 오래된 전설이 아니었다. 불과 몇 년 전부터,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사람이 없다는 괴담이 떠돌기 시작한 것이다. 소문은 점차 증폭되어, 이 산에 원래 살던 짐승이 아닌, 다른 곳에서 흘러들어 온 무언가가 사람을 홀리고 잡아먹는다는 내용으로 바뀌어 갔다. 민성의 머릿속에 '장산범'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이 산에 안착한 존재가 과거 부산 장산에서 출몰했던 그 괴물이라는 직감. 그의 직업적인 촉과 무학산에서의 경험, 그리고 이제 장산범 괴담까지 더해지자, 그의 의구심은 이제 확신으로 변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범죄 수사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의 고향인 아산에서, 그의 존재를 일깨우려는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12. 밤안개의 추적: 홀림의 숲으로
결국 민성은 경찰의 수색이 끝난 아산 외곽의 야산으로 다시 향했다. 이번에는 비공식적으로, 홀로. 강력팀 형사로서의 셔츠 대신, 검은색 등산복에 야간 투시경까지 갖춰 입었다. 깊은 밤, 짙은 밤안개가 산자락을 휘감으며 시야를 집어삼켰다. 안갯속을 뚫고 걷는 그의 발걸음은 묵직했다. 손전등 불빛은 고작 몇 걸음 앞을 비출 뿐, 주위는 온통 희뿌연 장막에 갇힌 듯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 속 깊이 파고들어 정신을 맑게 했다.
익숙한 둘레길을 벗어나, 인적이 드문 숲 속으로 발을 옮기던 그때였다.
"아빠… 무서워… 아빠…"
귀를 의심했다. 민성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의 머릿속에 첫 번째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환청인가?' 하지만 목소리는 너무나 또렷했다. 사랑하는 딸 미나의 목소리였다. 약하고, 두렵고, 도움을 청하는 그 목소리. 마치 과거 해묵리에서 미나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절규하던 그 애처로운 외침과 똑같았다. 민성의 이성은 '미나는 무학산에서 안전하게 수련 중이다'라고 외쳤지만, 그의 본능은 그 목소리에 강렬하게 반응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공포 속에서 그는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아빠! 여기예요! 아빠!"
이번에는 아들 호연의 목소리였다. 재기 발랄하지만 어딘가 겁에 질린 듯한, 그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목소리. 두 아이의 목소리가 숲속을 가득 메웠다. 교대로, 혹은 동시에, 때로는 민성의 귓가를 파고들었다가 때로는 멀리서 울리는 듯했다. 목소리는 점차 더 또렷하고 간절하게 들려왔다. 민성의 내면에 숨겨진 가장 큰 두려움과 책임감, 즉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던 아버지로서의 죄책감'을 교묘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이 무학산에 있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았지만, 그 목소리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절박했다. 민성은 홀린 듯 깊은 숲 속, 목소리가 이끄는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처럼, 그의 의지는 점차 미지의 존재의 교활한 속임수에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13. 뒤틀린 지문: 이성적 분석과 영적 각성
숲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민성의 주변은 점점 더 기묘한 기운으로 가득 찼다. 짙은 밤안개는 살아 움직이는 듯 민성을 에워쌌고, 나뭇가지들은 마치 손가락처럼 기괴하게 뻗어 나와 그의 길을 막아섰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이제 사방에서 들려오며 방향 감각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공포와 혼란이 그의 이성을 잠식하려 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민성은 강민성 형사였다. 수십 년간 수많은 범죄 현장에서 날카로운 직감과 냉철한 분석으로 진실을 파헤쳐 온 베테랑이었다. 그는 혼란 속에서도 이성적인 분석을 멈추지 않았다. '이상하다… 미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고, 호연이 목소리는 뭔가… 비어 있어.' 그는 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환청이 아니었다. 분명 어딘가 '뒤틀린' 부분이 있었다. 마치 완벽하게 복사했지만, 원본과는 미묘하게 다른 위조 지폐처럼.
그 순간, 민성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영적 지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할머니가 언급했던,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남기는 '흔적'에 대한 파편적인 지식들이었다. 할머니는 그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니여. 귀신도 발자국을 남기고, 요괴도 사념을 흘려 놓는 법이여. 그걸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통찰이지." 민성은 다시 한번 아이들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귀를 기울이는 대신, 온몸의 감각을 열어 목소리 너머의 **'사념의 파동'**을 느끼려 했다. 그리고 직감했다. 이 파동은 아이들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자리한 **'공포'나 '갈망'을 베이스로 교묘하게 변형된 '영적 지문'**임을. 그 미묘한 뒤틀림, 생생함 속에 느껴지는 기이한 냉기, 또는 슬픔 속에 감춰진 묘한 비웃음 같은 이질감이 민성만이 포착하는 것이었다. 그의 형사 시절 '범죄 심리 분석' 능력이 이 순간 **'영적 존재의 심리 및 의도 분석'**으로 확장되며, 그는 미지의 존재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도에 깔린 교활함과 악의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목소리에 홀리지 않고, 그 **'뒤틀린 영적 지문'**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실종자들이 어디로 끌려갔는지, 미지의 존재의 은신처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영적 기운이 왜곡된 특정 지점임을 알려주는 단서였다. 그의 이성적 추리 능력은 이제 '영적 데이터'를 분석하는 새로운 경지에 이른 것이었다.
14. 심연 속 육체의 포효: 본능이 깨어나다
민성은 '영적 지문'이 이끄는 대로 한 발자국씩 나아갔다. 발 밑은 진흙으로 질척였고, 굵은 나뭇가지들이 얼굴을 때렸다. 정신을 잠식하는 공포와 아이들을 향한 필사적인 갈망이 그를 채찍질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눈앞에 거대한 동굴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 안은 어둠으로 가득했고, 그곳에서 실종자들의 절규와 애원이 뒤섞인, 끔찍한 '영적 잔상'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이곳이 바로 미지의 존재의 은신처였다.
동굴 입구를 지나는 순간, 민성의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누군가의 손이 자신의 어깨를 꽉 움켜쥐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공포가 절정에 달했다. 그 순간, 번개처럼! 거대한 흰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것은 흡사 오랜 세월을 거치며 퇴색한 듯한 창백한 흰 털로 뒤덮여 있었다. 전체적으로 기다란 개나 여우를 연상시키는 형태였으나, 머리는 마치 수십 개의 날카로운 칼날이 돋아난 듯 뾰족하고 기괴했으며, 온몸의 마디마디는 꺾이고 비틀린 채 춤을 추는 듯했다. 등줄기에는 기다란 백색 갈기가 바싹 서 있었고, 무엇보다 눈은 세로로 길게 찢어진 동공을 번뜩이며 민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발톱은 마치 썩은 나무뿌리처럼 거칠고 검붉었으며, 곳곳에 들러붙은 말라붙은 핏자국이 섬뜩했다. 이빨은 면도칼처럼 날카로웠으며, 목울대에서는 사람이 아닌 기계적인 쇳소리 같은 으르렁거림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그가 상상했던 '짐승'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악몽에서 튀어나온 듯한 끔찍하고 거대한 괴이(怪異)한 존재, 바로 장산범이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목을 향해 찢어질 듯 날아들었다.
초인적인 반사신경. 민성의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경찰 훈련으로 다져진 육체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회복력, 스피드, 힘'을 발현하기 시작했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획 돌려 발톱을 피했고, 동시에 한 팔로 장산범의 몸통을 후려쳤다. 묵직한 타격감이 전해졌지만, 장산범은 민첩하게 자세를 고쳤다. 마치 흰색 섬광처럼 어둠 속을 가로지르며 그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었다. 민성 또한 밤눈이 밝아진 듯, 어둠 속에서도 장산범의 움직임을 포착하며 맹렬하게 추격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내 몸이 왜 이러지?' 그는 자신의 몸이 발휘하는 경이로운 능력에 당황했지만, 동시에 극한의 위협 앞에서 그것을 받아들였다.
험난한 동굴 지형을 전력으로 질주하는 과정에서 그의 신체는 한계를 넘어섰다. 폐는 터질 듯 아파왔고, 허벅지 근육은 찢어지는 듯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몸이 겪는 모든 고통은 평소보다 경이로운 속도로 회복되며, 민성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장산범을 추격했고, 갑작스런 낙석이 길을 막아서자, 그는 일반적인 사람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돌덩이를 초인적인 힘으로 밀쳐내며 길을 뚫었다.
격렬한 추격전 중, 동굴 깊숙한 곳의 낭떠러지 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민성의 발이 미끄러지며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떨어지는 찰나의 순간, 그의 몸에서 강력한 추진력이 솟구쳤고, 발가락 끝에 마치 '갈고리'라도 생긴 듯한 본능적인 힘이 솟아나 거친 바위벽을 움켜쥐었다. 그는 마치 한 마리의 야생 동물처럼 절벽을 기어올라 다시 안전한 곳에 착지했다. 이 모든 과정이 의식적인 것이 아니었다. 놀라운 민첩성과 균형 감각, 그리고 경이로운 회복력이 극한 상황에서 마치 스위치가 켜진 듯이 발현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이토록 완벽하고 강인하게 반응하는 것에 놀라움과 함께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15. 잊혀진 피의 부름: 본능의 포효
마침내 민성은 동굴의 가장 깊은 곳, 거대한 지하 공간에 다다랐다. 그곳에는 거대한 석실(石室)과 함께, 섬뜩하게 울려 퍼지는 장산범의 기계적인 울음소리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 한쪽에는 실종되었던 등산객들이 마치 생기 없는 인형처럼, 그러나 아직 온전한 형태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들은 차가운 돌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는데, 마치 장산범이 언젠가 먹을 식량을 비축해두려는 듯,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장산범은 백색의 털을 번뜩이며 민성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고, 민성의 몸에서 풍기는 **'이질적이고 매혹적인 피 냄새'**를 감지하고 강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크르르르…. 네 몸에 흐르는 그 피… 역겹고도 익숙하구나… 오래전 아산 이 땅에 살았던… 잊혀진 여우 부족의… 잔향이로구나…"
장산범의 울음소리가 기이하게 변형되어, 고대 언어처럼 들려왔다. 민성의 머릿속이 강렬하게 울렸다. '아산… 여우 부족… 잔향…' 그 순간, 장산범이 날카로운 발톱을 번뜩이며 민성에게 달려들었다. 피할 틈도 없이, 장산범의 발톱이 민성의 심장을 노렸다. 퍼억! 민성의 가슴에 충격이 가해졌고, 고통과 함께 그의 몸이 강하게 튕겨 나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는 거대한 석벽에 내동댕이쳐졌다.
그 순간이었다.
민성의 머릿속에 핏줄 속에 잠재되어 있던 '구미호 조상들의 단편적인 기억이나 감각'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고요한 밤 숲, 예민하게 움직이는 흰 꼬리의 형체들. 영적 존재를 감지하는 후각.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통찰력. 아산의 너른 평야와 야산 사이를 누비던 그들의 모습. 무심코 흘려들었던 아산 토박이 어르신들의 "이 동네 예전부터 여우가 많았어…"라는 이야기와 그의 부모님, 그리고 그의 친가 혈족에 대한 파편적인 기억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나는… 구미호의 피가 흐르는 존재'라는 직관적인 깨달음이 번개처럼 그의 의식을 관통했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그의 아버지로부터, 혹은 그 이전 세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핏줄의 흔적이었다. 그의 고향인 아산이 사실은 그 일족의 오랜 터전이었음을 그는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고통은 사라지고, 그의 몸은 이전에 느껴본 적 없는 강력한 에너지로 충전되는 듯했다. 깊게 패인 가슴의 상처가 눈 깜짝할 새 아물어가는 것을 느꼈다. 눈을 떴을 때, 그의 시야는 마치 고양이처럼 어둠 속에서도 모든 것을 선명하게 포착하고 있었다. 동굴의 희미한 불빛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그리고 이내 타오르는 듯한 붉은색으로 섬광처럼 번뜩였다. 그의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내재된 본능의 '위압감'**에 장산범은 일시적으로 경직되며 으르렁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민성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발걸음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바닥에 끌리던 발소리는 사라지고, 마치 그림자처럼 사뿐히 움직였다. 그의 온몸에 흐르는 강렬한 힘을 느끼며 그는 장산범을 향해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것은 이성이 아닌, 핏줄 깊숙이 새겨진 본능의 포효였다.
16. 폭발하는 본능: 장산범의 최후
민성은 장산범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했다.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장산범의 공격을 피하고, 맹수와 같은 힘으로 장산범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한때 장산범의 교활한 속임수에 농락당했던 그였지만, 이제 그는 장산범의 '영적 지문'과 공격 패턴을 완벽하게 읽어내며 대응했다. 강화된 오감은 장산범의 움직임을 예측하게 했고, 그의 눈은 핏발이 서거나 황금빛으로 번뜩이며 장산범을 압박했다. 장산범은 민성의 경이로운 변화에 당황한 듯했지만,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더욱 맹렬하게 공격했다. 섬뜩한 발톱이 허공을 갈랐고, 찢어질 듯한 기계음 울음소리가 동굴을 진동시켰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장산범이 민성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 온몸의 털을 바싹 세우고 달려들었다. 그 육중한 덩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속도는 짐승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었다. 날카로운 오른 앞다리가 거대한 낫처럼 민성의 심장을 향해 휘둘러졌다.
콰직! 민성은 본능적으로 달려드는 장산범의 할퀴는 오른 앞다리를 피하는 대신, 맨손으로 그대로 낚아챘다. 뼈와 살이 뒤엉킨 듯한 끔찍한 소리가 동굴에 메아리쳤다. 장산범은 비명 같은 기계음을 내뱉으며 몸부림쳤지만, 민성의 손아귀는 강철처럼 굳건했다. 민성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섬뜩한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발버둥 치는 장산범의 육중한 몸을 그대로 들어 올려, 바닥에 내리꽂듯 엎어 던졌다.
쿠우우우웅! 거대한 진동이 동굴을 흔들었다. 장산범의 육체가 석실 바닥에 박히듯 처참하게 내팽개쳐졌다. 미동도 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그 죽음과도 같은 충격 속에서 채 반발력으로 장산범이 몸을 일으키려는 찰나, 민성은 이미 그의 머리 위로 솟아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거대한 돌주먹이 되어 장산범의 머리통에 박혔다. 아니, 박혔다는 표현보다 '뚫어버리려 했다'는 표현이 훨씬 더 강렬하고 적합했다. 뼈가 부서지는 끔찍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장산범의 괴이한 머리통은 그 형태를 잃고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민성은 이미 쓰러져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장산범의 목을 왼발로 강하게 짓밟아 고정시키고, 오른발로 그의 머리통을 향해 전력을 다해 걷어찼다.
퍼억! 으스러억! 민성의 오른발에서 뿜어져 나온 파괴적인 힘은 장산범의 목뼈를 으스러뜨리는 것을 넘어, 머리와 몸을 그대로 분리시켜 버렸다. 단 3초도 채 걸리지 않은, 마치 한 폭의 잔혹한 수묵화처럼 빠르고 맹렬한 동작이었다. 그의 행동은 더 이상 이성이 아닌, 뼛속 깊이 박힌 야생의 본능, 즉 '피'의 부름에 의한 압도적인 살육이었다.
동굴 안은 피 냄새와 함께 섬뜩한 정적이 흘렀다.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민성은 천천히 장산범의 끔찍하게 으스러진 머리 쪽으로 걸어갔다. 축 늘어진 백색 털 아래, 튀어나온 뇌수가 엉망이 된 그로테스크한 머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끔찍한 목 부분에 자신의 오른손을 뻗어 흘러내리는 검붉은 피를 한 움큼 받아냈다.
그는 손에 받은 피를 말없이 혀로 맛보았다. 짜릿하고 매혹적인, 비릿하면서도 달콤한 철분 맛이 그의 온몸을 전율시켰다.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의 폭풍. 그것은 마치 오래도록 굶주렸던 존재가 마침내 자신의 본질을 되찾는 의식과도 같았다. 피 속에서 느껴지는 기이하고 뒤틀린 사념의 파동. 그는 그것이 장산범의 '영적 지문'이자, 실종된 사람들의 '영혼의 흔적'임을 직감했다.
쓰러진 장산범의 몸에서 기이하고 뒤틀린 영적 기운이 흩어져 나가자, 석실 안을 가득 채웠던 섬뜩한 잔상들도 희미해졌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실종되었던 등산객들은 그제야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듯 미약하게 몸을 꿈틀거렸다. 민성은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하는 그들을 잠시 내려다보았다.
17. 어둠 속 빛, 새로운 시작
민성은 정신이 혼미한 실종자들을 부축해 동굴 밖으로 인도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그들의 폐를 채우자, 홀렸던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그들의 눈빛에는 아직 공포와 혼란이 가득했지만, 생존 본능이 그들을 걷게 했다.
동굴 밖으로 나온 민성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의 몸은 온통 상처투성이였지만, 이미 대부분 아물어가고 있었다. 그의 눈은 아직도 어둠 속에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눈을 비볐다. 눈앞에 펼쳐진 아산의 야산 풍경은 예전과 달랐다. 나무 하나하나, 바위 하나하나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의 기운, 땅속을 흐르는 고대의 기운, 멀리 무학산 쪽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미나와 호연의 기운까지, 모든 것이 생생한 '영적 지문'처럼 그의 감각에 밀려왔다.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흐르는 피의 의미, 자신이 왜 그토록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방황했는지, 왜 아이들의 영적 능력이 그의 마음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그는 단순한 형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고향인 아산에서, 그리고 가족이라는 가장 소중한 존재들을 지키겠다는 굳건한 결의가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의 능력은 이성적인 '분석'을 기반으로 영적 현상을 '탐지'하고, 육체적인 '힘'으로 직접 '제압'하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무학산에 있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수화기 너머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지만 단단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그 목소리는 민성의 혼란스러운 마음에 깊은 위로가 되었다. "알 때가 되었겠지, 욘석아. 네 피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니, 단단히 각오하거라."
민성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그의 삶은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 대신, 자신과 가족의 운명에 맞서 싸울 새로운 각오와 결의가 어려 있었다. 아산의 야산은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품에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