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감이란 국어사전에서는 '일이 급하여 몹시 긴장된 느낌'이라고 한다.
절박하다를 찾아보니, '어떤 일이나 때가 가까이 닥쳐서 몹시 급하다'와 '인정이 없고 냉정하다'가 검색되며, 다른 뜻으로는 '끝을 막는다'도 있다.
네 번째 시험을 앞두고 사무관 승진 심사에서 합격자를 대상으로 인터뷰했다.
어떤 선배가 말했다.
"뭐니 뭐니 해도 절박감이 커야 한다."
그분도 내 처지와 비슷했다.
3진 아웃 이후 몇 년이 지나 다시 부여받은 마지막 네 번째 기회에서 승진자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오늘부터 딱 8일이 지나면 승진 심사가 있다.
그 후 2~3일 내로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수험자 모두는 절절한 절박감 속에서 어렵고 고단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수험 준비에 몰입해야 한다.
절박감, 네 번의 시험 또는 심사를 지나면서 나는 절박감을 어떻게 느꼈을까?
2013년 첫 시험은 필기였다.
1차 과목은 행정학, 행정법, 헌법 등 세 과목을 치르면서, 각 과목 40점 이상이면서 평균 60점이면 합격하는 절대평가였다.
2차 과목은 교육학이고, 교육학의 고득점자순으로 합격자를 정했다.
본청 여러 부서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낸 덕분에 경력에 비해
필기시험 기회를 다른 선후배보다 빠르게 부여받았다.
그러나 외벌이로서 두 자녀 양육이 우선이라는 생각 때문에,
나만을 위한 투자, 즉 막대한 비용을 학원에 내는 것이 너무나 아까웠다.
학원비, 교통비, 식대 등을 합치면 연간 1천만 원이 넘게 소요되기에
학원 등록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대학에서 교직을 이수했고,
2000년 전후로 방송통신대에서 교육학을 공부했기에,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빠르게 승진하겠다는 포부가 있었지만,
절박한 마음이 부족했다.
거의 2년을 독학으로 공부하며 첫 시험을 치렀으나,
결과는 역부족이다.
이듬해인 2014년 1월에 교육연수원으로 발령이 났고,
'잘 되었다. 다소 여유로운 곳에서 수험에 집중하자'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상황이 꼬였다.
우선, 직장 선배이자 가장 가까운 상급자인 총무부장의 협조가 없었다.
'사무실에 출근하여 공부하지 말라'는 엄명,
엉망진창인 사무실 분위기 등 이런저런 이유로 2차 공부를 제대로 못 했다.
거기다가 8월 초 발표한 서열명부에서도 문제가 터졌다.
다음 해 승진 시험 대상자에서 제외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2차 시험을 앞두었으면 대체로 승진 대상자에 포함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그래야 한다는 것은 법령이나 어떤 근거가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1년에 두 번 하는 근무평정 점수는 본청 인사팀 결재라인의 기호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날쭉 쪽에 들어가면서, 필기시험을 통한 승진 기회는 영영 날아가 버렸다.
다음 해부터는 역량 평가로 승진자를 선발한다고 예고된 상태였다.
연수원에서 계속 있다가는 승진 기회를 부여받기 어렵겠다는 조바심이 생겼다.
그래서 2015년 본청 전입 공모에 응시하여 교육청 근무를 자원했다.
언제 올지 모르지만, 역량평가 준비 차원에서 동기들과 공부 모임 활동을 시작한다.
뜻하지 않게 역량평가 기회는 빠르게 다가왔다.
다른 직원들이 꺼리는 학생 배치 업무를 수행한 이유였다.
학생 배치는 각종 민원과 직접 관련이 있고, 학생 수 예측 등 난해한 업무 처리 방식 등으로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필자는 1990년대 말부터 거의 10여 년에 걸쳐 학생 배치 업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었다.
공부 모임을 구성하자는 동기들에게 별 고민 없이 따라갔다.
수동적인 자세였다.
역량평가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관련 도서를 읽으면서 나름대로 준비했다.
평가 요소는 기획력, 집단토론, 근평, 다면 평가 등이다.
기획력은 자신감이 넘쳤다.
집단토론도 못 할 게 없다고 생각했고, 공부 모임과 독학으로 열심히 준비했다.
그러나 집단토론에서 내가 제시한 아이디어는 참가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에 따라서 발언 기회를 얻지 못했고, 유연한 대응도 안 되었다.
결과는 두 번째도 낙방이다.
반성을 크게 했다.
'수험 기간 내내 기분으로만 절박했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못한 결과다.'라고 스스로 정리했다.
그해 겨울, 강남의 스피치 학원을 찾았다.
승진 실패 원인을 집단토론 부족이라고 진단했고, 제대로 토론하지 못한 나를 변화시키고 싶었다.
적극적인 내 성격을 토론에서 구현해야만 승진할 수 있을 거라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200만 원 정도를 선납하면서 학원의 도움을 구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기획력과 집단토론 향상을 위해 스피치 학원과 두 개의 공부 모임에서 마음을 다했다.
주말이건 평일이건 신문 사설을 읽고, 녹음하고, 간추려 말하기 등 토론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
과외 선생님께서 이끄는 대로 매진했다.
두 개의 공부 모임 활동도 주도했다.
토론을 앞둔 새벽, 인천대 해변에서 일출을 보면서 승진할 준비가 되었다고 스스로 외쳤다.
그러나, 결과는 허망했다.
세 번의 승진 기회를 날린 패배자가 되고 말았다.
분명히 절박했고, 금전과 노력, 마음까지도 충분히 투입했다.
그럼에도 승진자 대열에 끼지 못했다.
그 절망감이란….
이후부터 5년 내내 좌절했다.
쓰라림, 패배감, 열등감 등으로 자신을 괴롭혔고,
술과 함께 몸과 마음이 쓰러지고 부서졌다.
며칠 전에는 공부 모임 멤버였던 동료들과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당시의 기억을 소환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불편했지만, 조용한 미소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승자, 나는 패자였기 때문이다.
그중 한 분은 토론 중 내가 짜증 냈던 이야기도 꺼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구성원 사이는 '경쟁자일 뿐'이라는 인식이 굳건했다.
그 생각이 너무 싫어서 화를 냈다.
어이없지만,
승자들은 '마음을 다해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라고만 기억한다.
시험을 마치고,
패자인 나에게는 밑도 끝도 없는 후회만 남았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부여된 네 번째 시험에서는 쓰라린 경험을 총망라했다.
절박감! 그 절박감은 이미 지나간 시간을 다시 깨웠다.
우선 공부 모임을 단출하게 구성했다.
구성원과 반드시 '함께 성공하자'라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두 번째는 돈이고 열정이고, 무엇이건 모든 것을 투입하고, 하고 싶은 것을 모조리 해보자는 것이다.
후회를 단 1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셋째는 스피치 학원과 공부 모임에서 배우고 익혔던 것들을 다시 복기함은 물론이고,
실적서와 면접에서 모든 경우의 수를 준비하여 최고의 답변을 하면서도, 집중력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마지막이라는 이유도 컸다.
온갖 고초를 마주하고 벼랑 끝에서 맞이한 절박감, 이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도 상기했다.
진정으로 절박하다면 선택에 주저하지 말고,
시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곧바로 실행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나는 시험 과정을 세 번이나 거치면서 매번 절박하다고 느꼈지만,
마지막 네 번째 시험에서의 절박감은
이전과는 차원이 완전히 달랐음을 최근에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