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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 Dec 11. 2023

브랜드의 이름 | Brand Name

기억의 시작

1997년 IMF 이후에 ‘브랜드’라는 말이 사람들 삶 전반으로 스며들어 일상의 언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브랜드가 무어냐는 질문에 답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아는 듯 하지만 정의하기 어려운 용어이다. 누군가 질문하면 결국 비교해서 설명할 수밖에 없다.

“마케팅과 브랜딩은 다릅니다.”

“마케팅은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면 시작이지만 브랜딩은 브랜드가 간판을 달면 그때부터 시작입니다.

마케팅은 수익에 무게를 두지만 브랜딩은 무형자산가치의 제고에 무게를 둡니다.”


간판 달면 시작되는 브랜드에 쌓여야 하는 것이 무형자산가치(사랑, 신뢰, 존경 등)이다 보니 무엇보다 중요한 건 브랜드의 이름이다. 이름은 존재의 시작이고 기표(記表)이며 무형자산가치를 담아둘 그릇이기 때문이다. 이름은 그 어원이 ’ 일ㅎ다’에서 파생된 ‘일흠’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그 의미가 ‘부르다’ 이니 이름은 부르기 위해서 만들어진 모양이다. 이름을 부르면 그 둘 사이에 변화가 일어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님 ‘꽃’ 중에서


어린 왕자와 꽃

브랜드가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면 그 이름은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불러 준 사람에게 의미가 되어 기억 일부가 되기 시작한다. 의식 혹은 무의식 속에 쌓인 기억들은 쉽게 고치거나 바뀌지 않는다. 이름과 더불어 정체성이 쌓여가기 때문이다. 그것이 긍정의 가치든 부정의 가치든 그 브랜드의 무형 자산이 되어간다. 


이름에 관해 남다른 생각을 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사물은 우리가 이름을 붙여 주고 그것을 인정해 줄 때만 존재한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것만의 고유한 성격을 부여하는 의식이고 사물은 우리가 그 이름을 불러 주고
알아줄 때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며, 따라서 우리의 관심을 받고 사랑의 의무를 일깨워 준다. 

필립스탁(Philippe Starck, 1949, 프랑스 디자이너)


필립스탁은 자신이 디자인 한 파리채(Dr.Skud)에 노섬브리아(Northumbrian | 고대 영어 4가지 방언 중 북부 지방에서 사용된 방언) 단어로 ‘때리다’를 의미하는 Skud와 박사를 의미하는 Dr. 를 붙여 친구 얼굴을 새겨 넣었다. 마치 그 이름의 주인인양 새겨진 얼굴은 파리채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문에 기대어 닫히지 않도록 하는 dede는 숲에서 사람을 지키는 정령의 이름을 갖고 있어 왠지 문에서 나를 지켜주는 것만 같다. 

친구, 수호천사 등 필립스탁은 사물에 사용하는 ‘누구’의 형상과 이름을 이용해 관계를 맺어주려는 의도를 갖는다. 구석에 놓여 먼지가 쌓여가는 ‘무엇’이 아니라 내 시야에 놓고 먼지를 털어주어야 하는 ‘누구’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털어주고 닦아주며 매만질수록 사람과 브랜드 사이엔 ‘애정’이 싹트게 될 것 아니겠는가.


좌 Dr.Skud  우 dede


‘기억’ 속에 브랜드의 이름은 친근함, 애정 등의 연결고리이며 그 이름 안에 긍정적, 부정적인 여러 가지 무형의 감정들을 담는 그릇이 된다. 이름에 연결된 혹은 담긴 이 무형의 것들은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브랜드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는 사람의 인식 속에서 브랜드에 대한 신뢰, 사랑, 존경을 만드는 재료임과 동시에 불신, 미움, 경멸을 만드는 원천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Oprah Gail Winfrey)는 이름에 담기는 가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프라 윈프리는 지역 뉴스 공동캐스터를 거쳐 시카고에서 낮은 시청률을 가진 아침 토크쇼 에이엠 시카고(AM Chicago) 진행자로 발탁된다. 그녀 특유의 카리스마와 타인에 대한 공감으로 토크쇼는 한 달 만에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다. 

잘 나가던 그녀는 이후 시련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의 가족 중 한 명이 타블로이드지(Tabloid)를 통해 그녀의 숨겨왔던 비밀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오프라는 더는 감추지 않고 자신의 토크쇼에서 대중들에게 모든 것을 밝힌다. 사생아로 태어나 친구나 친척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미혼모가 된 사연과 2주 만에 아이를 하늘로 보내며 충격을 받아 가출과 마약을 일삼았던 과거들… 그 모든 어둠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회적 맹비난이 쏟아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 사건에 반전이 일어난다. 그녀의 솔직한 고백에 사람들은 비난보다 지지로 답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그녀는 이 사건으로 많은 치유를 받았다. 이 경험을 토대로 오프라는 토크쇼 무대로 상처받은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리고 초대받은 이들은 오프라와 같이 많은 사람 앞에서 고백하며 치유되고, 이 모습을 보는 사람들도 공감하며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대단한 현상과 경험은 오프라피케이션(Oprahfication : 집단 치료의 하나로 대중들 앞에서 고백하며 치유되는 현상)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미국인들에게 ‘Oprah’라는 이름은 ‘truth’와 동일시된다고 한다. 오프라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며 모든 행동도 ‘진실’이다. 그래서 오프라가 추천하는 모든 것도 ‘진실’ 한 것들이 된다. 오프라가 추천하는 책엔 ‘OPRAH’S Book Club 마크가 인증처럼 인쇄되고 날개 돋친 듯 팔려가게 된다. 이름에 담긴 ‘무형자산가치’의 힘이다. 

책 만권을 소유하고 판매하는 사람은 최대 만권을 판매하면 그뿐이지만 ‘OPRAH’란 이름은 책의 권수도 제한이 없고 대상도 제한이 없다. 


유형자산가치는 유한하지만 
무형자산가치는 무한하다.



오프라 북클럽 로고와 오프라 북클럽 추천 서적


무한한 무형자산가치를 담는 것도 이름의 몫이며 이를 알리는 것도 이름의 몫이다. 이름은 그런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예전엔 이름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웃었다. 그런데 우습게 볼일이 아닌 듯하다.


이름도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 같다.




대중 가치 | public value

브랜드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위해 힘써왔다는 것은 브랜드의 이름에 남아있다. 흔히 명품이라 불리는 브랜드들은 창립자의 이름을 차용한다. 예를 들어 버버리, 루이뷔통, 에르메스 등이 그러하다. 잠깐 살펴보면 이들은 모두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성(姓)을 사용했다. 명은 개인의 이름이지만 성은 가문의 이름이다. 가문의 이름을 브랜드의 이름으로 한 것은 '가문의 이름'을 건다는 의미는 아닐까? 예로부터 성은 그 가문이 대대로 해온 일을 써온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Baker, Cook, Smith, Taylor 등이 있다. 성이 갖고 있는 이런 특성이 이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정리하면 가문의 이름을 걸고 대중에게 가치(public value)를 나누겠다는 것이 브랜드의 이름에 숨은 뜻으로 보인다. 한 사람의 개인보다 가문의 일족을 걸고 다른 이들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무겁지 않을까?

브랜드의 이름을 바라보고 있는 오랜 관점에는 '브랜드가 가져야 하는 책임감'도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 버버리가 고객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기 위한 카페의 이름은 '카페 토마스 | Thoma's'. 창립자의 이름 '토마스 버버리'에서 따온 이름이다. 흔히 개인적으로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성이 아닌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비추어 보면 버버리의 카페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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