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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 Dec 18. 2023

브랜드의 정신

무언가의 상징이 되려면…

단 두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한 줄의 문장. 이를 생각해 낸 건 왠지 돌발적이고 즉흥적이었던 듯하다.

‘다르게 생각하다 : Think Different’ 란 문장이 세상을 ‘다름’으로 만들 것이란 예상을 한 사람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비웃음을 샀을 수도 있을 터였다. 당시엔 감히 넘을 수도 없는 규모와 절대 무너뜨릴 수 없는 튼튼함을 가진 경쟁사 IBM이 ‘Think’라는 단어를 독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마흔둘의 잡스가 애플의 광고 카피로 생각해 낸 것은 크고 강한 상대에 대해 부리는 객기와 도전해보고자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렇게 시작한 광고 카피는 브랜드 콘셉트가 되고 브랜드 철학이 되어갔다.

문장은 정신이 되어 브랜드를 ‘다름’으로 이끌고 메시지가 되어 ‘다름’을 찾는 사람과 브랜드를 연결해 주었다.

그리고, Apple은 세상에 ‘다름’을 만들어낸다.


‘다른 생각’으로 ‘다름’을 만들어 낸 제품들


‘기억’이 되기 위한 브랜드의 이름엔 브랜드를 이끌어 갈 정신이 필요하다. 정신은 브랜드가 살아가는 동안 빛깔과 향기가 되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김춘수 님 ‘꽃’ 중에서


브랜드의 정신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 콘셉트, 철학, 핵심(에센스) 등….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브랜드의 기준과 방향을 만들어내는 단어들이다.

기준은 브랜드의 관점을 만들어 내고, 방향성은 브랜드가 행동하는 지침을 만들어 준다. 시간이 흐르며 브랜드는 점점 자신의 빛깔과 향기를 만들어가고 그 빛깔과 향기에 매료된 이들은 브랜드 곁으로 모이게 된다. 브랜드는 그들과 함께 주고받으며 운명을 만들어 간다.

생각이 바뀌면 언어가 바뀌고, 언어가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William James | 미국의 심리학자


브랜드의 정신은 기준과 방향성으로 브랜드를 점점 더 성장시키고 성숙시킨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본질은 유지한 채로 진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 스스로의 운명을 만들어갈 수 있는 원동력인 샘이다.

일본에서 어묵 만드는 기술을 익혀 온 삼진어묵 창업주 박재덕 씨는 봉래시장 입구에 판잣집을 빌려 손수 만든 어묵을 팔기 시작했다. 70년 된 노포(老鋪)의 시작이다.

“남는 게 없더라도 좋은 재료를 써야 한다 다 사람 묵는 거 아이가.”

모두가 어려운 시절 어묵을 찾아 가게에 오는 이들을 위해 재료를 아끼지 않았다. 창업주의 말은 70여 년을 흐르며 브랜드에 각인되었다. 좋지 않은 재료로 어묵을 만드는 이들이 넘쳐나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을 때 삼진어묵은 성장했고 창업주가 남긴 정신은 브랜드의 철학이 됐다. 삼진어묵의 철학은 품질을 만들고 세월을 입은 품질은 대고객 신뢰를 만들어 내며 브랜드는 더욱 성숙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관점에 도달한다.

훌륭한 재료로 만든 어묵은 ‘양질의 단백질’ 아니었던가? 어묵은 분명 훌륭한 음식이다. 밥을 대신하는 음식이자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빵이나 떡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음식이다.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 삼진어묵의 장인들의 창의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장인들은 ‘양질의 단백질’을 현대인의 입맛에 맞도록 새로운 상품들을 지속적으로 개발했다.

장인들의 오랜 연구와 노력 끝에 태어난 것이 ‘어묵 베이커리’이다. 삼진어묵 본점 1층을 ‘어묵 베이커리’로 만들었다.


삼진 베이커리 (출처) 삼진어묵 홈페이지


‘어묵 베이커리’를 대표하는 상품은 ‘어묵 크로켓’이다. ‘어묵 크로켓’는 출시되자마자 SNS를 뜨겁게 달구었고 이목을 집중시켰다. 어묵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바뀌고 어묵의 식문화를 새롭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브랜드가 진화한 것이다. 삼진어묵의 질적인 진화로 더 많은 사람들이 삼진어묵을 찾게 되었고, 그 결과는 매출로 이어졌다. ’ 어묵 베이커리’를 시작한 2013년 80여 억 원이던 매출은 2년 뒤 2017년엔 540억 원으로 증가하는 급격한 상승 곡선을 만들어 낸다. 이런 결과는 우연의 결과이거나 그럴듯하게 꾸며 판매만 촉진시킨 활동이 아니기에 2014년 230억 원, 2017년 540억 원, 2021년 790억 원으로 꾸준하게 떨어지지 않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출처 : 한국일보 "부산 어묵 '전국구' 끌어올린 1등 공신... 새로운 도전으로 도약 노려")


만드는 ‘재료’의 중요성을 알아낸 선대 창업주, 만드는 음식의 본질이 ‘양질의 단백질’이고 본질을 지키며 시대의 흐름에 맞도록 발상을 전환해 ‘어묵의 문화를 만든다’는 2대와 3대의 생각은 서로 이어져 65세의 삼진어묵은 왕성한 활동력으로 100세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기본 체력이 있고 항상 건전한 생각으로 건강하게 사는데 100세인 들 못살겠는가?

사례를 유심히 살피면 브랜드의 정신에는 분명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표현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곧 ‘가치’가 되고 브랜드는 세월을 거쳐 ‘가치’의 고유명사가 되고 아이콘이 되기 때문이다.

자주 바뀌지 않아야 한다. 하나의 메시지도 사람들에게 기억되는데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니 자주 바뀌는 메시지는 듣는 사람에게 더 많은 혼동을 주기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지키지 못할 정신을 말해서는 안 된다.
자칫 거짓말쟁이가 되거나 이중인격자가 될 수 있으니까.


만일 내가 가져야 할 정신과 신념을 상징하는 모자를 쓰고 산다면 ‘나’의 마음가짐은 어떨까? 실제로 그런 모자가 있었고 항상 쓰고 산 사람들이 있다. 익선관(翼蟬冠).


조선의 임금님들은 늘 매미 날개 형상의 익선관(翼蟬冠)을 썼다. 익선관은 한자대로 풀이하면 ‘매미 날개 모자’이다. 언뜻 보니 매미를 닮은 것도 같다.

매미 날개와 임금님은 어찌 보면 무게와 분위기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익선관은 임금이 백성을 다스릴 때 항상 매미의 오덕(五德)을 잊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집을 짓지 않는 검소함 (儉) , 맑은 이슬과 나무 진액만 먹는 맑음 (淸), 곡식을 해치지 않는 염치 (兼), 매미의 입이 선비 갓끈 같으니 항상 배우는 자세 (文), 때를 맞춰 죽는 신의 (信) 등이 오덕이라 한다. 임금님과 매미 날개 모자 사이엔 백성을 위해 꼭 갖추어야 할 정신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고조선부터 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 왕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익선관의 모습이 생각났던 것 같다. 적어도 나의 기억 속엔 왕 하면 상징처럼 떠올랐던 모양이다. 익선관이 담고 있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의 무게감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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