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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오 Jun 10. 2024

“컨버스는 ‘나’다.”

CONVERSE

오랜 세월 함께 한 브랜드는 삶 속에 스며들고 사람을 닮아간다. 브랜드는 사람의 일상에 귀 기울이고 행동을 관찰하며 우리 삶에 맞게 스스로를 변화한다. 핵심 가치는 유지하는 동시에 혁신이 쌓이면 한 시대를 품은 브랜드가 될 수 있다. 브랜드 창립자가 사라져도 브랜드는 세상에 남아서 신념과 철학을 전한다. 평소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필요할 때 소리 없이 나타나 시의적절한 가치가 여기 있노라며 작은 소리로 속닥인다.

1908년에 탄생한 컨버스는 누구나 미끄러지지 않는 고무신발로 시작했다. 스포츠를 위한 신발로 명성을 떨친 이 브랜드는 뮤지션, 영화주인공이 사랑했다. 여러 세대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의 소리 없는 요구를 꿋꿋이 받아들인 컨버스는 백십여 년 전 만들어진 신발 브랜드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항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변해 세상에

나온다.


한 가지 사고와 농구의 인연

신발 공장 관리인으로 근무하던 마키스 밀스 컨버스 Marquis Mills Converse는 계단을 내려오다 미끄러져 자신이 아끼던 당나귀와 함께 다쳤다. 이 순간, 컨버스는 미끄러지지 않는 신발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진다. 그는 1890년 파이크라는 동업자와 고무장화를 판매하는 도매업을 기반으로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891년 운명처럼 컨버스의 신발 사업과 함께 할 기막힌 운동 경기가 탄생한다. 캔자스에서 체육교사를 하던 제임스 네이스미스 James Naismith가 만든 이 운동은 벽에 복숭아 바구니를 못으로 고정하고 그 안에 축구공을 넣는 경기였다. 바구니에 공을 넣는 이 경기의 이름은 농구 Basket ball 라 불린다. 이후 1904년 제3회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 미국 선수들이 시범 농구경기를 선보였고,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명실상부한 정식 운동 종목으로 거듭났다.

한편 신발 도소매 사업을 하던 마키스 컨버스는 동업자와 결별해 신발 도매 사업을 접고, 1908년 매사추세츠주 몰든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컨버스 M.M.CONVERSE 고무신발 제작 공장을 설립했다. 1917년 컨버스는 넌스키드Non-skid라는 컨버스 최초의 농구화를 만든다. 넌 스키드는 가죽 신발 종류 중 발모랄 bals 와 블루처 blucher의 특성 및 형태를 차용해 발등을 끈으로 묶는 형태의 신발이다. 신발 외부는 캔버스 천을 사용하고 밑창은 고무로 만들어진 최초의 농구화였다. 컨버스의 농구화는 선수의 경기력을 향상했다. 사람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고무로 밑창을 만든 컨버스는 격한 농구경기 중에도 선수들을 부상으로부터 보호했다. 그 핵심가치는 농구의 인기와 맥락을 나누며 브랜드는 성장했다. 여전히 넌 스키드는 올스타 All-star로 이름만 바꾸었을 뿐, 초기와 유사한 모습으로 명성을 이어간다.

새미 프로 농구 선수였던 척 테일러 Chuck Taylor는 1921년 올스타를 신은 아픈 다리를 안고 마키스 컨버스를 찾아왔다. 그리고 농구를 할 때 올스타가 얼마나 불편한지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했다. 컨버스는 그를 단번에 채용한다. 본래 자신이 겪었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처럼 컨버스는 누군가의 불편에 귀 기울이고 제품을 개선했다.

척 테일러는 영업사원이자 홍보 대사로 임명된다. 그리고 미국 전역을 돌며 선수들의 의견을 듣고, 현장의 개선점을 All-star에 반영했다. 척 테일러는 엔지니어적인 관점에서 컨버스를 디자인했고 ‘선수를 위한 신발’로 컨버스와 농구를 결속시켰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컨버스 하면 농구’를 떠올린다.

컨버스, 운동화가 되다.

1970년 컨버스가 배드민턴화 브랜드 잭 퍼셀을 인수하면서 컨버스 잭 퍼셀이 탄생한다. 1935년 세계적인 프로 배드민턴 챔피언 잭 퍼셀 John Edward Jack Purcell은 자신의 이름을 따 배드민턴화를 론칭한다. 내구성 강한 잭 퍼셀의 신발은 순발력이 필요한 코트에서 선수가 자유자재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역동적인 선수들의 움직임에 매료된 사람들은 잭 퍼셀의 신발을 찾았다. 잭 퍼셀 신발의 상징은 신발 코의 웃는 모습 스마일 토 Smile Toe이다. 제임스 딘, 비틀스와 같은 시대의 아이콘들이 잭 퍼셀을 신었다. 이 상징은 할리우드의 젊고 부유한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잭 퍼셀의 경험을 바탕으로 배드민턴 경기를 위해 만든 신발은 모두가 갖고 싶은 신발이 되었다.

잭 퍼셀을 품에 안으며 컨버스는 운동화로서 명성을 더했고 생활 속 운동화로 자리매김한다. 1980년대 초, 업계 최초로 생체 역학 연구실을 만든 컨버스는 하이텍 쿠셔닝 Hi tec cushioning 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걷고 뛰고 역동적으로 움직여도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컨버스의 노력은 그 시대에 조깅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36년 베를린 하계 올림픽에서 미국 선수들이 빨간색과 파란색 줄무늬가 있는 하얀색 올스타를 착용하고 시상대 위로 올라갔다. 감동으로 가슴이 벅찬 사람들의 눈에 비친 새하얀 컨버스는 단연 돋보였다. 그 장면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고 많은 사람들이 하얀색 올스타를 신기 시작했다. 하얀색 올스타는 신자마자 때가 묻고 더러워졌으며 쉽게 찢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모습 그대로 즐겼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신발에 낙서나 그림을 그려 넣었다. 모든 사람을 위한 신발이 나만의 신발이 되는 순간이다.


모두의 사랑을 받는 신발

컨버스는 앨비스 프레슬리, 커트 코베인 등 뮤지션과 영화 주인공들이 애용한 신발로 알려졌다. 뮤지션과 영화 주인공은 컨버스 안에 자신의 흔적들을 가득 채워 넣는다. 내키는 대로 구겨 신어 접힌 캔버스 천과 하얀 고무 밑창에 보이는 거침없는 자국들은 그들의 활기를 전한다. 컨버스에 기록된 삶의 모습은 자유와 평안, 열정 그 자체다. 컨버스를 신는 사람은 자유롭고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 신발은 1960년대 평화를 갈망하며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히피들이 애용했고 1970년대 펑크룩의 반권위적, 반항적인 패션이 사랑했다. 캔버스 열풍은 1980년대 지저분하게 보이는 그런지룩으로 이어졌고, 결국 문화를 주도하는 젊은 세대가 자신을 표현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2003년 나이키는 컨버스를 인수한다. 글로벌 브랜드 컨버스는 생활 속에서 즐겨 신는 신발을 지향하며 전보다 더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한다. 모델별로 다채로운 색상이 추가됐고 타 브랜드와 콜라보를 통해 새로움을 더한 멋진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콜라보 등으로 변화하는 컨버스 정체성은 신발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사람들은 하얀 캔버스 천에 때가 묻어도, 심지어 천이 찢어져도 속상해하지 않는다. 이 신발은 ‘나’를, 그리고 ‘나의 삶’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컨버스는 일상을 기록한다. 힘든 순간의 우울함과 상처마저 담고 있는 신발. 컨버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고난을 딛고 일어선 훈장으로 이 신발을 신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컨버스를 신으며 마음속으로 되뇐다. 이 컨버스는 ‘나’다.


모든 사람을 위한 브랜드가

나만의 의미가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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