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뒹구는 곳은 눈밭일까 사랑일까
계절이 확연히 바뀔 때는 프로필 사진이나 배경화면을 바꾼다. 여름에는 지나치게 체중이 느는 것을 막아보고자 지향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화면으로 설정하거나 녹음이 푸른 풍경으로 핸드폰을 채웠는데, 며칠 새 급격히 추워진 날씨를 체감하니 변화의 시기가 도래했음을 눈치챘다. 겨울 분위기가 흠뻑 묻어나는 사진을 고르면 되겠거니 했지만, 비율이 알맞고 해상도가 흐리지 않으며, 나의 마음에도 꼭 드는 것을 고르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Pinterest에서 내려받은 사진은 하나씩 앨범에 쌓여갔는데, 나중에 그것들을 한데 모아보니 어쩌면 전부 연인들을 담은 것들이었다. 그들 중 최종적으로 마음에 꼭 든 것은 하얀 눈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뛰어노는 연인의 모습.
겨울이 오면 왠지 자신이 없다. 여름의 에어컨 바람으로도 으슬으슬한, 애초부터 손발이 차고 추위를 많이 타게 되는 나에게 겨울은 두려울 정도로 추운 계절이기 때문이다. 작년쯤부터 눈 내리는 것을 조금씩 좋아하게 되었지만, 아직은 바라보는 것으로만 만족하는 정도이고 눈싸움이나 눈사람 만들기를 위해서는 덧대어 입는 옷차림처럼 단단한 마음의 중무장이 필요한 수준이다. 그런데 눈밭에서 팔을 활짝 벌린 채 엉켜 있는 이름 모를 연인의 사진을 보았을 때, 그들의 행복함이 나한테까지 전해진 것처럼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뜨거운 햇살과 초록의 생기로 열기 넘치던 여름에는 누군가의 빈자리가 그리 느껴지지 않았지만, 겨울은 조금 달랐다. 늘 추위가 힘에 부쳤던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몇 도의 따뜻함이 더 필요했다. 심지어 최근의 겨울은 점점 더 얼어붙는 추세였다. 그런데도 눈밭을 뒹구는 사진 속 그들이 좋아 보였는데, 아마 그들도 추위를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거다. 동그란 코끝과 양 볼이 발그레할 때까지 뛰어놀 수 있는 건 바로 사랑의 힘이지 않았을까 싶다. 고작 사진 한 장에 너무 많은 의미를 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서로의 목도리를 빈틈없이 매어주고, 몸을 녹이려 포장마차에서 어묵 국물을 나눠 마시고, 꽁꽁 언 서로의 손에 자신의 입김을 불어주는 것. 혹독한 겨울 추위에 진절머리내면서도 또 눈이 내리는 날엔 다시 손을 잡고 문밖으로 나설 마음을 먹게 하는 것이 사랑의 장면이지 않을까.
눈을 좋아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서 삿포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로망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꼭 한 번은 펑펑 내리는 눈을 우산 속에 숨지 않고 맞고 싶었는데, ‘눈과 얼음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삿포로가 제격일 것 같았다. 물론 혼자 갈 생각은 없고, 둘이 되었을 때 말이다. 오타루의 새하얀 설원에서 우리의 발자국을 남기고, 동그랗게 눈을 뭉쳐 던지다가 힘이 빠졌을 때 그대로 눈 위에 드러눕기. 청명한 하늘을 바라보다 벌떡 일어나서 영화 러브레터의 명장면 ‘오겡끼데스까’를 냅다 흉내 내고, 마지막에는 너를 닮은 눈사람 하나, 나를 닮은 눈사람 하나를 사이좋게 만들기. 그리고 빨개진 귀와 따가워진 손을 비비며 갓 나온 수프 카레를 후루룩 떠먹기. 기미가 없는 일에까지 상상이 넘치는 나는 벌써 계획을 다 세웠다. 다시 한번 미소가 스민다.
부쩍 기온이 떨어지더니 어제가 입동이었다고 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정말로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다행인 건 미리 목도리와 장갑, 핫팩을 구비해 놓았다. 무사히 겨울을 보내기 위한 나만의 준비를,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곧 칼바람은 불겠지만, 혹시 모르게 더해질 온기를 기대하며, 맞잡게 될 손을 기대하며 겨울을 기다린다. 나는 과연 삿포로에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