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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꿈의 숲 25화

25화 신전의 온천수

치유, 청소의 시간!

by 우산을 쓴 소녀
글, 그림: 우산을 쓴 소녀

25화 신전의 온천수

-치유, 청소 시간!-

등장인물: 루미나, 카일라, 에드, 소피아


숲 속의 싱그러운 풀, 나무들과 꽃들의 향기가 그들을 이끈 곳은 웅장한 신전 앞이었다.


과거 그리스 신들이 살았을 법한 거대한 신전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그 웅장함에 넋을 놓고 말았다.


"와~ 이거, 어마 어마하네. 카일라 이리 좀 와봐! 이곳은 욕실이었던 것 같아. "


"욕실이었건, 아니건 이곳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은 곳처럼 보여요. 저기 봐요! 온 사방이 덩굴로 뒤덮여있고, 또 욕조들에는 이끼가 잔뜩 있어!"


"와!! 이것 봐!!! 온천수야!! 보라고, 카일라. 이리 와봐. "


"에드, 나 지금 피곤해. 당장 쉬지 않으면, 얼굴이 쪼글쪼글해질 것 같단 말이야. 이 눈 밑 좀봐. "


"그럼 일단 쉴만한 곳을 다 같이 찾아봐요. 카일라, 정말 얼굴이 말이 아니네, 내가 다 안쓰럽다니깐..."


"에드, 난 신전을 좀 둘러보고 있을게. 쉴만한 곳이 있나 찾아보려고. 소피아 같이 갈래요?"


“네.”


소피아와 카일라는 신전 내부를 살펴보며, 휴식하기에 적당한 곳들을 찾아 나섰다.


1층이 그리스 신전 같았던 것과 달리, 2층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로크 건축물을 연상케 했다.


“소피아! 어머머. 너무 좋아요! 딱 내가 원하던 스타일이야!”


카일라는 호화로운 바로크 건축물과 사랑에 빠진 듯 벽에 볼을 비비며 말했다. 하지만 지친 기색의 소피아의 눈에는 어떠한 흥미로움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에드와 루미나만 남은 1층, 욕실의 상태를 본 두 사람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드, 꼭 청소를 해야 해요? 여기서 오래 있으려고요?”


"아, 네네. 카일라는 여행지를 금방 떠나지 않아요. 한 곳에 머물며 충분히 즐기다가, 그곳이 익숙해질 때쯤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편이죠."


“그럼 가시는 곳마다 욕실청소를 해야겠네요...?”


"아뇨, 욕실 청소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전에 머물렀던 곳들은 모두 깨끗했고, 커다란 정원이 있는 주택에서도 며칠 지냈었거든요. 루미나는요?"


“욕실, 있었죠. 누군가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자연 속 따뜻한 나무 욕조...”


“오~! 누군지는 몰라도 준비까지 해주다니! 나처럼 센스 넘치는 사람이었나 보네요.”


“아, 네...”


에드와 루미나는 욕조에 붙은 이끼를 제거하려 주위를 살폈다. 때마침 누군가 미리 준비해 둔 듯, 한쪽 벽 끝에 나무 바구니와 청소 도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에드는 막혀있던 온천수의 수로를 열었고, 밖에서 폭포수처럼 흐르던 물은 곧 커다랗고 네모난 돌로 만들어진 욕조로 흘러들어 가기 시작했다. 욕조의 배수구는 막지 않으면 물이 그대로 흘러가는 구조였다.


루미나는 따뜻한 온천물을 이용해 각종 먼지와 이끼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꿈의 숲에서 겪은 혼란을 잊으려는 듯, 루미나는 땀을 흘리며 청소에 온 힘을 쏟았다.


“루미나, 살살해요. 청소하다가 쓰러질 것처럼...”


"나중에 이곳을 지나갈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깨끗이 청소해야죠. 아, 그리고 저 밖에 있는 넓은 온천탕도 청소하고 올게요."


"거기까지요? 우린 그곳을 사용하지 않을 텐데요..."


"온천수를 흘려보내면, 누구든 지나가면서 이곳이 쉴 곳이란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뭐, 샘도 지날 수도 있고, 또 그 친구들도..."


"루미나는 여정 중에 친구를 많이 만들었나 봐요. 우리도 간혹 사람들과 함께 하기는 했지만, 친구까지는..."


"꼭 친구는 아니에요. 그저 남겨두고 온 것 같은 느낌이 자꾸만 들어서요..."


에드는 시무룩해진 루미나의 표정을 바라보며, 이해한다는 듯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밤이 되도록 이어진 청소 덕분에, 신전의 온천수가 흐르는 수로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신전 앞 커다란 욕조에도 폭포수를 통해 흘러내리는 온천물이 어느새 가득 찼다.


방에서 잠시 쉬고 나온 카일라는 그 광경을 보고 두 손을 번쩍 들며 환호성을 질렀다.


"꺅! 에드, 이리 와봐! "

신이 난 카일라는 에드에게 연신 키스를 퍼부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에드, 루미나. 고마워요. 나도 도왔어야 했는데, 나이가 들면 이런 것도 저런 것도 다 귀찮고, 이번에는 유난히 힘든 여정이었어요. "


"아니요, 다음 사람들을 위해서 제가 그냥 청소한 것뿐이에요. 모두를 위해서죠. 그래서, 지금은 좀 개운해지셨어요?"


"잠깐 쉬고 나니까 괜찮은 듯해요. 고마워요. 그나저나 소피아는 아직도 꿈나라인가? "


“제가 가볼게요.”

루미나는 소피아를 데리러 2층 계단을 올랐다.


2층의 화려한 경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평소처럼 방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복도 끝에서 또 다른 계단을 발견하고 오르자, 신전과 비슷한 구조의 공간이 하나 더 나타났다.


루미나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2층의 화사한 분위기와 달리, 그곳은 단정하고 신성한 느낌의 방들이 줄지어 있었다. 루미나는 복도 중간쯤의 방으로 들어갔다. 한밤중이었지만, 위아래 층에서 새어 나오는 밝은 조명 덕에 방 안은 마치 은은한 수면등을 켠 듯 아늑했다.


그녀가 들어간 방에는 모든 것이 돌로 만들어져 있었고, 돌침대 위에는 누군가 깔아놓은 부드러운 양털이 놓여 있었다. 오래된 양털에서는 구수한 누룽지 향이 났다. 루미나는 부드러운 감촉을 손으로 느껴보다, 돌로 만들어진 테라스로 걸어 나갔다. 그녀의 시선은 한동안 야외 온천탕에 머물렀다.


“루미나!! 어디 있 어요!!”

루미나를 찾는 카일라의 목소리가 3층 계단 쪽에서부터 크게 울려 퍼졌다


“내려갈게요!”

루미나가 화려한 2층 복도로 내려오자, 카일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루미나 이렇게 멋진 곳을 두고, 왜 어두침침한 곳으로 가요?”


"네? 아니, 그러니까... 1층은 신전, 2층은 바로크 건물, 3층은 다시 신전인 것 같아요. 4층을 살짝 봤는데, 거긴 다시 화려한 건물이었어요."


"루미나는 호기심이 많아서 계속 위험한 길로 가는 거예요."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운명에 이끌린다고 생각해요. 저도 카일라나 에드처럼 꽃 길만 걷고 싶다고요."


"루미나... 또 내가 말을 잘못했죠? 알잖아요, 나쁘게 말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아니겠죠..."


"기분 좀 풀어요. 우리 여자들끼리 온천해요! 에드는 밖에서 큰 욕조를 쓰겠다고 하네요. 살짝 부럽긴 하지만, 호호호. 신전 안에서 우리끼리 수다도 떨고 편하게 쉬자고요."


“그런데 소피아는 어디 있죠? 아이 때문에 온천할 기분이 아니실 것 같은데.”


“소피아요? 에이, 벌써 다 구워삶아서 온천에 푹 담가 놨어요. 에드도 밖에서 온천 즐기고 있고요. 우리도 얼른 가요!"

카일라는 루미나의 양 어깨를 살짝 밀며 1층 욕실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소피아가 얌전히 앉아 고개를 떨군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따뜻한 온천수에 몸을 담그자, 그녀들은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모두 씻겨 내려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야~ 정말 좋다! 온천이라니~ 외부 세계로 나가면 친구들에게 꼭 알려주려고요. 나 이런 것도 해봤다~ 하면서. 호호호."


"소피아, 좀 괜찮아요? 힘내려고 온천하는 건데 힘들면 올라가서 쉬는 게 좋지 않겠어요?"

루미나는 꾸벅꾸벅 졸다 못해 곧 쓰러질 듯한 소피아를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아요. 저, 실례가 안 된다면 우리 아이는 언제쯤 찾으러 갈 수 있을까요?”


소피아의 말에 카일라는 몸을 뒤로 기댄 채 천장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오늘 밤은 그냥 가만히 쉬어요. 이렇게... 릴랙스하자고요. 아이, 그렇잖아요. 누가 발견하면 도와줄 거예요. 너무 다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여긴 꿈의 숲이니까요. 이렇게... 꽃길뿐인..."


루미나는 그녀의 말에 실망감을 드러내며 시선을 홱 돌리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들 피곤하고 쉬고 싶다는 건 알지만..."

루미나는 소피아 옆으로 다가가 눈빛을 주고받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욕조에서 나온 루미나와 소피아는 카일라를 남겨둔 채 할 이야기가 있다며 3층 방으로 향했다. 소피아는 3층 방이 신기한지 연신 두리번거렸다. 루미나는 그런 그녀를 자신이 묵을 방으로 안내했다.


“꼭 4단 샌드위치처럼, 4층은 다시 화려한 건축물로 되어있어요. 신기하죠?”

루미나는 긴장한 소피아를 안심시키려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말을 돌렸다.


“그렇네요. 4층도 한 번 올라가 보고 싶네요.”


“카일라 부부는 2층, 저는 3층, 소피아는 4층을 통째로 쓰면 되겠네요. 오늘은...”


“그래도 될까요?”


“그건 소피아 마음이에요. 이곳에서는...”


“그런데 우리 아이는 언제 찾을 수 있을까요?”


"많이 걱정되죠? 저도 찾아야 할 사람이 있어서 그 마음 잘 알아요."


"루미나도 친구를 찾고 있다고 했었죠? 샘이라는 이름이었나요?"


"네. 아, 맞다! 소피아의 아이는 이름이 뭐예요?"

"테오! 작고 귀여운 우리 아기. 아가 아빠는 외국 사람이에요. 그래서 우리 테오는 노란 금발 머리죠. 남편은 너무 바쁘고, 그곳에서 외롭게 지내는 게 힘들어서 지금은 아이와 한국에서 지내요. "


"테오, 기억나죠. 눈이 참 예쁘더라고요. 에메랄 듯 빛 바다를 보는 줄 알았어요. "


"우리 테오 얼굴, 기억해?"


"그럼요. 다른 분들은 자세히 못 봤지만, 왠지 소피아와 테오는 기억에 남더라고요."


"그랬군요. "


"그런데 아이는 언제 잃어버리신 거예요? "


"몇 밤이나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말 하면 카일라 부부가 싫어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들을 만나고 나서도 꽤 시간이 흘렀어요. 카일라가 마음에 드는 곳에선 오래 머무는 걸 좋아했거든요. 에드는 제 눈치를 보긴 했지만... 이동 중에 숲 속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며 찾아다닌 게 다예요."


"아무래도 아이니까, 여러 세계가 공존하는 꿈의 숲을 어른의 시각으로 탐험하진 않을 거예요. 숲 속 어딘가에 있거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이동산 같은 곳에 있을지도 몰라요. 그런 곳이 있다면요."


"루미나, 부탁이에요. 저와 같이 좀 찾아줘요. 저 사람들은 여기서 또 한참 머물다 갈지도 몰라요."


"저는 하루빨리 이동하는 게 좋기는 하지만..."


그녀들은 은은한 불빛이 퍼지는 방 안에서 테오를 찾을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밤이 깊어서야 각자의 침실로 돌아가 잠에 들었다.


짹짹—


루미나의 테라스로 참새 두 마리가 날아와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깬 루미나는 테라스로 다가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온천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지나던 꿈의 숲 여행자들이 어디선가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온천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신전은 마치 여행자들의 짧은 휴식처처럼 이용되었다. 낮과 밤이 세 번 바뀐 어느 날, 소피아가 루미나에게 급히 달려와 애원하기 시작했다.


"루미나, 카일라가 가지 않겠다고 해요. 여기서 지내니 피부가 점점 젊어지는 것 같다면서 이상한 소리를 하네요. 어떡하죠?"


신전의 온천수는 신비롭게도 피로를 풀어줄 뿐 아니라, 상처와 노화된 세포까지 재생시키고 있었다.


카일라는 점점 부드러워지는 자신의 살결에 푹 빠져버렸다. 아이를 찾아주겠다는 약속은 이제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했다.


"여기 머물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좋아진 걸 느껴요. 피부는 말할 것도 없고, 여행하며 생긴 자잘한 상처들도 깨끗이 사라졌어요."


“그러면, 루미나도 계속 머물 건가요? 얼마나 더 기다리면 될까요? 제가 눈치 없이 보채서 죄송해요. 하지만, 계속 어딘가 헤매고 있을 아이가 눈에 밟혀요.”


“지금 가죠 뭐.”


“정말요? 지금이요?”


“따로 준비할 건 없으니까, 바로 출발하죠.”

루미나는 에드와 카일라 부부와 인사하는 것도 잊은 채 길을 나섰다.


소피아 역시 다급하게 그녀의 뒤를 따르느라 카일라와 작별 인사하는 것을 잊은 듯했다.


신전 밖으로 나와 숲길을 걷던 중, 그녀들은 멀리 달팽이 모양의 작은 버스를 발견했다. 숲 사이에 서너 대가 나란히 주차된 기묘한 광경에 루미나와 소피아는 서로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소피아, 하늘이 돕는데요? 테오를 찾으라고 여기 두었나 보네요.”


“고마워요. 약속 지켜줘서.”


“당장 출발했어야 했는데, 저도 이곳 신전의 온천수가 꽤 흥미로워서 잠시 머뭇거렸네요.”


“괜찮아요. 모두가 휴식이 필요한 시기였으니까.”


“운전은 제가 할게요. “

루미나는 직접 운전대를 잡고 숲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달팽이 버스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속도로 나아갔다. 걷기보다는 훨씬 수월하고 자전거보다는 여유로운 속도였다.


두 사람의 새로운 여정이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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