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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초록하게 거기서 모해?"

신기한 식물일기(2)

by going solo

‘신기한 식물일기’를 읽고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글/레나 안데르손 그림/ 김석희 옮김,

미래사, 2000. 12. 30.





“나도 아보카도 씨앗을 심어 봤다!”

-잘 익은 아보카도의 씨를 빼냅니다. 과일이 익는 동안 씨도 다음 세대에서 좋은 아보카도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합니다. 그러니 잘 익은 것일수록 좋습니다.


-씨를 따뜻한 물에 살짝 씻어 하루 이틀 상온에 둡니다. 표면의 수분이 마르고 갈색의 얇은 막이 벗겨집니다.


-부엽토에 모래흙을 조금 섞어 배수가 잘 되도록 합니다. 물에 흠뻑 적셔 축축한 상태의 흙에 아보카도 씨를 뾰족한 부분이 바깥으로 조금 보일 정도의 깊이로 심습니다.


-동글동글 구멍이 뚫린 투명비닐을 씌워주고 흙이 마르지 않도록 합니다. 싹이 나기 전에는 물을 너무 자주 주면 안 됩니다. 흙에 습기가 유지될 정도로만 줍니다.


-오래오래 기다려야 싹이 나옵니다. 얘가 살아 있기는 한 거야? 무려 38일 되던 날 좁쌀만 한 싹이 처음으로 보였습니다. 와우! 그러면 흙으로 씨앗을 살짝 덮어 줍니다.


-온도와 습도를 높게 유지할 수 있게 계속 비닐을 씌운 상태로 발코니에서 될수록 햇빛을 많이 받게 해 줍니다.


-진짜 나옵니다. 초록빛 초본의 가지가 자라며 아랫부분은 목본으로 변합니다. 잎이 10장쯤 달리고 키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 20㎝쯤 길이로 가지를 싹둑 잘라 줍니다. 아쉽지만 며칠 기다리면 잘린 곳에서 두 개의 새 가지가 나옵니다. 더 튼튼해지고 전처럼 꽃보다 예쁜 잎사귀도 달립니다.


-현재는 40㎝ 정도의 키에 길쭉한 잎사귀가 꽤나 무성하게 달려 있고요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열매도 열리지 않았고요. 그런데 고 작고 매끈한 것에서 진짜 아보카도 나무가 나옵니다.


아보카도 씨를 심고 나서 오늘은 왔나, 고대하는 소식을 확인하느라 우체통을 열어보는 것처럼 매일 아침 가장 먼저 그 애 앞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뭐라도 나왔나, 살아는 있나, 무심하고 긴 시간 동안 흙에 묻혀 무엇을 그리 하는지 오래도 걸리더니 마침내 나오더군요. 나 살아 있어! 그러면서 뾰족 내민 초록의 싹이 얼마나 대견하고 장했는지 모릅니다. 그토록 작고 단단한 덩어리 속에 무엇이 있길래 이런 게 진짜 나올까, 그 작은 씨와 실물 아보카도 나무는 생김새든 뭐든 계통은 전혀 없어 보이는데, 극적인 변신이 신기하기도 했고요. 그 씨에서 그 나무가 나오는 거야, 그런 줄 알았지만 눈으로 확인한 생명은 말할 수 없이 충만하게도 합니다. 나는 그렇게 식물들과 교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농부들이 힘들여 키운 작물들이 마치 내 새끼 같다던 말이 무슨 말인지도 알겠고요.

그래서 내년 봄에는 더 작은 씨를 심어 보려 합니다. 레몬 씨, 사과 씨, 잘 자라면서 피우는 꽃도 보고 싶고 열매도 보고 싶습니다. 상추나 토마토 같은 채소도 모종대신 씨로 심어 키워보려 합니다. 나는 여기서 '초록이들로 하여금 행복함'을 하고 있습니다.





p.s.

이 책값이 6500원이었을 때, 한 20년쯤 전, 꼬맹이 초등학생 딸에게 사다 준 책입니다. 화자로 등장하는 리네아의 차림새도 이쁘고 종알종알 어린것이 이래라저래라 기특하고 행복한 책입니다. 하지만 정작 제가 더 많이 읽고 보고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에겐 쉼표 같은 책이지요. 가볍고 싶을 때 이쁜 거 보고 싶을 때 그냥 한 번씩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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