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존재여선 안 되었던 날들의 기억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
by going solo Feb 2. 2023
안드레아스 말름 지음/ 우석영. 장석준 옮김/
마농지
이런 바이러스 사태를 막거나 적어도 확산세를 늦추려고 세계 각국은 자국민을 가정에 묶어두는 실로 이례적인(extraordinary, 이 단어가 함축하는 모든 의미에서 이례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봉쇄령은 치안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와 함께 내려졌는데, 일부 국가의 경우 가혹했다. (중략) 2020년 4월 초에 이르면 호모 사피엔스 전체가 일종의 셧다운 생태에 들어갔다.(본 책 13쪽)
-작아진 지구,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언젠가부터 지구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컴퓨터를 만들고 통신체계를 개발해 온 세상에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인터넷을 깔던 그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까, 아니면 지구 사이즈 좀 줄여야겠어! 그들이 설마 의도했던 건가, 아무튼 칠레 서쪽 이스터섬의 석상이 있는 그곳의 바닷가가 그리 먼 것 같지 않다. 길을 나서라고, 실제로 한 번 보라고, TV로 보는 것과는 천지차이라며 유혹하는 여행채널에서 보기도 많이 보았고 마음만 먹으면 가지, 못 갈 게 뭐 있어. 생각에서 그러하다.
언젠가 산티아고 순례길은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아름다운 풍경을 관통하는 머나먼 길, 고된 여정에 발이 부르트도록 걷고 또 걸어 마침내 그 길 끝에 닿았을 때 느끼는 감정을 한 번 경험해 보리라.
지구는 이미 큰 마을이 되어 있었다. 나서는 길이 굳이 비장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저 마실 가듯 일본도 가고 베트남도 가고 그러다 조금 큰마음먹고 준비해서 호주든 뉴질랜드든 어디든 취미 삼아 갈 수 있었다. 그 녀석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즐겁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가고 싶을 때 언제든 전람회에 갈 수 있었다. 고대하던 태양의 서커스를 보려고 거금의 관람료도 아낌없이 지불했다. 내가 갔던 그날 좌석은 매진이었다. 공연자들이 조종하는 대로 아슬아슬한 순간이면 마음껏 큰 숨을 들이쉬기도 했고 내쉬기도 했다. 더 아찔한 순간에 모두가 함성을 쏟아내기도 했다. 우리가 분산하는 비말이 얼마나 되는지 염두에 둘 필요가 없었다. 그것이 해로운 거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TV로만 봐도 야구장분위기는 신나고 흥분된다. 알싸한 밤공기를 비추는 냉랭한 조명에 취해 다닥다닥 붙어서 목이 터져라 응원가를 부르고 부둥켜안고. 그러다 정신이 돌아오면, 어머, 죄송해요. 이 사람 어딨어? 라며 별로 미안하지 않은 표정에 우리는 거침없이 즐거웠고 한데 어우러지는 것에 꺼림이 없었다.
-섬이 되어야 한다.
그 녀석, 코로나바이러스가 습격했다. 컨트롤타워에서 방역지침이 내려왔다. 정체성에 걸맞게 연대하고 부대끼며 뭉쳐있던 사람들에게 흩어지라고 한다. 우리가 내뿜는 호흡에 바이러스가 섞여 있을 수도 있으니 거리를 두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가까이해야 한다면 입과 코를 가리라고 한다. 함께 있으면 위험하니 될수록 빨리 떨어지라고 한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사회적 존재들한테 사회적 거리를 두라니, 이건 모냐? 여튼 집에서 공부하고 집에서 일하고 운동도 집에서 하고 맛있는 거 먹고 싶으면 집에서 나가지 말고 배달시키란다. 그 녀석이 습격하던 초기에 일찌감치 하늘길이 막혀 지구는 또다시 머나먼 곳이 되었다. 우리 행성에는 그것의 수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섬이 생겼다. 코로나라는 유탄에 맞아 몇 개인지도 모르는 ‘집’이라는 유인섬, 우리는 이제 이 섬에서 즐거워야 한다. 각자의 섬에서 즐거울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공간의 헤게모니가 이동하고 있다.
S 씨는 아침 6시에 기상한다. 서둘러 준비하고 7시 50분쯤 출근길에 나선다. 가기는 싫지만 일단 가면 시간은 쏜살같이 훌쩍 가버리니 매일매일 다행이다. 퇴근 후 일주일에 두 번 도예 카페에 간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지난 시간 초벌로 구웠던 작은 화병에 유약을 바른다. 매번 마주치는 J는 오늘따라 더 좋아 보인다. 완성한 접시세트가 매우 만족스럽단다. 자몽에이드를 쏘겠다니 덩달아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10시 30분에 귀가해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주말엔 한 달에 한 번쯤 전람회에 가기도 하고 동창들과 어울려 근교의 둘레길을 돌기도 한다. 2,3년에 한 번쯤 가족과 해외여행도 한다. 벼르고 벼르다 동유럽도 다녀왔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그랬다. 그녀는 취미생활을 위해 밖으로 나가야 했다. 집은 휴식을 위해 완벽한 공간이었다.
평화로운 그녀의 일상에 그 해 봄,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변화가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일주일에 하루만 출근한다. 재택근무로 전환되어 주말까지 6일 동안 집에 있어야 한다. 중등 2학년 큰애는 2주 걸러 일주일씩 등교한다. 초등 5학년 작은 아이는 일주일에 하루만 출석 수업을 하고 있다. 아이를 돌봐 주시던 외할머니는 진작부터 오시지 않고 있다. 남편은 정상출근하고 있지만 외식 없이 매일 8시쯤 귀가한다. 그들은 모두 집에 있다. 집에서 자고 집에서 공부하고 일도 집에서 하고 비교적 잦았던 외식은 이제 거의 안 한다. 굳이 먹고 싶은 음식은 배달주문 한다. 이제 거의 모든 일상을 그들의 섬에서 해결하고 있다.
그들에게 시간이 너무 많아졌다.
-섬에서도 그들은 즐겁다.
익숙했지만 취미생활에는 낯선 집에서 다시 즐거워야 한다고 S는 생각했다. 마냥 스마트폰만 끼고 지들 방에서만 뒹구는 아이들이 일단 너무 걱정됐다. 조만간에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상황에 뭔가 긍정적으로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가장 먼저 저녁 식사 후 2시간만 허용하는 조건으로 아이들의 스마트폰을 끄라고 했다. 항의가 만만치 않았지만 단호하게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놀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퍼즐로 돌아갔다.
큰 애는 어릴 때는 꽤 좋아하더니 스마트폰을 갖게 된 이후 멀리하던 퍼즐 맞추기를 한다. 부서진 채 상자에 담겨있던 200피스짜리를 완성했는데 몇 군데가 비어있다. 더 큰 것을 새로 구입해 그것에 열중하고 있다. 다음 작품으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모네의 수련에 나름 거액의 하사금을 걸었다. 아이는 나쁘지 않다고 했다. 차라리 휴대폰으로 시간 때우는 것보다 어릴 때 생각도 나고 좋단다. 아이는 옛 취미를 찾아 나름의 즐거움도 찾았다.
-요리에 재미를 붙였다.
작은 딸이 전부터 해보고 싶었단다. 할머니가 불 앞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기 도 하셨고 학교며 학원이며 지도 바쁘고 정신없어 그저 맘만 먹고 있었단다. 어느 날 딸애가 끓여준 라면이 제법 맛이 있었다. 그리고 비빔면, 짜파게티, 그 유명한 짜파구리도 그릇에 예쁘장하게 담아 오이랑 삶은 달걀까지 플레이팅도 나름 깜찍하다. 일단 딸애 덕에 면을 먹는 날이 많아지기는 했다. 조금씩 레벨을 높여 스파게티도 해준다. 아직은 주로 인스턴트지만 냄비에 물을 끓이고 그 잘난 파를 썬다며 칼질하는 아이가 즐거워 보인다. 저녁엔 스마트폰으로 요리 동영상을 주로 본다. 쫓기듯 받아들인 시간이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여유 있어 보인다. 즐거운 것을 할 때 사람은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벌레잡이풀에 풍덩 빠졌다.
그녀의 남편은 식물을 좋아한다. 섬으로 쫓겨 들어와 처음엔 주로 스트리밍 채널로 영화나 드라마만 보더니 어느 주말에 나팔이 주렁주렁 달린 식물을 들고 왔다. 그게 꽃이란다. 이름이 벌레잡이 풀이라나. 그 식물은 비싸기도 하고 키우기가 매우 까다로워 온도와 습도를 적절하게 맞춰줘야 한단다. 그 후 몇 포기 더 구입해 발코니에 매달아 놓고 시간만 있으면 그것만 들여다본다. 내년 봄엔 발코니에서 식물을 키우겠단다. 그녀는 반대하지 않았다. 오래 머물러야 하는 섬이 푸르면 더 좋겠지라고 맞장구를 쳤다.
-역시 독서가 최고다.
책만 있으면 그녀는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언제부턴가 밖으로만 나돌아 다니며 멀리하고 있던 책 곁으로 다가갔다. 흥분돼 있던 삶이 한풀 꺾여 고요해진다. 뉴스만 안 보면 그런대로 편안하다. 매일 카운트하는 신규 발생 그것 좀 안 하면 안 되나.
주말이면 네 사람이 바깥공기도 쐴 겸 가까운 공원에서 산책도 하고 함께 배드민턴도 친다. 그 녀석 때문에 벌어진 갑작스런 반전이 매우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오히려 소란스럽지 않고 매우 즐겁기도 하다.
-그 무엇도 우리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
사회적 존재는 적응의 달인이기도 하다. 지구를 접수해 주인노릇하고 있는 건 바로 그 최강의 적응력 때문일 것이다. 오죽하면 피할 수 없으면 그게 뭐든, 실업이든 불치병이든 실연이든 정면으로 다가가 덥석 껴안아 버리라고 하지 않던가. 그게 우리의 본색이다. 그래서 그 녀석과도 더불어 살 수 있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도 익숙해졌고 게다가 그 녀석이 내심 고마울 때도 있었다. 마침 가기 싫었던 자리-굳이 예를 들자면 시댁 가족모임쯤, 별로 즐겁지 않을게 분명한 그런 데-안 갈 수는 없었는데 마침 그 녀석 탓에 절대 가면 안 되게 되었으니. 한 이틀 아프고 푹 쉬어야지. 마스크도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병원 갈 일도 줄었고 무엇보다 얼굴을 가려주니까 메이크업 안 해도 되고, 와우, 이게 젤 좋았지. 추운 날 엔 찬바람을 방어해 주니 든든하기까지 하다. 친구랄 수는 없지만 동네에서 내쫓을 수는 없는 달갑잖은 지인 정도? 그렇게 그 녀석은 우리 곁 어딘가에 상주하게 될 것 같다.
이 사람, 내가 매일 보던 사람 맞아? 매일 보던 얼굴인데 반만 보고 살다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서로의 얼굴이 낯설다. 그래? 그럼 다시 적응해야지. 아직은 못내 혹은 굳이 안 벗어도 될 것 같긴 한데 봄은 올 것이고 기온도 점점 오르면 결국 벗어 버릴 것이니 그렇게 매일 만나고 부대끼고 어우러지다 보면 서로의 얼굴에 적응될 것이고 또다시 매력적이 될 것이다. 원래 모습 그대로.
p. S.
혹시 코로나19로 불의의 아픔을 겪은 분들께
위로의 마음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