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지킴이 May 21. 2024

입양소설. 너에게 가 닿기까지.

1부.  4장


  선유는 입을 꾹 다물고 코로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휴대폰을 들고 홀트 사무소 전화번호를 눌렀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선유는 자신의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을 감지했다. 내가 떨고 있구나. 전화를 막상 걸었지만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거지. 선유는 왜 입양할 거냐는 질문을 예상하고 답을 준비했다. 그러나 막상 질문을 받으면 말을 더듬거릴 것만 같아 긴장됐다.

“네,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요?”

“저,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서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잠시만요. 소장님 연결해 드릴게요.”

아, 입양 상담은 소장이 직접 하나 보다. 이번에는 경쾌한 음악이 들렸다. 몇 분이 지났는지 선유는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지 못했다. 바쁜가. 왜 이리 전화 연결이 더디지. 소장이 무성의하게 대답하면 어떡하지. 입양하기 어렵다고 딱 자르면 어떻게 말하지. 선유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지만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컴퓨터 화면 같았다. “여보세요?” 마침내 전화기 너머로 시원시원한 음성이 들려왔다. 중년의 여성 목소리. 뭔가 중성적인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다. 선유는 다시 한번 입양하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말했다. “아, 그러세요? 그럼, 사무소로 한번 오세요. 언제 오실 수 있으세요? 장소는 아세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로 찾아오라고? 입양 상담은 기초적인 것조차 전화로는 하지 않는구나. 선유는 작게 ‘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토요일에 가도 될까요?”

“그러시겠어요? 그럼 열 한 시쯤 오시겠어요?”

“네, 그때 찾아가겠습니다.”

호진과 함께 가려면 토요일밖에는 가능한 시간이 없었다.  

  며칠의 시간이 남았다. 4월 첫째 주였다. 잠을 이루지 못한 3월 한 달이 꿈결같이 느껴졌다. 불과 한 달 사이에 입양을 결정하고 행동에 옮기다니.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선유의 상상력이 가속기를 돌린 듯 빨라졌다. 선유는 눈이 크고 동그란 아이를 좋아했다. 까맣고 동그란 눈을 한, 수줍은 미소를 띤 일곱 살 여자아이가 선유의 눈이 닿는 곳마다 서 있었다. 선유는 길에서 만나는 여자아이들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머리를 묶은 아이, 리본 핀을 꽂은 아이, 푸른색 엘사 치마를 입은 아이, 등보다 큰 가방을 멘 아이, 운동화를 신은 아이, 앙증맞은 분홍색 구두를 신은 아이, 엄마 손을 잡고 폴짝거리며 뛰는 아이, 무슨 일인지 샐쭉한 표정으로 엄마 뒤를 따라가는 아이...선유는 가슴이 마구 뛰고 부풀어 올랐다. “나에게도 조금 있으면 저런 딸이 생기겠지?” 꿈만 같은 일이 현실이 될 거라는 생각에 선유는 행복했다. 그리고 자꾸 눈이 따끔거렸다. 감격에 겨워 어느새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 막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공기는 설렘으로 출렁였다. 길가의 나무들이 자그만 이파리를 손 내밀 듯 피워냈다. 이번 봄은 온통 선유를 위해 존재했다.

   토요일 아침. 따뜻한 봄볕이 천지에 가득했다. 지도상으로 홀트 사무소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도시 동쪽에 있었다. 선유는 중학생일 때 서울에서 망원동에 살았다. 신길동에 있는 학교에 가려면 합정동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버스 정류장 뒤에 홀트아동복지회 본부 건물이 있었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그 건물이 선유에게는 딴 세상 같아 보였다. 그 건물 속에서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어 떠나고 어떤 아이들은 부모를 만나 국내 가정들로 보내졌다. 선유는 매일 홀트 건물을 보면서 묘한 감동과 설렘을 느끼곤 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선유가 홀트 지방 사무소를 찾아가고 있는 이 순간, 버스 안에서 선유의 가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긴장감과 벅찬 감동이 두 강물이 합쳐지는 지점에서처럼 섞여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는 입양을 할 수 없어요.” 그런 말을 듣게 되면 어떻게 하지? 쉽게 물러서지는 않을 거야. 입양 의사가 확고하다는 걸 꼭 보여주겠어. 스멀스멀 걱정이 올라왔지만, 행복감이 그 걱정을 계속 밀쳐냈다.

  버스가 도시에서 가장 큰 도서관 건물을 끼고 돌자 비스듬한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건물들이 듬성듬성해지고 나지막한 산등성이 길 오른편으로 이어졌다. 잠시 후 왼편으로 아담한 건물 하나가 나타났다. 홀트아동복지회라는 글자가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로는 미혼모 쉼터라는 글자도 함께 적혀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층 사무실에 들어서자 활달한 목소리를 가진 소장이 밝은 웃음을 띠며 다가왔다. 짧은 커트 머리에 바지 차림이었고 예상대로 오십 대 정도 되어 보였다. 선유는 터프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 중성적인 목소리와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 드시겠어요? 커피 드릴까요?”

“네, 커피 주세요...”

소파에 앉으며 선유는 빠른 눈길로 사무실 내부를 훑어보았다. 커다란 나무 테이블이 창가에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온갖 서류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일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입양 사무가 이렇게 많은 걸까. 꽤 넓은 사무실의 벽에 기댄 책장에도 온통 서류, 서류들이었다.

  “하, 요즘 일이 정말 많아서...입양을 원하신다구요? 성별은 생각하고 계셔요?” 소장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선유의 얼굴을 쳐다보고 물었다. ‘아니, 이렇게 바로? 왜 입양하고 싶냐는 질문도 안 하고?’ 선유는 당황했다.

“여자아이요.”

“요즘은 여자아이를 많이들 원하시죠. 몇 살 정도 아이를 원하세요?”

선유는 이렇게 빨리 실제적인 질문이 이어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한 다섯 살에서 일곱 살 정도면 좋겠어요.” 선유가 이렇게 말한 건 일곱 살이라고 말하면 너무 폭이 좁아질 것 같아서였다. “그런 아이 이 도시에는 없어요.” 소장은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목소리에 실망하는 투가 묻어났다. “없...어...요?” 선유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이렇게 빠른 대답이라니. 아이가 없다고? 왜? 선유는 부모를 기다리는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기에 충격을 받았다. “요즘 그렇게 큰 아이들은 거의 없어요. 음성 꽃동네에 가보셔야 할 거예요.” 그렇구나. 꽃동네. 많이 들어본 곳이었다. 음성까지 가야 하겠구나...“왜, 신생아 입양하시지요. 저희 홀트에서는 신생아 입양만 해요.” 선유는 바로 잘못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에 허탈했다. 그래도 다른 곳을 찾아보면 돼.

“저희는 신생아는 입양하지 않기로 했어요.”

“이유가 뭐예요?”

“제 나이 때문에요.”

“더 나이 많은 분들도 입양하시는데요. 아직 충분해요. 신생아 입양하세요. 큰아이들은 키우기 어려워요.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몸이 힘들 건지, 마음이 힘들 건지?”

또 그 소리구나.

“아니요. 입양을 안 하면 안 하지 신생아는 못 해요.” 선유는 딱 잘라 말하면서 곧 일어나려고 엉덩이를 살짝 들썩였다. 소장은 잠시 뭔가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희야라고 옆 도시 보육원에 여자아이가 있는데 만나보시겠어요?”

“아이가 있어요? 몇 살이요?”

“한 다섯 살 되나. 잠깐만요.”

  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 쪽으로 가더니 두꺼운 서류철을 뒤적였다. 그리고 서류 묶음 하나를 들고 와 자리에 앉았다. 선유의 가슴은 다시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아이가 있구나, 있어. 소장은 종이 한 장을 선유에게 건넸다. 종이 한 장에 아이의 기본 정보가 담겨 있었다. 어디서 출생했으며, 태어난 지 이틀 지나 보육원에 맡겨졌다는 것, 출산 당시 생모의 나이, 생부의 나이, 그리고 생모의 가정환경과 임신과 출산 과정 등. 선유는 빠른 눈길로 서류를 훑었다. 가슴이 두근거려서인지 많지 않은 내용인데도 머리에 잘 입력이 되지 않았다. 그 정보 하나하나가 아이에게 얼마나 중요한 퍼즐 조각들인지 선유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생모의 나이가 생각보다 너무 어려서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괜찮을까. 이거 나중에 아이가 알면 큰 충격을 받을 텐데. 그러나 선유 자신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에게 알리는 건 나중 일이야...

“아이 사진은 없나요?”

“네, 사진은 없어요. 이 보육원에서 희야를 입양 보내려고 저희 홀트에 의뢰했는데, 사실 작년에 입양하려는 부부가 있었어요.”

“그래요? 근데 왜 입양을 안 한 거죠?”

선유는 귀가 확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입양하려다 왜 포기했을까. 뭔가 흥미진진한 영화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생겼다. “공무원 부부였어요. 희야를 입양하려고 공을 많이 들였죠. 아이 심리검사도 하고요. 여기 검사 기록지가 있어요.” 소장은 희야라는 아이의 심리검사 결과지를 건넸다. 몇 장 분량이었는데, 선유는 소장의 이야기가 궁금해 결과지를 대충 넘겨 보았다. “희야가 그 부부에게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어요. 마지막에 희야가 싫다고 했대요. 그래서 결국 자신감을 잃고 포기하신 거죠. 여자분도 공무원이었는데 희야를 양육하려면 당분간 직장을 쉬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어요. 그런데 그것도 자신이 없으셨나 봐요.”  소장은 이렇게 이야기하면 선유가 낙심하며 “그럼 우리도 힘들겠네요.”라고 말할 줄로 기대했다. 남편은 교사, 아내는 대학 강사. 잘 사는 축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 정도면 조건이 좋은 부부였다. 꼭 이 가정에 아이를 입양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야는 만만치 않은 아이였다. 이 부부도 결국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선유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 가정에 가는 게 하나님 뜻이 아니었나 보다. 어쩌면 우리에게 올 아이라 그런 건 아니었을까.’ 선유는 희야라는 아이가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현했다는 게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 그렇다면 우리 부부가 아닌 그 아이가 우리를 선택하거나 거절하겠구나. 좋아, 그편이 더 나아. 난 선택받을 자신이 있어. 안 되면 하나님 뜻인 거야. 다른 아이가 있겠지. 이왕 결심했으니 선유는 끝까지 아이를 찾아볼 참이었다. 분명 우리에게 올 아이가 있어.

“그 아이 만나보고 싶어요.”

“그러실래요?”

소장은 못내 아쉬웠다. 과연 이 부부가 희야를 입양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잘 생각하세요. 좀 큰아이들은 나이에 둘을 곱해야 해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아이를 아기 때부터 키운 게 아니잖아요. 적응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아요. 진짜 내 자식 만들려면 나이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에요.”

선유는 처음 들어보는 그 말이 영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무슨 수학 공식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 때문에 주저할 수는 없었다. 선유의 마음은 앞에 닥칠 파도를 넘어 저 멀리 평온한 수평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일단 아이 만나볼게요.”

  “잠시만요.”

소장은 휴대폰을 들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셨어요? 희야 만나길 원하는 부부가 계시는데 찾아가도 될까요?...네. 아, 그럼 두 주 후 토요일에 가면 돼요?” 소장은 선유를 보며 눈으로 괜찮겠냐는 신호를 보냈다. 선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주. 마음 준비하려면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할 거야. 소장은 보육원 국장의 전화번호를 선유에게 알려주었다. “그 전에 제가 연락 다시 드릴게요.”

  홀트 건물을 들어설 때와 나설 때 선유의 감정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어려운 질문들을 예상하며 긴장했던 근육이 다 풀려버렸다. 불과 한 시간도 안 되어 단단히 결심했지만 막연했던 입양이라는 사건이 현실로 들어와 있었다. 두 주 후면 희야라는 아이를 만난다. 그 아이를 입양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름부터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따뜻했던 공기는 정오가 되면서 더 뜨거워졌다. 4월치고는 더운 느낌이 드는 날씨였다. 선유의 혈관을 흐르는 피가 뜨거워져서인지도 몰랐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들이 선유에게 벌써 축하 인사를 건네는 것 같았다. 선유와 호진은 버스에 올랐다.

“여보, 당신은 어땠어?”

“뭐가?”

“그 희야라는 아이. 이름 듣고 어떤 기분이 들어?”

“난 아직 잘 모르겠는데. 일단 만나봐야지.”

호진다운 대답이었다. 호진은 선유와 소장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서 듣고만 있었다. 호진의 머릿속에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이 너무 급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부담스러웠지만, 호진의 느긋한 성격은 그 부담감에 짓눌리지 않도록 그의 마음을 지탱해주었다.

  “여보, 들어봐.” 갑자기 선유가 눈을 반짝거리며 그에게 허공을 향해 손짓했다. ‘뭐지?’ 호진은 선유의 손이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았다. 버스 천장에서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신기하지?” 선유의 말에 호진은 귀를 기울였다. 정오의 음악방송이었다. 그런데 방송 진행자가 하는 말이 뜻밖이었다. 어떤 맥락인지 모르겠지만 진행자는 입양에 대한 말을 하고 있었다. “와, 너무 신기해!” 선유는 흥분한 듯 안색이 붉게 상기되었다. 선유가 그럴수록 호진은 더 차분해졌다. ‘신기하긴 한데. 그렇다고 이걸 하나님 뜻이라고 해석해야 하나?’ 목사가 한 달 동안 세 번 입양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것도, 홀트를 찾아간 날 라디오 방송에서 입양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우연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호진에게는 더 분명한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선유는 그 순간 입양을 이미 확정된 사실로 받아들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이 달라 보였다. 대학교 2학년 겨울방학에 거듭남을 체험했을 때 변형되었던 그 세상이 다시 선유에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입양소설. 너에게 가 닿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