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지킴이 May 14. 2024

입양소설. 너에게 가 닿기까지.

1부. 2장

  왜 하필 그때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선유는 언제부터인가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다른 가족들을 바라보면 부러운 마음이 생겼다. 동네에서 조그만 여자아이들이 나풀나풀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 한참을 물끄러미 뒤에서 쳐다보는 날이 늘어났다. ‘우리한테도 저런 딸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선유는 한숨을 짓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곤 했다.

  선유는 봄을 유독 좋아했다. 나뭇잎이 연한 초록 이파리를 내는 것을 볼 때마다 또 한 번의 봄을 맞이하는 감동에 가슴이 설레곤 했다. 그런데 그해 봄에는 아무 감동도, 기쁨도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아이가 없는 삶은 봄을 건너뛴 해와 다름없었다. 급기야 밤에 잠들기가 힘들어졌다. 우울증일 때도 없었던 일이었다. ‘이대로 아이 없이 남편하고 둘이 사는 건 하나도 재미가 없어. 이렇게 늙어가긴 싫어. 끔찍해.’ 이런 생각이 머리에 둥지를 틀자 떠나질 않았다. 마침내 한 달을 끙끙거리다 선유는 결심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입양을 하기로. 이 세상에는 부모가 필요한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 중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는 바람이 강렬하게 그녀를 사로잡았다. 더 이상 시부모의 반응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선유와 호진의 인생을 대신 결정할 수도, 책임질 수도 없는 건 너무 자명한 일이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선유는 시부모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자신을 대면하고 자유로움을 느꼈다.

  선유는 호진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여보, 나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어. 우리 아이 입양하자. 당신도 결정해주면 좋겠어.” 호진은 선유의 반짝거리는 눈동자와 차분한 목소리에서 확고한 결심을 읽었다. 호진은 오래전부터 선유가 입양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매일 밤 뒤척이는 선유를 보며 뭔가 중요한 생각을 하는 중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선유의 뜻에 반하는 건 쓸데없는 일이었다. “알았어. 나도 기도할 테니 당신이 한번 알아봐.” 호진은 입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너무나 막연했지만, 선유가 강하게 원한다면 그녀의 뜻대로 해주고 싶었다. 기도하다 보면 뭔가 확실해지겠지.

  막상 호진이 예상보다 쉽게 동의하자, 선유의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신생아를 입양할 시기는 한참 지났는데. 신생아를 입양한다면 내가 예순이 될 때 아이는 막 중학생이 되겠지. 대학에 가고 결혼시킬 때는? 늙어서 아이에게 짐만 될 거야. 애한테 못 할 짓이야.’ 선유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럼 어떤 아이를 입양해야 하지? 선유는 오래전부터 여자아이를 입양하고 싶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두 남동생과 살아온 날이 길었다. 결혼 후에는 남편과만 살았다. 남자들하고만 사는 삶이 싫었다. 어릴 때 어머니와 알콩달콩 나누던 대화, 어머니에게 느꼈던 친밀함을 딸과의 관계에서 다시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럼, 나이는? 아이는 어릴수록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내 나이가 벌써 마흔일곱이잖아. 내가 예순이 될 때쯤 아이가 성인이 되면 좋겠어.’ 호진은 선유보다 두 살이 어렸다. 유학 시절 만나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주위에서 선유보고 능력자라고 했다. 선유는 뭐가 능력자라는 건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호진이 연상을 좋아하는 취향이었을 뿐인데. 호진은 고등학교 교사였다. 62세가 정년이었다. 금방 답이 나왔다. ‘아무리 어려도 일곱 살은 되어야 해. 그럼 내가 예순이 될 때 아이는 성인이 될 거고 남편은 아직 쉰여덟이니까, 아이가 대학에 가도 졸업할 때까지는 지원해 줄 수 있어.’ 수학 공식처럼 명쾌한 해답이었다.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는 어떤 존재일까. 선유에게는 일곱 살짜리 여자 조카가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켜본 조카였다. 가영이는 세 살이 되자 “꼬모, 꼬모”하며 선유를 잘 따랐다. 선유의 올케가 아무리 고모에게 존댓말을 하라고 시켜도 “싫어!”하며 반말을 썼다. 그런 가영이가 마냥 예쁘고 귀엽기만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아이도 가영처럼 그렇게 예뻐 보일까. 선유는 러시아 유학 시절 알던 현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애는 몇 년 전 신생아 딸을 입양했다. 그 아이가 두 살이 되었을 때 선유와 호진에게 입양을 권하기 위해 서울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처음 보는 선유에게 친근감을 보이며 잘 시간이 되어서도 선유와 호진의 침대 위를 걸어 다녔다.

“현애 씨. 나 입양하기로 했어.”

“언니, 정말 잘 생각했어요.”

현애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묻어났다. 현애는 몇 년 전 선유의 집에 찾아가 입양을 권유한 일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며 뿌듯해졌다.

“근데 일곱 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아.”

“안 돼요, 언니.”

현애는 황급히 선유의 말을 막았다.
 “왜?”

“언니는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시잖아요. 그렇게 큰 아이는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요. 입양하자마자 치료를 많이 받아야 한대요. 아기 입양하세요.”

“아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아. 내 나이도 있고...”

“그래도 아이를 아기 때부터 키워야지,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세요?”

  선유는 현애의 말이 선뜻 납득가지 않았다. 치료받아야 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아무래도 큰아이면 그 나이까지 상처받은 게 많아서 그렇겠지. 치료야 받으면 되지, 그 때문에 큰아이의 입양을 만류하는 게 맞는 걸까. 선유는 스마트폰 검색창에 ‘입양’이라는 단어를 쳤다. 그리고 도서를 검색했다. 『입양아 부모 되기』라는 책이 떴다. 두 아이를 입양한 분이 번역한 책이었다. 그 책 말고는 ‘입양’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이 없었다. 바로 그 책을 주문했다. 며칠 후 책이 도착했다. 선유는 책을 펼쳐 읽어가기 시작했다.

  책을 중간쯤 읽어가다가 선유는 ‘연장아’라는 낯선 단어에 눈이 머물렀다. 이런 말도 있나? 읽어보니 ‘연장아’란 신생아가 아닌데 입양되는 아이를 의미하는 용어였다. 영어로는 older children이었다. 이 쉬운 단어를 왜 이렇게 이상하게 번역했을까? 그러나 번역의 문제를 따지기에는 책 내용이 갈수록 심각했다. ‘연장아’ 입양에 따르는 여러 문제점을 기술하는 페이지를 넘기면서 선유의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도둑질에 방화도 가능하다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 나이가 있다고 아이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 일부 극단적인 경우일 거야. 책에서도 모든 연장아들이 다 그렇다고 쓰여 있지는 않았다. ‘우리가 입양할 아이는 그렇지 않을 거야.’ 선유는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선유는 학생 시절 공부를 특출나게 잘했다. ‘나처럼 공부하는 건 너무 힘들어. 그래도 아이가 공부를 잘하는 축에 들었으면 좋겠어. 내가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 주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거야.’ 선유는 공부를 가르치는 것은 자신 있었다. 그런데 책은 그 기대를 무산시켰다. 기대하지 않는 게 나았다. 그러나 선유는 공부에 대해 생각을 진전시킬 수 없었다. 계속 열거되는 문제행동들. 아이에게 이런 문제행동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단단히 각오해야겠구나. 이래서 현애 씨가 말렸던 거구나.’

  선유 앞에 태어나자마자 보육원에서 일곱 해를 지낸 여자아이 모습이 조금씩 선명하게 그려졌다. 엄마의 손길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 가정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아이, 많은 아이 틈에서 자기 것이라고는 가져 본 적이 없는 아이, 자기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누가 자기를 낳았는지도 모르는 아이, 낳은 엄마와 떨어져서 그 존재조차 확신할 수 없는 아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자아이가 선유 앞에 서 있었다. 그 아이를 안아 주고 “이제 내가 네 엄마야.”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이의 상처가 아무리 커도 아주 작은 미미한 변화라도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상처를 줘서 오히려 아이 인생을 망가뜨리면 어떡하지. 생각만으로도 무섭고 끔찍했다. 키우기 너무 힘들어서 파양하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선유는 입양을 포기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을 안은 채 입양을 진행할 수는 없었다. 누구와 이야기해야 할까. 선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야가 생각났다. 러시아 트베리라는 도시에서 온 이야는 사 년 전 결혼해 선유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었다. 러시아 여자들과 성경 공부를 하다가 알게 되었다. 이야의 남편은 선유와 동갑이었다. 서너 살 때 시장에 혼자 있다가 발견되어 줄곧 보육원에서 자랐다. 이야의 남편은 보육원 생활을 이야기할 때마다 냉소적으로 웃곤 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구타와 배고픔이었다. 공부를 잘해서 늘 일등을 했지만 결국 대학에 가지 못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그는 십 년 이상 단주에 성공해 이야를 만나 딸을 낳고 가정을 이루었다. 선유는 호진과 함께 이야의 집을 찾아갔다.

  “저는 입양 좋다고 생각해요.” 선유의 고민을 들은 이야의 남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왜요?”

“제가 커서 제일 힘들었던 게 뭐였는지 아세요? 사람들이 저보고 근본 없는 놈이라고 했을 때예요. 그럴 때마다 부모가 있었으면 이런 말 안 들어도 될 텐데 너무 화가 나고 서러웠죠. 왜 중독자들이 그러잖아요. 아버지가 없었으면 좋았겠다고. 선유 씨도 어릴 때 그런 생각 들었다고 했죠? 그런데 저는 어떤지 아세요? 야, 난 그런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이야의 남편은 웃으며 말했지만, 그의 선량한 눈에는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선유는 늘 그랬듯 그에 대한 연민이 솟아나는 걸 느꼈다.

“그럼 입양되길 바란 적도 있으세요?”

“그럼요. 그때가 70년대였는데 가끔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들이 있었거든요. 나는 왜 입양이 안 되지? 그 애들이 부럽더라고요. 야, 좋겠다. 부모가 생겨서. 공부도 실컷 하고.”

선유는 이런 마음을 가진 아이를 입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그런 아이가 있을 것만 같았다. 빨리 그 아이를 만나고 싶었다. “감사해요. 제 마음을 정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선유는 자기 얘기를 들려준 이야의 남편에게 고마우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도 입양되었더라면 중독자가 되지 않고 공부도 많이 해서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그가 가진 능력을 제대로 키워보지 못하고 산 게 안타까웠다.

“부모님 찾아보고 싶지 않으세요?”

“찾고 싶죠. 돌아가셨을지도 모르지만. 언제 유전자 등록하려고요.”

“꼭 그러세요. 혹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부모님 아니어도 형제나 누이들이 있을 수도 있고.”

선유는 정말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 난 마음 굳혔어. 나 입양할 거야.” 선유의 상기된 표정을 보며 호진은 마음이 착잡했다. ‘아직 난 잘 모르겠는데. 선유가 너무 앞서 나가는 것 같아...’ 호진은 입양이라는 게 영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들떠 있는 선유에게 그런 말을 꺼냈다간 무슨 호통을 들을지 몰랐다. 가끔 언성이 높아지면 호진은 선유에게서 어릴 적 어머니 모습을 떠올렸다. ‘무서워...’ 선유를 사랑하는 마음과 무서워하는 마음이 늘 쌍둥이처럼 붙어 다녔다. 선유의 결심이 굳어지는 것을 보며 호진은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입양소설. 너에게 가 닿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