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을 너무 가볍게 보시는군요?
끈기도 없고 흥미도 없고, 있어도 금방 식고 뭔가 오래 좋아한 경우가 없는 것 같아요.
아직 흥미 있는 걸 못 찾은 걸까요, 아님 이렇게 태어난 건가요?
제가 자기보호본능이 강한데, 몰입은 정말 꼴찌예요. 몰입이 낮은 사람은 끈기가 부족이라는 설명을 봤어요. 근데 제가 진짜 그런 거예요. 그래서 우울해져서 고민이에요. 평생 끈기를 못 갖는 건가요 저는?
저는 우울 무기력이 타고났다고 느낀 적도 있었고, 그냥 뭔가 하고 싶은 게 딱히 없고 좋아하는 것도 딱히 없어요. 근데 성격 자체가 사무직이나 서비스직이 어울리는 성격도 아니에요. 다들 무난하다 선비 같다 예의 바르다 차분하다 이러는데, 전 다 필요 없고 몰입할 수 있는 힘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환경에 영향을 받는 거 같은데 설마 자기보호본능이 잘 안 이루어져서 뒤에가 다 밀리는 건가요? 그럼 전 혼자 일해야 성과가 나는 건가요? 전 예민해서 환경 영향이 있긴 한데 그거 때문에 이런 건가요? 그러고 보니 혼자 지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랑 살아서요.
'진짜' 몰입이라는 건 뭘까요?
많은 분들이 몰입을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절실하게 원하는 목표를 위해 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열정 가득한 상태, 고군분투하는 그 무엇.]
10대 학생이나 20대 청년들이 그런 상태를 갈망하고,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곤 하죠.
그런데 몰입을 너무 가볍게 여기시는군요.
지금은 '몰입'을 이야기할 단계가 아닙니다.
우리의 편견 속에는 이런 이상적인 삶의 공식이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을 잘하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삶.
하지만 실제 세상에 그런 건 없어요.
대부분은 그럭저럭 먹고살기 위해 그냥저냥 살뿐입니다.
몰입은 모든 것을 걸 때 나타납니다.
지금 부모님께서 전 재산을 다 팔아서 주식을 샀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주식이 오르고 내릴 때마다 초 단위로 엄청난 집중력이 나올 겁니다.
잠도 안 오고 배도 안 고플 거예요.
이해를 돕기 위해 극단적인 예시를 들긴 했지만,
몰입이라는 건 이렇게 모든 것을 거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작성자님은 지금 잘 집과 침대가 있고, 하루 3끼를 다 드실 수 있죠?
스마트폰도 있을 거고, 원하면 카페에 가서 차 한 잔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안락한 상황에서는 진정한 몰입이라는 상태에 빠지기 어렵습니다.
작성자님이 몇 살인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아직 학생이라면 현재의 본분에 충실하세요.
재밌게 친구들과 떠들고 놀고, 공부도 운동도 해보세요.
그리고 성인이 되면, 부모님으로부터의 금전적인 지원을 전부 끊어보세요.
최소한의 돈을 모아서 굶어 죽지 않을 상태만 갖춰두고 독립해 보세요.
만약 진정한 몰입을 원하신다면요.
(아마 여기까지!)
그렇게 세상이라는 허허벌판에 서면 생존본능이 발휘됩니다.
생존본능이 생겨서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진짜 경험이 쌓입니다.
그 진짜 경험에서 진짜 취향이 생깁니다.
그 진짜 취향을 이해한 상태에서 누군가와 만나고 어떤 일을 하게 되면,
그때 비로소 그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가 생깁니다.
그 분야에서 진정한 탑이 되고 싶다는 열정이 생긴다면,
그제야 진짜 몰입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까지 독립하고부터 약 10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10년!
물론 따뜻한 지원과 응원, 안락한 환경에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런 포근한 삶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어요.
그러나 진짜 몰입을 원한다면, 그걸 모두 버릴 각오를 해야 해요.
가만히 있어도 잘 집과 침대가 있으며 하루 3끼가 해결되는 환경에서, 몰입은 사치입니다.
몰입의 가치를 느끼고 싶다면, 어른이 되셔야 합니다.
이 상담에서 상담자가 선택한 접근은 사연자가 갈망하는 '몰입'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그것이 안락함과 양립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하는 방식이었어요.
제가 구구절절 이 글에 대해 설명할 수 있겠지만,
(아마 여기까지!)
라고 설명한 곳까지 이해했으면, 작성자의 운명은 달라졌을 거예요.
그런데 심리학자의 경험상, 여기까지에서 생각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약 4% 정도였어요.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20% 정도만 이 답변의 핵심을 알아차릴 수 있겠죠.
긴~글을 쓰다가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왔어요.
사연자와 독자들 모두, '몰입'이 가진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실 수 있었나요?
여러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