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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약을 먹어도 되는지 고민하는 사연

by 황준선

그 사람의 사연

살짝 우울증이 생긴 것 같아서 서카딘서방정 2mg을 받아 왔거든요.

근데 원래 저는 잠은 잘 잤어요. 한 번도 안 깨고 다음 날 7시 30분에는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이 약 먹었다가 나중에 약 없이 못 자게 될까 봐 걱정이 돼요. 이 약 우울증 약인가요? 보니까 불면증 있는 사람한테 처방하는 것 같은데 저는 불면증은 없거든요.


그리고 제가 지금 이게 우울증이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저는 퇴근하면 항상 수영을 하고 일상생활은 잘하고 있거든요. 다만 최근 요 며칠 스트레스를 받아서 어지럼증이 있었고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서 눈물 나고 그래서 상담도 받은 적은 있어요. 나이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요.


이런 경우에도 약을 먹어야 할까요? 검색해 보니 일상생활이 가능하면 우울증이 아니라고 하는데, 저는 가끔 서러운 마음 때문에 눈물이 나는 정도긴 하거든요.

tempImage66IGB8.heic 출처: unsplash

심리학자의 답변

우울증 증상에 부합하는지 여부로만 따지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주요 우울장애 진단을 위해서는 9가지 증상 중 5가지 이상('우울한 기분', '흥미나 쾌락의 현저한 감소', '체중/식욕 변화', '불면 또는 과수면', '인지와 운동 지각 변동', '피로, 에너지 상실', '무기력함, 죄책감', '사고력/집중력 저하', '죽음에 대한 생각')이 2주 이상 거의 매일 나타나야 하며, 일상생활 기능에 명확한 장애가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울증이냐 아니냐가 정말 중요할까요?

많은 분들이 우울증을 마치 감기처럼 어느 날 갑자기 '걸려버리는' 병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우울증은 대부분 삶의 맥락 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쌓이고 쌓여

마음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타나는 신호입니다.


사연을 보면 증상만 나열되어 있을 뿐, 무엇이 작성자님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어떤 상황이 이런 증상을 불러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어요.


약을 먹고 말고는 물론 본인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약을 먹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치아가 썩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이가 아파서 진통제를 먹으면 일시적으로 통증은 가라앉습니다.

하지만 진통제가 썩은 치아를 치료해 주나요? 아닙니다.

진통제는 통증이라는 '증상'을 완화할 뿐, 치아가 썩어가는 '원인'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결국 치과에 가서 썩은 부분을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근본적인 해결이 이루어집니다.

tempImagek2ybfx.heic 출처: unsplash

우울증 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은 증상을 완화할 수는 있습니다.

잠을 잘 자게 하고, 식욕을 돌아오게 하고, 기분을 조금 나아지게 할 수 있죠.

하지만 약은 '왜 잠을 못 자는지', '왜 식욕이 없는지', '왜 기분이 가라앉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주지 못합니다.

증상을 일시적으로 누를 수는 있어도, 증상을 만들어낸 원인까지 알 수는 없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세요.

지금 겪고 있는 문제가 약을 먹지 않아서 생긴 문제인가요? 아니죠.

그렇다면 약을 먹으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며칠 새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무엇인지, 무엇이 답답하고 힘들어서 눈물이 나는지를 말씀해 주세요.

그것이 직장 문제인지, 관계의 문제인지, 상실의 경험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걸 함께 들여다보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논의해 봅시다.

증상이 아니라 원인을, 진단이 아니라 삶의 맥락을 이야기할 때, 비로소 진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답변은 불필요한 말들이 많이 포함되었어요.

원래는 다루지 않을 내용이지만,

우울증, 그리고 우울증 약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를 드리고자 공유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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