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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를 고민하는 고3의 사연

재수 성공 여부는 이것에 달려있다

by 황준선

고3의 사연

올해 수능을 본 고3 수험생입니다.

지금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이 인서울 턱걸이쯤 되는데,

재수를 하는 게 맞을지 그냥 다니는 게 좋을지 고민이 됩니다.


모의고사 성적은 못해도 평균 2등급 정도는 나왔어요.

그래서 수시도 최저 2등급 정도에 맞는 학교를 써서 결과적으로 모두 떨어졌어요.

이제 재수를 하거나 성적 맞춰 대학 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안정적인 직업을 원해서 대학에 가서도 공무원 시험이나 회계사 자격증을 준비할 것 같은데,

정말 고민이 많이 되네요.


부모님은 어떤 선택을 해도 지지하고 지원해 준다고 하셨지만,

아무래도 죄송한 마음이 크고 재수가 쉽게 결정하고 말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기에 결정이 더 힘든 것 같습니다.

tempImagedVnIkP.heic 출처: unsplash

심리학자의 답변

수능을 보고 나면 재수를 고민하게 됩니다.

예상했던 점수가 나오지 않았다면 더욱 그렇겠죠.


먼저 모의고사 성적보다 실제 수능 점수가 낮게 나온 이유를 살펴볼까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이번 수능에 대한 강한 열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뚜렷한 목표의식과 자신감, 자기 확신으로 표현되는 감정이 충만할 때

자신의 기량을 온전히 발휘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절실함이 없으면 평소 실력조차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작성자님은 착한 모범생의 마인드로 10대를 보냈고,

그렇게만 흘러가면 무난하게 인서울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난함'에 대한 기대는 절실함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수능 점수는 10대의 끝자락에서 10대를 정리하고,

20대를 제대로 맞이할 좋은 기회가 되겠네요.


재수의 목적은 더 나은 성적을 받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더 나은 성적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요?


공무원과 CPA를 생각한다고 했는데, 이 목표들을 살펴보면 재수의 필요성이 희미해집니다.

공무원은 대학 간판과 무관한 분야입니다.

대학을 잘 나왔다고 공무원 생활을 잘하거나 승진이 빠른 것도 아닙니다.


CPA는 어떨까요? 자격증 시험이기에 학벌보다는 일단 시험 합격 여부가 중요합니다.

게다가 작성자님이 30대가 됐을 때 이 직업이 존재할 조차도 불확실합니다.


결국 '더 좋은 대학'이라는 목표와 '공무원, CPA'라는 진로 사이에는 열정을 일으킬 연결고리가 약합니다.

미국에 이민 가고 싶으니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상황인 거죠.

tempImagefscsjA.heic 출처: unsplash

재수는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강한 동기를 유지해야 하는 과정입니다.

엉뚱한 목표, 혹은 약한 목표를 삼으면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 재수는 보나 마나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히려 성적이 더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재수를 선택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내가 확실히 더 높은 점수를 반드시 받고야 말겠다는 뚜렷하고 강렬한 의지.

둘째, 그 점수로 '반드시 이것을 하겠다'는 구체적이고 절실한 목표.


'더 나은 점수'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입니다.

'안정적인 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안정적인 직업 같은 건 없어요.


물론 아직 10대니까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긴 어려울 거예요.

그러니까 '직업'을 찾지 말고,

'더 나은 점수를 받은 나'는 어떤 모습일지 그걸 구체적으로 뚜렷하게 그려보세요.


그 모습에 반드시 도달하고 말겠다,

더 나은 점수를 받은 나의 모습을 내가 얻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충만하다면 재수해도 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해졌을 때, 재수가 필요한지 아닌지도 저절로 분명해질 것입니다.

tempImageQr5t2k.heic 출처: unsplash

무슨 상황일까요?

우리 고등학생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재수를 해야 할까?"라는 질문 앞에서 막막해하고 있어요.

왜 막막할까요?


12년 동안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곧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이라고만 배워왔기 때문이에요.

더 높은 점수, 더 좋은 대학,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누구도 진지하게 물어보지 않았죠.


이런 상태로는 성적을 잘 받아도 문제가 돼요.

어쨌든 사연에서는 예상 점수보다 실제 점수가 낮게 나왔죠.

즉, 막상 수능을 망치고 나면,

재수를 통해 더 나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게 대체 왜 필요한지,

그 점수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답할 수가 없어요.


"공무원이요, 변호사요, 공사, 대기업"라고 말하지만,

그건 그저 '안정적이라더라'는 소문에 기댄 것일 뿐 진짜 자기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에요.

위에 나열한 직업군들의 사람들을 만나면 하나 같이 "아이고 죽겠어요"라고만 할 뿐이거든요 ^^;;


우리는 아이들에게 점수를 최고의 가치로 가르치면서,

정작 그 점수로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이 자신을 절실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묻지 않았어요.


그 결과 아이들은 목표 없는 수단만 쥔 채,

1년이라는 긴 재수 기간을 버틸 동력도,

시험장에서 실력을 발휘할 절실함도 갖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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