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바쁘기만 한 삶에서 우두커니 서 있게 되는 순간에 대하여

by 황준선

가끔 멈춘다. 지하철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문득 멈춘다. 출구 앞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본다. 나는 왜 여기 서 있지? 이유가 없다. 바쁜 사람 사이에서 혼자 멈춰 서 있으면 누군가 "괜찮으세요?" 하고 물을지도 모른다. 괜찮다. 괜찮은데, 지금 왜 멈췄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오늘은 그 멈춤에 이름을 붙여준 시인 이야기를 한다. 죽으려고 폭포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이, 마침내 멈춰 서서 보게 된 것들.


"우두커니가 되어
무릎 꿇어야 보이는 작은 것들을 생각한다"


천양희의 자취

천양희, 194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종갓집 7남매 중 막내딸.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경남여고를 거쳐 이화여대 국문과에 입학했고, 3학년이던 1965년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정원 한때>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스물셋, 대학생 시인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삶이 시보다 먼저 무너졌다.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했지만 이혼했다. 다섯 살 아이와 멀어졌다. 같은 시기에 아버지와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폐결핵까지 앓았다. 시인은 세상으로 뻗었던 손을 거뒀다. 10년을 죽은 듯이 살았다.


그 10년 동안 길을 떠났다. 직소폭포, 강원도 오지 절, 수수밭. 정처 없이 방황했다. 직소폭포에서는 죽으려고 했다. 그런데 폭포 앞에 서서 물소리를 듣다가, 물었다. 나는 왜 죽으려고 하는가. 답이 나왔다. "아직 죽을 만큼 살지 못했다." 폭포 소리를 가슴에 안고 돌아왔다.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 마지막 행이 좌우명이 되었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우두커니가 되어 무릎 꿇어야 보이는 작은 것들을 생각한다." 죽으려던 사람이 살기로 한 뒤, 달리던 사람이 멈춰 선 뒤, 비로소 무릎 높이에서 보이는 것들. 그것이 이 시집의 세계다.


비상은 언제나 바닥에서 태어난다

같은 시집에 실린 <새가 있던 자리>에 이런 구절이 있다.

새들은 몇번이나 바닥을 쳐야
하늘에다 발을 옮기는 것일까
비상은 언제나 바닥에서 태어난다


새는 날개를 펴기 전에, 먼저 땅을 찬다.

발이 바닥에 닿아야 비로소 솟아오를 수 있다.


천양희가 직소폭포에서 죽으려다 돌아온 것도,

삶의 바닥을 찍고 나서야 가능했던 비상이었다.


시인은 이어서 쓴다.


나도 그런 적 있다
작은 것 탐하다 큰 것을 잃었다
한수 앞이 아니라
한치 앞을 못 보았다


자기 고백이다.

과거의 실수를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묻는다.


얼마를 더 많이 걸어야 인간이 되나
아직 덜 되어서
언젠가는 더 되려는 것


아직 덜 되었다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이유다.


너도 나도 누구나 바닥을 친 적이 있다.

일이 안 풀릴 때, 관계가 무너졌을 때, 자기 자신이 싫어질 때.


그때 우두커니 서 있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비로소 다음이 보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보면,

불행해 본 경험이 없다는 건 참 불행한 것 같다.


우두커니라는 상태

시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쌀을 씻다가도 우두커니 있게 되고, 어디 가다가도 우두커니 있어서 오해를 받기도 해요. 어느 아주머니가 '편찮으세요, 괜찮아요?' 묻더라고."


그리고 덧붙였다.

"나는 더 이상 어디로 가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안정감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우두커니. 이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멍하니 서 있는 모양'.

부정적이다.

할 일 없이 서 있는 사람.


다른 하나는 시인이 발견한 의미다.

더 이상 어디로 가지 않아도 되는 안정감.

달려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멈춤의 평온.


바쁘게 사는 사람에게 멈춤은 두렵다.

멈추면 뒤처진다.

멈추면 생각이 너무 많아진다.


그래서 계속 움직인다.

그런데 시인은 말한다.

"무릎 꿇어야 보이는 작은 것들"이 있다고.


서서 달리는 눈높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무릎을 꿇어야 보이는 것들.

땅 위에 핀 이름 모를 풀,

바닥에 떨어진 열매,

개미의 행렬.

작은 것들.

tempImageV7XOo9.heic 무릎 높이에서 본 풀과 작은 꽃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이 된다

시인의 최근 시선집 <너에게 쓴다>(2025)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절망도 절창하면 희망이 된다."

그리고 "외면할 수 없는 삶, 그것이 바로 축복."


절창(絶唱) — 더할 수 없이 뛰어난 노래. 절망을 끝까지 부르면, 그것이 노래가 된다.


천양희의 시가 바로 그랬다.

이혼, 이별, 죽음 시도, 10년 방황...

그 모든 절망을 끝까지 밀고 나가니, 시가 되었다.


"시가 나를 구원한 셈인데, 인생에서 가장 고마워하는 것이 부처님과 시예요."


이 시리즈가 여기까지 왔다.

15편에서 포기한 꿈을 다시 꺼내보았고,

16편에서 나이 듦을 자각했고,

17편에서 먼저 다가가는 용기를 냈고,

18편에서 나 없이도 세상은 계속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19편, 여기서 시인은 말한다

멈춰도 된다고.

우두커니 서 있어도 된다고.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무릎을 꿇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그리고 그 바닥에서 다시 날아오를 수 있다고.



오늘 한 번, 의도적으로 멈춰보세요.

걷다가 멈추세요. 앉았다가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핸드폰도 내려놓고, 그냥 우두커니 있어보세요. 1분이면 됩니다. 그 1분 동안 눈에 들어오는 것 하나만 기억하세요. 그것이 지금 당신의 무릎 높이에서 보이는 세계입니다. 우두커니 멈춰 있는 동안 무엇이 보였나요?




바닥을 쳐야 두 발로 서있음을 일깨워 준,

불행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게 한,

그 경험이 진행 중일 때 탄생한 책.

그래서인지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은 40~50대에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는 책

'착하고, 섬세하고, 독특하고, 완벽주의자인 당신을 위한 문장들'